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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언제? 애는? 둘짼? 엄마인 걸 후회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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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언제? 애는? 둘짼? 엄마인 걸 후회해보자

입력
2016.10.0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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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혹은 ‘엄마’ 같은 키워드로 검색하면 나오는 거의 모든 사진은 화목한 가정을 보여준다. 이런 환경은 여성들에게 솔직한 감정토로를 막는 거대한 장벽으로 작동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모성’ 혹은 ‘엄마’ 같은 키워드로 검색하면 나오는 거의 모든 사진은 화목한 가정을 보여준다. 이런 환경은 여성들에게 솔직한 감정토로를 막는 거대한 장벽으로 작동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엄마됨을 후회함

오나 도나스 지음ㆍ송소민 옮김

반니 발행ㆍ284쪽ㆍ1만5,000원

1단계, 만나는 사람 있니? 2단계, 국수 언제 먹여 줄 거야? 3단계, 소식은 없어? 4단계, 둘째는 언제?

대한민국 남녀가 20, 30대, 요즘은 40대에 이르기까지 매 단계별로 밟아 나가야 할 ‘패키지 질문 세트’다. 홀로 사는 이들이 늘고, 결혼하더라도 애 안 낳기로 결정한 사람들도 많고, 난임으로 고통 받는 이들도 있을뿐더러, 애를 낳더라도 하나만 키우겠다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무례한 방식’으로 물어봐선 안 된다고 아무리 매스컴에서 떠들어대 봐야, 그건 좀 배웠다고 티 내기 좋아하거나 쿨한 척 폼 잡기 좋아하는 ‘남의 집’ 사람들 얘기일 뿐이다. ‘우리 집’ 사람들은 절대 그럴 리 없다고 굳게 믿는다. 1~4단계 패키지 질문 세트가 각 가정마다 무한 리플레이되는 이유다.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보’, 바로 그 글자로 시작하는 단어를 내뱉도록 함으로써 극한의 쾌감을 선사했다면, ‘엄마됨을 후회함’은 ‘후회’라는 단어를 끄집어내는 쾌감을 준다. 원제는 ‘Regretting Motherhood’. 이 ‘R’ 발음을 밖으로 꺼내놓기 위해 얼마나 많은 혓바닥들이 헛굴렀을까 싶다.

여기서 ‘후회’란 엄마들끼리의 이런저런 속풀이용 수다에 등장하는, 아이를 낳은 게 잘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애가 있어 기쁜 것도 같고 한편으론 불편하기도 하다는 식의 양가적 감정 혹은 푸념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걸 넘어서서 다시 애를 낳으라면 싫고, 엄마가 된 것은 실수였으며, 출산 이후 생활을 떠올려보면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더 많다고 딱 잘라 말하는 수준을 뜻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아이들을 싫어한다거나 학대한다든가 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후회한다”가 아니라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기에 후회한다”라는, 어찌 보면 기묘한 상황에 대한 얘기다.

저자 오나 도나스는 페미니스트임을 내세우는 이스라엘 사회학자. 23명의 이스라엘 여성들을 상대로 ‘엄마됨을 후회’하는 현상을 연구했고, 이 연구가 화제로 떠오르자 이 책을 내놨다.

이스라엘인 데는 이유가 있다. 창세기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지상명령을 받은 곳이라서가 아니다. 생육과 번성은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할 만한 수준으로 이뤄졌다. 그보다 좀 더 현실적 이유는, 저자가 딱 꼬집어 얘기하진 않지만, 아마 정착촌 문제일 것이다. 쑴뿡쑴뿡 애 낳아 인구를 불려 땅을 넓히자는 민족주의적 강박 말이다.

그렇기에 모성을 존중해주는 방식보다는 소중한 모성의 의무를 왜 내팽개치느냐는 낙인 찍기 방식이 작동한다. 애를 안 낳겠다는 여성들에겐 “자기애에 빠진 여성” “병든 정신부터 치료받아야 할 여성” “차갑고 냉정한 여성” “심리 상담이 필요한 여성” 등 온갖 비난이 쏟아진다. 이런 풍경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모두가 인구절벽을 얘기하면서 전반적인 노동시간 축소를 통한 남성의 육아 참여 독려, 출산ㆍ육아 전 과정에 걸친 여성에 대한 충분한 지원 등에 대해서는 굉장히 인색하지 않던가.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정치적 특수성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래도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OECD 자료를 찾아보면 2014년 기준 이스라엘의 합계출산율은 3.08명으로, 성공적인 출산육아지원정책으로 유명한 프랑스(1.98명)를 여유 있게 따돌리며 단연 1위다. 한국은 1.24명 수준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추론할 수 있다. 후회하는 엄마들은, 오히려 이스라엘에서 우리보다 더 많을 수 있겠구나.

모성이 자연적인 것이냐, 사회적인 것이냐는 빤한 이분법적 계몽주의 훈계를 되풀이하는 책은 아니니 안심해도 된다. 책의 포인트는 ‘후회’에 대한 여러 얘기들이다. 이 후회는 모성에 대한 굳은 믿음 아래서 절대적으로 은폐되는 얘기들이다. 아이와 격리될까 봐, 부모 자격을 의심받을까 봐 그 어느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얘기들이다. 이 얘기들을 생생하게 들어볼 수 있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포인트다.

“성스러운 게 아니라 ‘슈퍼 성스러운’ 것이었어요. 후회 같은 말들은 절대 할 수 없는 것이었죠. 아예 입에 올릴 수도 없었어요.”

“사회에서 항상 ‘언제 아이를 가질 거야?’라고 물어대니까 이 전선에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돼요. 엄마가 되어야 비로소 자신의 의무를 다하게 되는 거죠. 다른 의무를 행하지 않은 건 아무 상관이 없어져요. 아이가 있는 걸로 이미 점수를 땄으니까요.”

“쌍둥이를 가졌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완전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마치 강간당한 것 같은 비참한 기분이 들었죠. 정말 강간당하는 거요. 강간. 그리고 그 강간을 허용한 거죠.”

“물론 아이들은 절대 내 입을 통해 이런 말을 듣지는 않을 거에요. 아마 아이들은 쉰 살이 되어도 결코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아이를 남겨두고 떠난다는)그런 환상을 갖고 있어요. 그건 성적 환상과 비슷한 거에요. 바로 망상이죠. 결코 현실이 아님을 아는 것. 내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아는 그런 일이죠.”

“(엄마가 됐다는 걸 후회한다는 사실을)남편은 전혀 몰라요. 그리고 내 친구들도 전혀 몰라요. 그런 말로 부담 주고 싶지 않아요.”

“엄마는 정말 내가 태어나지 않기를 원한 건가. 그로부터 20년 후 세 아이들 둔 지금에서야 엄마의 말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모두들 ‘경력’과 ‘아이들’ 간의 딜레마에 대해 얘기하지만 어쩌면 둘 다 원치 않는 사람들도 있을 거에요. 그들은 경력이나 승진을 원하지 않죠. 내 개인적으로는 아무튼 그런 일에 관심 없어요.”

페미니스트로서 저자는 이렇게 말해뒀다. “(이 책의)인터뷰 내용들을 통해 여성 자신에게 더 많은 가능성이 만들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고통을 당하지 않고자 기꺼이 논쟁에 휘말리는 여성과 엄마들은 언젠가, 어떻게든, 무언가 바꾸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그럴 만하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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