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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을 살기 위해 서점인들이 고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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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을 살기 위해 서점인들이 고른 책

입력
2016.12.3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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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야 아무리 추워 봐라 내 옷 사 입나 책 사보지, 라고 외치려다 멈칫합니다. ‘웬 선비질’ ‘클릭 수도 안 나오는 기사’라는 비아냥이 바로 귓가에 맴도는 것만 같아 제가 이러려고 출판기자를 했나 자괴감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책방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돈 있으면 차라리 어디 땅이라도 사서 묻어두라고 하고프지만, 그래도 뭔가 찾아 헤매는 누군가를 위해 오늘도 조용히 문을 열어두는 이들입니다. 그들에게 버텨나갈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책 추천을 부탁했습니다. 어김없이 2016년은 가고, 2017년이 옵니다. 아무리 ‘작심삼일’이라 낄낄거려도 어쩌면 작심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한 일일지 모릅니다. 버티고 싸워나갈 힘을, 잠시라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변해림 인턴기자

나를 잃길 원할 때, 마음에 지니고 떠나라

나를 찾기 위해선 나를 잃어야 한다. 잃은 뒤에도 잘 찾아와야 한다. 김영건 속초 동아서점 매니저가 잘 돌아오라고 힘차게 외친다.
나를 찾기 위해선 나를 잃어야 한다. 잃은 뒤에도 잘 찾아와야 한다. 김영건 속초 동아서점 매니저가 잘 돌아오라고 힘차게 외친다.

“어쩌면 그건 이런 걸 거야. 넌 항상 너 자신을 찾으려 하고 늘 그렇듯 정말 너를 다시 찾게 되는데, 난 너와 반대로 나를 잃어버리길 원하고 나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길 원해. 그리고 그건 내가 여행할 때만 가능해. 또 가끔 사랑을 받을 때도.” (유디트 헤르만 ‘루스(여자 친구들)’ 중에서)

겨울 바다 보러 떠나는 길에 굳이 책을 챙긴다면 그 책을 읽는 것도 읽는 것이지만, ‘지니고’ 간다는 사실에 얼마간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아닐까? 책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읽지 않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펴지 않을 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알 수 없는 절실함에 떠밀려 책을 가방 깊숙이 집어넣고야 만다. 그때 비로소 책은 저 고독한 여정의 동반자인 동시에 증인이 된다. 자신을 되찾거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여행 속, 저마다의 무게로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친구이자, 정처 모를 감정을 잠시 내려놓을 장소이기도 한 책 5권을 골랐다.

휴게소(정미진 지음, 엣눈북스)

겨울 바다 보러 떠나는 가방 속에 이 그림책이 들어있다면, 꼭 그 제목처럼 어느 때고 편히 쉬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깊은 산 속 휴게소에 동물들이 하나 둘씩 찾아와 제가끔 사연을 도란도란 풀어놓는다. 읽는 내내 사랑스러운 생물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카페에서든 숙소에서든 부담 없이 꺼내 읽고 싶어진다.

스포츠와 여가(제임스 설터 지음, 마음산책)

제목이 환기하는 느낌만큼 아늑하게만 흘러가진 않는다. 소위 ‘작가들의 작가’로 일컬어지는 문장가 제임스 설터의 초기 소설로, 1960년대 프랑스 교외를 배경으로 어느 젊고 아름다운 남녀의 기이한 관능의 세계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때 화자는 그들을 관찰하는 제3자로서, 오로지 상상을 통해서만 집요할 정도로 두 육체의 일거수일투족을 더듬는다. 작가 특유의 명료한 문장을 마주하는 매순간 숨이 가쁘다.

종말론 사무소(김항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6년 한국 정치를 바다에 비유한다면, 고민할 나위 없이 칼바람이 몰아치는 혹독한 ‘겨울 바다’ 아닐까. 일견 ‘정치의 종말’로 보였던 2016년 한국 정치가 과연 새해에는 어떻게 흘러갈지. 이 책은 전방위적 사상가인 발터 벤야민이 재개했던 ‘종말론 사무소’라는 개념에 주목한다. ‘종말론 사무소’가 인간을 오직 ‘통치의 대상’으로만 삼아왔던 패러다임에 맞서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다루는 곳이라면, 그 사무소는 2017년 한국에서 또한 시급히 작동되어야 마땅할 것으로 보인다.

사랑하기 좋은 책(김행숙 지음, 난다)

바람에 너울거리는 파도처럼 일렁이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정의하기엔, 사랑의 생김새도 양상도 무수하다. 사랑 앞에서 걸핏하면 엎어지고, 사랑이라는 말만 들어도 손톱을 물어뜯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다리가 없어 슬픈 인어공주 이야기가 모티프가 된 이 산문집은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는 그 흔한 얘기 한번 없이, 이야기하면 할수록 한없이 비늘처럼 미끄러지는 사랑의 순간과 자취를 담았다.

여행자의 책(폴 서루 지음, 책읽는수요일)

속절없이 떠난 이 여행에 맛집이나 숙박업소 등의 관광지 정보가 실속 있게 적힌 여행 책을 위한 자리는 아마도 없으리라. 도리어 나를 대신하여 쓸쓸함의 무게를 짊어질 듬직한 책 한 권 가방에 슬쩍 넣어 가도 좋을 것 같다. 수다스럽지 않고, 이따금씩 꺼내 보면 조용한 스승님처럼 수수께끼 같은 짤막한 몇 마디만을 되돌려주는. 이 책은 여기에 안성맞춤이다. 여행에 관한 모든 사색과 지혜를 담았으되 당장에 필요한 실용적인 정보들만 쏙 빠져있으니 말이다. 그 안에 담긴 진리의 말들은 여러 꺼풀 싸여있는 까닭에,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얼마간 몸에, 그리고 마음에 지니고 다니는 수밖에 없다. 겨울 바다를 보러 떠난 당신도, 아무쪼록 새해에는 건강히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김영건 속초 동아서점 매니저

힘내 대신…어디 계속 한번 해봅시다!

차경희 고요서사 대표는 모두에게 끈질기게 버텨내기를 기원한다.
차경희 고요서사 대표는 모두에게 끈질기게 버텨내기를 기원한다.

소설에서 힘을 얻었던 경우를 떠올린다. 죽기로 결심했던 주인공이 아주 극적인 사건들을 겪으며 불행을 딛고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삶을 살아간다는 내용의 소설들이 언뜻 떠올랐다. 하지만 그러한 소설들은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는 해주어도 내 삶과 연결되는 지점은 없는 ‘허구’로 느껴졌다.

2016년의 끝, 우리는 너무 지쳐 있다. 해결되지 못한 비극이 곳곳에 널려 있고, 비탄에 찬 목소리가 사회에 가득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 그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염려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며 외침을 계속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들에서 힘을 얻곤 한다. 혹은 나와 비슷한 불행에 빠진 사람들, 바닥에 가 닿은 심정을 고백하지만 그 안에 남아 있는 온기를 놓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도 묘한 위로를 얻곤 한다. “힘내” “괜찮아”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힘을 주고 위로를 건네는 소설들을 골라봤다.

안녕, 주정뱅이(권여선 지음, 창비)

서로 다른 이유, 그렇지만 엇비슷한 삶의 일그러짐 때문에 일상에서 술을 떼어낼 수 없는(의존에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 서점 손님의 권유로 읽었고, 소설을 읽어가며 뒤통수 몇 대 맞은 듯한 싸한 충격을 느꼈으며, 책과 술을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주정뱅이’ 손님들과 함께하는 ‘음주 낭독회’ 진행에까지 이르렀다. 인물들이 일상의 비극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어쩌면 대부분의 삶은 이렇게 비슷한 슬픔들을 감추거나 드러내면서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은 동질감이 든다. 슬픔을 슬픔으로 위안하는 책.

보건교사 안은영(정세랑 지음, 민음사)

한국소설이 어렵거나 어둡거나 진지하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깜짝 놀랄 만하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의 잘 쓰인 원작 소설 같은 느낌이다. 어두운 기운이나 영혼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안은영. 보건교사로 일하며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를 고지식한 한문 교사와 함께 해결해나가는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다. 대단한 능력이나 무기도 없고, 지나친 정의감도 없는, 그저 오지랖 넓을 뿐인 히어로의 이야기가 무척 유쾌하다. 생생한 캐릭터, 엉뚱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그 자체로 웃음의 활력을 준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지음, 민음사)

2016년을 휘젓고 다닌 단어 중 하나인 ‘혐오’. 그 중에서도 ‘여성혐오’는 끔찍한 범죄를 불러일으켰고, 여전히 ‘혐오 vs. 혐오’의 양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사회적 이슈다. 이 책은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소설 아닌 르포로 느껴지게 할 만큼 현실적으로 담아낸 소설이다. 아내이자 엄마, 딸이자 며느리로 살아가는 서른넷 김지영 씨의 삶을 어린 시절부터 담아낸 이야기는 비슷한 또래 여성들 사이에서 큰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살기 위해 외면해온 우리의 이야기들이 잔인하리만치 사실적으로 묘사되지만, 나의 인생을 누군가가 대신 소설로 써준 듯한 기분에 가슴 시린 위로가 느껴지기도 한다. 아내 혹은 연인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은 남성의 인식 변화에도 탁월한 도움을 줄 수 있다.

나무를 심은 사람(장 지오노 지음ㆍ마이클 매커디 판화, 두레)

황무지에 도토리와 나무들을 심어 결국 40년 후 숲과 마을을 일구어낸 한 농부의 이야기를 담은 아주 짧은 소설.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땅을 되살리겠다는 신념 하나로 묵묵하고 고집있게 행동에 나선 한 사람이 그 땅과 마을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내용이 꽤 묵직하게 담겨 있다. 환경적 혹은 문명비판적 관점에서도 읽을 수 있지만, 그저 묵묵한 실천이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눈길이 간다. 서점에서는 2016년 4월 총선 기간에 소개했던 책이다. 척박한 환경에 얽매이지 말고 오늘과 내일, 계속해서 나무를 심어나가면 언젠간 숲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계속해보겠습니다(황정은 지음, 창비)

소라, 나나, 나기. 세 사람의 이야기를 각자의 시선에서 말하는 소설. 황정은 작가 특유의 독특한 문체가 매력적이다. 불우한 처지에서 이웃으로 만나 남매들처럼 자란 세 사람은 성장한 이후에도 남들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간다. 그 중 막내인 나나가 혼전 임신이라는 상황을 겪게 되는데, 누구 하나 남을 도울 수 없는 처지임에도 서로가 최선의 따듯함을 나누며 삶을 계속해나가는 이야기다. 서점 개점 때부터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었던 특별한 소설이다.

차경희 책방 고요서사 대표

분발이 필요한 젊은 직장인들 파이팅!

직장인들에게 생각씨앗을 마구 퍼뜨리겠다는 각오로 넘쳐나는 최인아책방. 왼쪽부터 최인아 대표, 김도현 매니저, 정치헌 공동대표.
직장인들에게 생각씨앗을 마구 퍼뜨리겠다는 각오로 넘쳐나는 최인아책방. 왼쪽부터 최인아 대표, 김도현 매니저, 정치헌 공동대표.

책방을 몸으로 시작한지 네 달, 마음먹은 것까지 합쳐도 일년이 되지 않는 책방 신입이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아직도 몸에 익지 않았지만 책에 대한 기대와 욕심으로 시작하면서 얻은 것들이 많다. 힘들어도 즐겁게 지내온 시간들은 책과 최인아책방을 아껴주신 많은 분들 덕분이다. 새해에는 더 힘을 내서 더 많은 생각씨앗을 퍼트릴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다섯 권의 책을 추천한다.

오가닉미디어(윤지영 지음, 오가닉미디어랩)

책의 부제는 ‘연결이 지배하는 미디어세상’이다. 스스로 진화하는 네트워크 시대, 미디어를 보는 시각을 수정할 것을 주장한다. 자기 자신이 미디어가 되는 시대에서 미디어, 비즈니스, 세상을 보는 시각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이라는 컨테이너의 해체, 콘텐츠의 해체, 컨텍스트의 재구성이라는 대목은 책방주인에게도 많은 고민을 하게 했다. 우리 책방 최고의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초창기에 하루 한 권 꼴로 팔리면서 큰 힘을 줬다. ‘오가닉미디어랩 비즈니스스쿨’을 통해 기업들과 함께 배우며 체험한 결과물들도 곧 출간한다. 내년 2월 책방에 새로운 베스트 셀러가 생기기를 기대한다.

지적자본론(마스다 무네아키 지음, 민음사)

‘혁신’의 상징, 일본의 ‘쓰타야서점’. 서점을 성공시킨 마스다 무네아키의 경영철학이 담겼다. 기획, 디자인, 공간, 라이프스타일 제안 등등등. 우리가 일을 해나가면서 늘 익숙하게 듣는 단어들을 완전히 새롭게 생각해보게 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책방을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꽤 오랜 시간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책이다. 작고 금방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한달 이상 나의 가장 가까운 곁에 머물면서 생각을 거듭 새롭게 하는 데 도움을 줬다. 당연히 책방에서도 베스트셀러 가운데 하나. 선입견이 생길까봐 아직 쓰타야서점에는 안 가봤다. 최인아책방의 고유한 색깔이 단단해질 쯤엔 꼭 한번 들러 볼 생각이다.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김태훈 지음, 남해의봄날)

밀가루 두 포대로 시작해 400여명이 함께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기적의 빵집, 성심당 60년의 이야기다. 성심당은 “이 곳의 철학과 경영방식이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가 100개의 중소기업이 생겨난다면 대기업 중심의 한국경제 구조 자체가 바뀔 것이다”라는 세계적인 경제학자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5년 동안 성심당을 연구해 온 저자가 인터뷰와 심층 취재를 통해 완성한 성심당의 이야기는 ‘기업의 성공스토리’를 넘어 경영과 노동에 대한 새로운 모색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1월 임영진 사장과 부인 김미진 이사의 인터뷰 형태로 최인아책방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자신들의 비법은 오직 고객뿐이라던 김 이사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대전에서 직접 가져온 튀김소보로도 맛있게 먹었다.

경영학 두뇌(김병도 지음, 해냄)

기업 현장에서 필수적인 ‘경영정보, 전략, 생산, 마케팅, 인사조직, 재무금융, 회계’ 7가지 분야를 다뤘다. 경제학이나 경영학은 물론, 심리학까지 활용해 경영학의 본질에 접근해간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오늘날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조언을 담으려는 노력이 빛난다. 경영학 공부가 처음인 사람에게는 흥미롭고 편안한 조언자가 될 것이다. 4차산업혁명 등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계속 변하고 있다. 사장이든 직원이든, 일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시야가 트일 수 있다. 김병도 교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얘기한다. 진짜 메시지는 스티브 잡스의 ‘Stay Foolish’라고….

취업보다 스타트업(라시미 반살 지음, 플랜지북스)

인도 청년 10명의 스타트업 얘기다. 성공 뿐 아니라 고난, 어려움, 실패, 좌절에 대한 얘기도 솔직히 담았다. 읽다 보면 세계를 움직이는 인도 출신 최고경영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혹시라도 인도에 대해 편견이 있다면, 인도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수많은 장벽들, 실패와 조롱, 심지어 사기를 당해도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사업을 일궈가는 인도 청년들. 그들의 얘기에 귀를 열어 우리 젊음들도 조금 힘을 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더더욱이나 분발이 필요한, 요즘 같은 대한민국이라면….

최인아 최인아책방 대표

‘좋은 엄마’ 아닌 ‘그냥 엄마’로 충분

이지은 그림책 노리 대표는 나와 너 사이의 거리에 존중과 배려를 채워 넣자고 제안한다.
이지은 그림책 노리 대표는 나와 너 사이의 거리에 존중과 배려를 채워 넣자고 제안한다.

2017년.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관계 속에서 여유를, 지금 이 순간에서 행복을, 무엇보다 세상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곰씨의 의자 (노인경 지음, 문학동네)

“난 세상에 다시없는 친절한 곰이라고!” 관계 속에서 형성된 고통은 스스로 만들어놓은 굴레에 기인할 지도 모릅니다. ‘내’가 아닌 ‘너’에게 맞춰진 무게 중심으로 인해, ‘내’가 ‘나’를 보지 못하고 ‘너’의 시선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나’. 곰씨는 친절함과 아량으로 토끼가족을 끌어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토끼가족의 경계 없는 행동으로 힘들어하지요. 어쩌면 토끼 가족도 곰씨를 위한다는 생각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곰씨네로 향했을지도 모릅니다. 곰씨가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동안, 토끼 가족은 더 깊숙이 곰씨의 일상으로 파고 들어갑니다. 거리두기. 2017년에는 긍정적 의미의 ‘거리두기’를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요? 상대와 나사이 간극에 존중과 배려와 신뢰, 그리고 ‘나’를 표현하는 ‘언어’로 채울 수 있을 겁니다.

고함쟁이 엄마 (유타 바우어 지음, 비룡소)

‘그림책 노리’는 그림책 공간이라 아기를 둔 엄마들이 많이 찾습니다. 엄마들의 가장 큰 과제이자 고민은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지요. 저 또한 ‘좋은 엄마’이고 싶고요. 이런 분들께 선물하고 싶은 책. 화를 참지 못하고 빽! 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엄마, 그 고함 소리에 산산이 부서지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표현됩니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은 아이가 아닙니다. 바로 사방으로 흩어진 아기 펭귄을 찾아 헤매는 엄마이지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혼란스러워하는 엄마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집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엄마도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엄마의 진심어린 사과가 있다면 아이도 그 상처를 힘차게 딛고 일어선다는 것을. 그리고…. ‘좋은 엄마’의 짐을 내려놓고 ‘그냥 엄마’로 살아도 된다는 것을.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씨 (윤석남ㆍ한성옥 지음, 사계절)

‘나이 듦’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이 책을 보면 여성 3대의 삶을 관통해가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집니다. 푸르른 청춘을 예찬하기보다, 어두운 회색 빛 젊음을 지나, 나이 듦과 함께 풍요로워진 삶을 노래합니다. 혼자 허공에 매달려 사는 것 보다 곁을 내주었을 때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깨달음, 꼬부라진 등일지라도 때로는 쓸모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여유, 몸이 가벼워지는 것은 근심 걱정을 다 내려놓아서 가능하다는 지혜. 이 모든 건 긴 시간 잘 버텨왔다고 주는 하늘의 선물이겠지요. 누군가 묻더군요, 당신은 언제가 제일 행복했냐고. 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지금이 제일 좋다고, 앞으로가 더 기대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작은 새 (제르마노 쥘로 글ㆍ알베르틴 그림, 리젬)

한때는 빈틈없이 지면을 꽉 채운 그림책에 매혹되었습니다. 정교함과 사실감, 거기서 느껴지는 인내와 끈기, 모든 것이 감탄스러웠지요. 그 시기가 지나니 여백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은 언어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여백과 여운이 빛납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오는 나른함과 닮아있지만 그 일상에서 ‘작은 것’을 발견하는 순간, 그 순간은 아주 특별해지지요. 그림책 노리는 그 ‘작은 것’을 사랑합니다. 보잘 것 없어도 ‘작은 것’이 세상을 바꾸니까요.

원(캐서린 오토시 지음, 북뱅크)

아이를 위해 꺼냈다가, 자신을 위해 읽게 되는 책입니다. 권력관계, 그 속에서 뒤엉킨 인간관계를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권력자의 폭력은 두려움의 또 다른 표현임을 이야기합니다. 저항하지 못하는 이에게 무기력하다고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방관자의 침묵은 자기 방어이기도 하니까요. 어쩌면 이들 모두에게 없었던 것은 그 관계의 틀을 깨뜨릴 ‘계기’가 없었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알록달록 색깔들만이 살아가는 세상에 숫자 “1”이 등장합니다. 숫자 “1”의 등장은 타성에 젖은 색깔들의 삶의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숨겨뒀던 내면들이 드러나고, 새로운 관계가 형성됩니다. 바로 변화와 혁신이 일어난 것이지요. 자, 색깔로 가득 찬 세상을 향해 용기 있게 ‘1’을 외쳐보세요! 당신도 변할 겁니다.

이지은 책방 ‘그림책 노리’ 대표

오늘 나 자신이 맘에 쏘~옥 드시나요?

김경현 다시서점 대표는 이 세상에 나서 대체 사랑도 안할 거라면 왜 살아야 하느냐고 따져 묻는 사랑주의자다.
김경현 다시서점 대표는 이 세상에 나서 대체 사랑도 안할 거라면 왜 살아야 하느냐고 따져 묻는 사랑주의자다.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장 뤽 낭시 지음, 길)

손님이 없는 날은 책을 읽습니다. ‘이렇게 손님이 없어도 책방의 문을 꼭 열어야 하나?’ 고민이 들 때 만난 이 책은 정돈되지 않은 채 꼽혀있던 생각들을 정리해주었습니다. 올해 읽은 책들 중 가장 우아한 발걸음을 지닌 이 책은 에세이입니다. 프랑스 동부에 소재한 서점의 제안으로 이 책이 빛을 보게 되었다는 탄생 배경도 퍽 마음에 들지만 ‘책은 사유라는 약속을 지니는 재료의 단위’라는 문장이, 이 책의 제목인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합니다. 사유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 오늘도 단 한 명의 손님이 방문하지 않는다 할 지라도 ‘여전히 책의 곁을 떠나지 않는, 책을 만들고 진열하는, 무한히 자신과 세계를 향해 책을 접었다가 다시 펴기를 반복하는’ 이유. 그것이 이 철학에세이에 담겨있습니다.

오늘 내가 마음에 든다(봉현 지음, 예담)

어느 날 멋쟁이 어머니와 함께 서점에 나타난 봉현 작가는 열심히 준비한 책의 원고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자주 가는 책방과 카페, 사랑스런 장소들이 글과 그림으로 엮여 있던 원고의 첫 장에는 ‘오늘 내가 마음에 든다’라는 제목이 적혀있었습니다. 쉽게 스쳐 지나가는 하루 속에서도 봉현 작가는 행복한 순간들을 차곡차곡 기록해놓았습니다. 발간 이후 한 권의 책으로 다시 만난 이 책은 봉현 작가의 그림일기만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오늘 내가 마음에 드는’ 이유를 이야기 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제목을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힘든 하루에 한 줌의 햇살 같은 응원을 쏟아주는 책. 봉현 작가 덕분에 저도 ‘오늘 내가 마음에 든다’고 말해봅니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다케히사 유메지 지음, 정은문고)

많은 손님들이 책 추천을 기대하며 서점에 옵니다. 그 모습에 한편으로는 ‘너무 숨가쁜 세상이라 책 읽고 고르는 시간을 만들기 어려운 걸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올해 손님들에게 가장 많이 추천드린 책은 일본 다이쇼 시대의 대표적인 예술가가 쓴 이 책입니다. 잠시라도 읽어보시라고 그저 책을 펼쳐서 손에 쥐어드렸습니다. 유메지의 글과 그림에 빠져드는 손님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좋았습니다. ‘사랑, 그 자체였던 사람’ 다케히사 유메지는 “인간이 서로 사랑하는 일마저 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라고 반문해뒀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사랑하길 바랍니다.

우리, 독립출판(북노마드 편집부 지음, 북노마드)

올해는 많은 독립출판 작가들이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었습니다. 임소라 작가의 ‘29쇄’, 박성민 작가의 ‘되찾은 시간’ 등 매력 넘치는 문장들이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나게 된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국내 독립출판인 26명(팀)을 소개한 책입니다. 작은 책방을 통해 독립출판 작가들을 매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 책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쉽게 독립출판물을 접하기 어려운 분들은 이 책을 먼저 읽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출판사를 통해 새 책을 준비하고 있는 가랑비메이커, 김은비, 하현 작가의 책도 기대해주세요. 우리가 우리를 응원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세요. 여러분에게도 힘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되찾은 시간(박성민 지음, 되찾은시간)

서점을 운영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려워 책방지기들끼리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없던 찰나에 금호동의 작은 책방 ‘프루스트의 서재’에서 일년의 기록을 책 한 권에 담아주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온 박성민 사장님은 우측넘김에 세로쓰기라는, 요즘 보기 힘든 형태의 책을 보여주었습니다. 기분 좋은 재생지의 내지, 중질 만화지의 표지로 선보였던 독립출판물은 금세 모두 판매됐고, 이제는 책방 ‘프루스트의 서재’의 모습을 담은 표지의 책으로 새롭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책이 좋다. 그뿐.’ 잃어버릴 뻔 했던 마음을 되찾게 해준 은 작은 책방 운영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시간을 되찾아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분들께도 책을 읽는 시간을 되찾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김경현 다시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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