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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검찰을 다시 생각한다

입력
2017.11.28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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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자들과 소통하는 일은 기자의 업보다. 그들은 갇혔지만, 여전히 억울하고 그래서 할 말이 많다. 그러나 철창 안에선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줄 사람이 마땅치 않다. 기자가 가끔 수감자들의 편지를 받는 이유다. 친분은 없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믿어줄 것 같기 때문이란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편집국에 늘 수감자들의 편지가 쌓여있는 걸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사회부 기자라면 경험했을 수감자와의 편지 교환. 내게는 도굴꾼이 기억에 남는다. 국내에서 가장 악명 높은 문화재 도굴꾼과 4년 가까이 편지를 교환한 적이 있었다. 그는 전국의 사찰 문화재를 싹쓸이했던 무용담을 시작으로 유명인사들을 만나 문화재를 거래했던 이야기를 매우 상세히 적었다. 한번은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유명미술관을 대낮에 들어가서 유유히 문화재를 들고 나왔다는 이야기까지 전했다. 너무 소설 같은 일이라, 당시 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사실이라고 확인해줬다.

그가 편지를 통해 들려준 이야기 가운데 검찰청 출정조사는 가장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검찰이 자신을 왜 불렀고, 누가 자신을 조사했으며, 책상 위에 어떤 수사자료가 올라와 있는지,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수사를 진행할 것인지 편지에 상세히 적혀 있었다. 그가 전해준 깨알 편지 때문에 ‘운 좋게도’ 검찰의 수사진행 상황을 자세히 알게 된 적도 적지 않다. 검찰이 진실추구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도 알게 됐다. 도굴꾼이 전해준 디테일 때문에 검찰은 그럭저럭 괜찮은 기관으로 각인돼왔다.

하지만 그런 인식은 오래 가지 못했다. 2년 가까이 출정조사를 받은 또 다른 사연을 접했기 때문이다. 그는 때때로 가족에게 검찰 분위기를 편지로 알렸다. 그는 횡령 범죄로 확정판결이 났지만 교도소에 이감되지 못하고 구치소에 머물러 있었다. 그가 2015년 중순 공군비행장 소음피해 배상금의 지연이자를 가로챈 50대 변호사의 횡령과 탈세 혐의에 대해 검찰에 제보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제보내용에 흥분했고, 2년 가까이 그를 검찰청사로 불러 밤낮으로 조사했다. 2016년 2월 S검사와 L수사관은 “그 변호사는 정말 나쁜 사람 같다”며 주가조작 혐의까지 수사하자며 의지를 보였다. 별도 수사사무실을 만들고 수사기록과 증거물까지 정리했다. 그러나 내사를 마치고 본격 수사를 위해 상부에 보고하면 막혀 버렸다.

이번에는 C검사와 P수사관이 발 벗고 나섰다. 그는 또다시 밤낮으로 검찰청에 상주해 수사에 협조했다. 그의 지인까지 검찰청으로 불려 다니며 검사와 수사관이 원하는 자료를 갖다 주고 분석해줬다. 그렇게 6개월 이상 수사에 협조해 결실을 맺을 무렵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갑자기 다른 수사를 먼저 진행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올해 2월 주임검사인 C검사는 인사발령이 났고 후임으로 K검사가 왔다. K검사는 수사욕심은 있었지만 “해당 변호사의 변호인이 존경하는 선배라 수사하기가 부담스럽다”는 뉘앙스를 은근히 풍겼다. 그 무렵 거물급 변호사가 검찰청을 휘젓고 다니면서, 검찰 수뇌부가 수사에 소극적이란 이야기가 파다했다.

검찰청에 머물며 1년 이상을 허비했지만, 그는 탈세사건만이라도 확실히 마무리하자는 검찰의 마지막 설득에 이번에는 L검사실로 갔다. 그러나 L검사는 수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다른 검찰청으로 파견을 갔고, 수사에 의지를 보였던 수사관도 육아휴직을 냈다. 올해 8월 해당 변호사의 비리 의혹 보도가 나오자, 검찰은 부랴부랴 K검사에게 수사를 맡겼다. 한때 변호사의 탈세액수를 120억~130억원으로 산정하고 의욕을 보였지만, 지금은 원점으로 돌아간 모양이다.

검찰은 올해 9월부터 더 이상 그를 부르지 않았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그에게 검찰의 출정조사는 어떻게 기억될까. 그의 편지가 진실을 전해주고 있을 것이다.

강철원 사회부 기자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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