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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진보·합리적 보수, 서로 인정하며 경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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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진보·합리적 보수, 서로 인정하며 경쟁하라"

입력
2014.12.30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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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진보, 시대착오적 주장만 되풀이… 이념·민족보다 국가정신 필요"

金 "새로운 진보 출현할 기회… 정파 초월한 공공정치 펼쳐라"

박세일(가운데)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과 김형기 경북대 교수가 29일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황영식 한국일보 논설위원실장의 사회로 진보정치의 나아갈 길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박세일(가운데)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과 김형기 경북대 교수가 29일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황영식 한국일보 논설위원실장의 사회로 진보정치의 나아갈 길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과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29일 한 목소리로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서로를 인정하는 가운데 경쟁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진영과 중도 내지는 합리적 진보의 대표적 이론가인 이들은 국민통합을 위해선 헌법적 가치와 함께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역사에 대한 자긍심 고양이 출발점이라는 데 대해서도 공감했다. 이날 대담은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황영식 논설위원실장 주재로 진행됐다.

_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박세일(이하 박)= “당연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우리 헌법의 기본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파괴하는 생각이나 행동이 용인될 수는 없는 일이다.”

김형기(이하 김)= “통진당이 대한민국 체제를 인정하고 헌법적 틀 내에서 활동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겠지만, 판결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통진당이 진보가 아닌 측면, 진보의 아주 나쁜 측면을 보임으로써 헌재로부터 해산 판정이 난 건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대신 법적 정당성을 떠나 정치적ㆍ사회적으로는 하나의 매듭을 통해 새로운 진보가 출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_전체적으로 보면 야권과 진보진영이 정치세력으로서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박=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면서 시대착오적인 주장만을 되풀이하니까 국민적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김= “지금 지적받는 진보는 사실 전체가 아니라 일부다. 풀뿌리 수준에서 건전하고 올바른 길을 가는 진보는 수없이 많다. 잘못된 길을 간 진보세력이 전체인 것처럼 오인됨으로써 국민적 불신으로 이어졌는데, 그런 의미에서의 진보는 정치적으로 실패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_국민들 사이에서는 보수ㆍ진보가 정치적으로는 여야로 투영되고 있는데, 민주화세력이 곧 진보세력이라는 현재의 인식구조는 타당한가.

박=“60~70년대 민주화 세력의 주류는 자유주의자 또는 자유민주주의자였다. 그런데 80년대 들어와서는 이들을 부정하는 반체제 세력, 이른바 NL(민족해방)계가 민주화운동의 주류가 됐다. 그러다 1987년 민주혁명 후 90년대에는 자유주의자와 반자유주의자, 체제파와 반체제파가 혼합됐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란 개념이 많이 쓰이는데 분명한 건 민족혁명파든 계급혁명파든 엄밀하게 말하면 진보가 아니다. 진보라는 용어를 쓰는 것뿐이다. 오히려 잘못된 이념을 지키려고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반동적ㆍ수구적 성격이 강하다.”

김= “60년대 말 70년대 초에는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공통의 요소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80년대 오면서 박 이사장 말씀처럼 NL과 PD로 분화됐는데, 실제 이들의 이념은 현실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했다. PD계열은 계급적 시각과 노동자 중심성을 강조하는데, 중산층의 증가로 계급구조가 다양해지고 노동계급 내에서도 분화가 일어났다. 민족주의에 기반한 NL은 우리 사회의 근본모순을 대미 종속과 남북 분단으로 봤지만, 한국경제의 역동적 발전과 남북한 체제 격차 확대 등으로 북한 노선과의 친화성ㆍ근친성은 현실적합성을 상실했다. 사실 진보의 이념적 실패는 여기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결정적인 지점은 90년대 초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다.”

_해산된 통진당을 제외하고도 여전히 종북좌파가 존재한다고 보나. 아니면 보수세력의 공격 프레임인가.

김= “실제 상황이 어떤지에 대해선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종북이라는 개념 자체는 매우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다. 특히 언론들이 이를 부추기고 확산시키는 경향이 짙다. 그러다 보니 통진당의 주장이 과잉대표되면서 국민들이 진보를 경원시하게 되고, 수구보수세력이 더 득세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헌재의 판결을 계기로 종북 개념 자체가 생명력을 다해야 우리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박= “과거 60~70년대엔 군사독재를 합리화하기 위해 보수진영이 반공을 과도하게 앞세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얘기되는 종북 세력의 문제는 좀 다르다. 이들은 스스로를 민주화 세력이라고 자임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위험성에 대해선 국민들이 실제보다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실제로 각계 각층에서 종북적인 활동이나 사고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지 않나.”

김= “동의한다. 헌재 결정으로 종북 논란을 끝내자는 건 법적인 측면이고 정치적인 측면은 다를 수밖에 없다. 사실 정치적인 측면에서 확실히 선을 긋지 않으면 언제든 논란이 재연될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겠다고 나선 정치 지도자들은 역사적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진보진영 전체도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_사실 우리 사회에선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잣대가 경제ㆍ사회적인 측면보다는 대북관에 치우쳐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박= “‘반미친북’이 진보이고 ‘친미반북’이 보수라는 건 잘못된 시대착오적 기준이다. 이는 자칫 북한의 분열책동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진보든 보수든 민주주의 가치를 존중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대신 보수는 자유와 공동체를, 진보는 평등과 연대를 각각 소중한 가치로 여긴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차이는 상호 보완적이고 상생할 수밖에 없다. 다수의 자유가 현실화하려면 평등이 필수적이다. 공동체에서 상대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을 수 없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자유민주주의의 기초 위에서 어떤 것을 강조하는가의 차이라고 보는 게 바람직하다.”

김= “공유하는 헌법체제가 일치한다면 그 안에서 평등과 연대의 가치를 존중하는 진보, 자유공동체의 유지와 전통적 가치의 계승을 강조하는 보수가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는 그림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런 구도가 형성되면 이론적으로 자본ㆍ노동ㆍ효율ㆍ평등ㆍ시장자율ㆍ정부 개입 같은 보편적인 유럽의 좌ㆍ우파와도 결합될 수 있다.”

_종북 논란에서 벗어나고 시장에 대한 고려도 해야 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진보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

김= “사실 이 부분은 세계적으로도 진보의 역사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이다. 과거의 진보는 반시장ㆍ반기업 성향이 강했고 이는 한국의 진보도 마찬가지다. 핵심가치인 평등과 연대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정부냐 시장이냐의 이분법 속에서 고민하다가 시민사회가 제3의 모델로 나타났다. 실제 유럽의 좌파에게서는 시장친화적 진보정책이 나온다. 그래서 한국의 진보는 변화해야 한다. 일례로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비판해야 한다. 북한 체제와 주민ㆍ동포를 구분하자는 거다. 시장의 문제와 정부의 문제에 있어서는 어떤 고정된 전제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논쟁거리이기도 한데, 일단 시장이 주도하는 사회는 아니라는 합의가 필요하다. 시장이 없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정부와 시민사회의 민주적 통제가 작동해야 한다. 진보의 목표는 전체 국민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건데 계획만으로는 실패했고, 보수도 최근 시장지상주의의 실패를 보고 있지 않나.”

박= “진보적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나는 자유주의자이고 자유와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그런데 모두의 자유가 되려면 평등이라는 진보적 가치가 필수다. 공동체의 안정과 발전을 저해하는 게 강자의 논리다. 그래서 진보적 가치는 보수적 가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새로운 시대에 맞게 진보가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말에 100% 공감한다. 진보와 보수가 건강하게 경쟁해야 하는데, 야당과 진보진영이 너무 헤매면 여당과 보수진영이 혁신을 소홀히 하게 된다. 올바른 세계관과 역사관, 올바른 국가비전과 전략을 갖춘 야당이 필요하다. 지금의 야당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지금의 여당은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_제1야당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김= “관찰자의 입장에서 볼 때 진보가 실패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국민들이 선진세력으로 여기지 않고 낡은 것을 대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구체적으로는 실패한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 추종 이미지다. 선진화 담론을 보수의 것이라고 치부하는 건 옳은 태도가 아니다. 이석기 전 의원 사건에서처럼 비애국세력으로 비치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다. 사실 진보세력은 동학혁명이나 4ㆍ19 혁명,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보듯 애국세력이다. 그런데 80~90년대 들어오면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북한을 추종하는 이미지가 형성됐다. 내가 ‘애국적 진보’를 주장하는 이유다.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과거의 오도된 이미지와 단절해야 하고 이념적으로는 중도진보여야 한다. 그 속에서 중도보수와 경쟁하고 협력해야 한다.”

박= “한국의 진보든 보수든 우리 정치ㆍ사회세력의 가장 큰 문제는 머리 속에 국가를 소중이 여기는 마음, ‘국가정신’이 없다는 점이다. 민족정신은 꽤 강한데 국가정신은 없는 나라라고 느낄 때 있다. 남이 우리민족 욕하면 다 발끈하고 저항하는데, 국가를 욕할 때는 대응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이는 국가가 대변하는 가치에 대한 존경과 믿음이 적기 때문인 것 같다. 대한민국의 진보는 그간 반체제 진보가 많아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데 앞장섰고, 역사와 정통성을 훼손하는 쪽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보수진영, 특히 사회 지도층은 현실에 안주하고 기득권에 몰두하는 이익집단의 성격이 강했다. 보수는 국가정신을 고양시키는 데 소홀히 했고 진보는 국가정신 자체를 공격해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국가에 대한 고민, 국가의 비전과 미래에 대한 논의가 없다. 그러면서 모든 국가정책을 정쟁의 수단으로 쓴다.”

_국민들 사이에서도 민감한 현안이 발생하면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갈라진 국민의식의 접점을 찾아 공통분모를 늘려갈 수 있는 방안이라면.

박= “국민통합은 이익통합이 아니다. 결국은 가치통합이다. 국민 모두가 존중하는 공동의 가치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 모두가 공감하는 공동의 가치라면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헌법이고,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당성이다.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국민 다수를 모아가는 게 국민통합의 지름길이다. 우선 헌법사랑운동을 펼쳐야 한다. 헌법에 대해 국민적 이해 수준이 이렇게 낮은 나라가 없다. 또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국민통합이 가능하겠나. 일단 공동의 가치를 세우기 위해 헌법과 역사를 배우는 것부터 해야 하고, 보수진영이 이를 이끌어야 한다.”

김= “통합의 전제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거다. 진보는 보수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수는 진보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서 이런 움직임을 대한민국의 체제 내에서 통합시켜야 하는데 그 틀이 바로 헌법이다. 하버마스의 ‘헌법적 애국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진화의 여지를 남겨두는 속에서 헌법의 기본가치와 틀을 존중하고 공유해야 한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으면서 국민통합의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는 미국헌법이 좋은 예다.”

_헌재 판결에 대한 반응이나 역사학계의 교과서 논쟁을 감안할 때 헌법 공부나 역사에 대한 자부심 갖기는 현실적인 방책이 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박= “지금부터 해야 한다. 우리 헌법은 일본헌법과 독일헌법을 참고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것만 잘 알려도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역사 부분은 1995년 청와대에서 근무할 때 제대로 해보려고 했었다. 해방 후 우파든 좌파든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한 측면을 과장하고 다른 측면은 감추는 경우가 많았는데, 역사를 권력투쟁의 측면에서 서술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현대사문제연구소’를 만들었다. 방대한 현대사 관련자료를 수집했고, 한쪽 주장 뿐 아니라 다른 쪽 주장도 넣었다. 학자들이 모여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을 모아 중심을 잡아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같은 땅에 살면서 정체성과 역사관이 다르면 공동체가 온전하게 유지될 수 없다.”

_여야 정치권에 현실적으로 주문하고픈 얘기 한마디씩 해달라.

박= “새누리당에겐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지금은 지역주의에 기대는, 공당이 아니라 사당ㆍ붕당이자 야합집단이나 마찬가지다. 당원은 없고 의원만 있어서 국민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정당이다. 특권 몇 개 내려놓는 것 가지고는 안된다. 여의도에 매몰되지 말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보수적 가치에 충실했는지를 돌아보고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어갈지, 이를 위한 전략과 비전이 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시대가 요구하는 보수혁신이 가능하다.”

김= “중국의 대국굴기ㆍ패권주의와 일본의 군국주의 경향 등으로 볼 때 우리 사회는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두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정파는 불가피하겠지만 여야 모두 이를 초월한 공공성의 정치로 가야 한다. 국가 능력과 제도적 능력과 국민 역량을 모두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우리 사회에선 여권의 인적ㆍ물적 자원이 더 많다. 이를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높이고 장기 발전을 도모하고 통일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합리적 진보와 파트너십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중심이 돼야 한다.”

정리=임준섭기자 ljscogg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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