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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입력
2017.10.22 14:4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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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의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정책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정부와 관료는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을 만들어 추진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 수립과 운용 과정에서 사익(私益)이 개입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실패를 들어 책임자를 징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실패한 정책의 후유증은 국가와 국민이 부담한다. 따라서 정책 담당자에 대한 문책과는 별도로, 실패한 정책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10월 18일 발표된 일자리 로드맵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다음부터 ‘특고’라 한다)의 사회보험 관련 정책은 미흡하고, 과거의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 없이 준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내용이 예전과 다르지 않고 변화된 경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때문이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하지만, 그것이 실제 노동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관한 정책적 고민에는 소홀했다.

2000년대 초 노사정위원회에서 특고 보호 방안이 처음 논의되었을 때, 보호 대상으로 상정한 노무제공자 범주는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레미콘 기사 등이었다. 연혁적으로 이들은 근로자의 지위에 있다가 기업의 고용유연화 정책에 의해 특수형태근로종사자화(化)한 사람들이고, 조직적으로는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었다. 또한 사회경제적으로, 그 무렵에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에 대한 신뢰가 남아 있었다. 이런 조건들이 겹쳐 당시 논의된 특고 보호 방안은 그들의 노동기본권과 일부 근로조건을 보장하되, 그 보호 범위는 직종을 한정하는 방식이 선호되었다. 그러나 이 방안은 노사 양쪽으로부터 동의를 얻지 못하고, 결국 2008년 일부 직종에 한정해서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입법만 이뤄졌다.

그로부터 10여 년 동안 특고 보호 입법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 동안 특고의 현실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그들의 종류가 매우 다양해졌다. 서비스업 분야의 많은 신규 사업은 근로자가 아닌 특고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시작되곤 한다. 특고에 대한 법적 보호가 늦춰지며 만들어진, 권리의 사각지대가 기업이 경비를 절감할 수 있는 좋은 토대가 된 것이다. 그로 인해 매우 다양한 직종에서 약 200 만 명의 특고들이 일하고 있다. 이들 중 많은 수는 청년이고 조직되어 있지 않고 노동법과 사회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런 현실을 고려한다면, 지금 특고에 대한 보호 방안은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 특정 직종을 한정하는 방식으로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제한적 효과만을 거둘 뿐이고, 기존의 조직된 특고만을 보호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사회보험과 관련해서는 근로자와 특고 사이에 격차가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일자리 로드맵에서 정부는 사회보험의 적용 확대를 얘기하면서도 여전히 직종을 제한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그 범위도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에 한정하고 있다. 직종을 제한한다는 것은 다양한 직종의 특고의 보호를 미룬다는 뜻이고, 산재ㆍ고용보험에 한정하는 것은 사회보험 영역에서마저 특고를 근로자와 같은 수준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자리의 현실이 변했음에도, 과거의 대책을 반복할 경우 여전히 많은 수의 특고를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남겨둘 가능성이 크다. 플랫폼 이코노미 등 산업 현장이 변하고 특고의 양상도 바뀐 이상 그 보호방안도 다른 관점에서 마련되어야 함에도, 이렇듯 정부가 과거 정책을 재탕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 대책이 실패한 이유를 찾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그들이 경험했던 아픔은 다시 또 다른 사업과 직종에서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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