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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아! 교장 선생님

입력
2018.01.30 15:3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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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차지 마세요!” 초등학교 시절 교장 선생님은 왜 그러셨는지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 직접 마이크를 잡고 큰 목소리로 말리시곤 했다. 중학교 때는 육군사관학교를 견학했다. 군인정신을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 같은 교장 선생님 덕분으로 기억한다. 선배들의 명문대 입시실적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얘기를 앵무새처럼 반복하신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까지 모두 나에게는 교육자로 추억되지 않는다.

시골의 한 중학교 교장실 책장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교육철학에서 최신 교수학습 방법론까지 빼곡했다. 보통은 장식용이 대부분인데 이 분은 전문적 학습공동체의 리더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도 교육적인 대화를 멈추지 않았던 그 학교 선생님들의 모습이 이해가 됐다. 교장실을 무단 점거한 선생님의 ‘무례’에 당황한 적도 있다. 회의 장소가 마땅치 않자 노크도 없이 교장실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는 선생님. 잠시 후에 들어온 교장 선생님을 보고 나도 모르게 일어나 인사했는데 앞자리의 선생님은 괜찮으니 그냥 앉으라고 손짓한다. 명패에 교장이 아니라 참일꾼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학교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선생님이지만 위기학생 한 명을 놓고 어떻게 그렇게 정성을 쏟을 수 있는지 의아했는데 이해할 수 있었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학부모 교육을 끝까지 경청하시더니 마지막에 직접 호소하신다. 학교가 최선을 다할 테니까 학부모들이 도와주십사 부탁한다. 몇몇 참석하신 아빠들에게 모임을 만들어 자주 만나자는 제안도 하신다. 학교에 가면 얼굴도 보여주지 않거나 교장실로 찾아가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어야 할 권력자들의 모습과, 학교를 마을교육공동체의 중심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학교를 드나들면서 처음에는 사실 잘 몰랐다. 학교의 전체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이 없어서 그랬는지 주로 선생님 한 분 한 분의 느낌을 갖고 학교를 판단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한 집안의 가장처럼 학교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가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이 학교 선생님들의 에너지는 학생이 아니라 교장에게 잘 보이기에 대부분 쓰이고 있구나, 느낄 수 있다. 선생님들의 평소 관심이 교육이 아니라 교장의 실적 쌓기에 쏠려 있구나, 느껴진다. 이 학교는 교장의 명예로운 은퇴를 위해 복지부동을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도,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회, 학교폭력자치위원회 모두 교장 권력의 유지와 책임회피가 목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도 어렵지 않다.

지금 우리 교육은 자가당착 상태다. 공격적 사교육에 비해 크게 위축된 공교육의 역할을 대폭 강화해야 하는데 이미 신뢰를 잃었다. 국민들이 믿음을 줘야 뭐라도 할 수 있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각 학교의 중심에 진정한 교육자인 교장을 세우는 일이다. 지금 교육부의 공모제 교장 확대 정책에 대한 찬반이 치열하다.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볼 수 있지만 나는 일제가 만든 권력기관인 학교를 진정한 교육기관으로 재탄생시키려는 노력으로 본다. 학교를 공교육 신뢰회복의 현장으로 만들기 위해 교장 선생님이 작정하고 나선 학교, 승진가산점 같은 혜택은 뒷전이고 학생들의 진정한 성장과 배움을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주축이 된 학교, 학부모들을 민원인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고 협력해야 할 파트너로 생각하는 학교에 내 아이가 다니고 있다면 공교육 불신, 해소되지 않을까? 비록 개인적으로는 손해라도 국민들의 불신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우리 공교육의 처지를 안타까워한다면 공교육 신뢰회복의 주역으로 맹활약할 새로운 교장 선생님들의 등장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데?

박재원 학부모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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