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원ㆍ이순애씨 부녀 상봉
경찰이 해외입양 기록 확인
“남매 키우며 혈육 더 그리워져”
24일 오전 10시 50분쯤 대구 수성구 대구경찰청 별관 여성청소년수사계. 하늘색 체크무늬 셔츠와 흰 바지 차림의 이세원(56)씨가 탁자에 앉아 초조한 표정으로 출입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11시쯤 출입문이 열리며 흰색 블라우스와 검정색 치마 차림의 30대 여성이 벽안의 건장한 남성과 들어섰다. 한눈에 봐도 31년여 전 헤어진 딸이었다. 이씨는 벌떡 일어서 다가서며 “니가 순애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꺼억꺼억’ 소리 내 울며 딸의 손을 굳게 잡았다. 이씨는 “(너무 늦게 찾아서)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1987년 1월 실종됐다가 독일로 입양된 여성이 경찰의 도움을 받아 24일 오전 대구경찰청에서 감격의 상봉을 했다. 이세원ㆍ순애(35)씨 부녀 얘기다.
큰아들과 함께 순애씨 부부와 상봉한 이씨는 취재진에게 30여분간 딸의 실종과 찾아온 과정 등을 설명한 뒤 점심을 하러 자리를 떴다
이씨 등에 따르면 이들이 헤어지게 된 것은 1987년 1월 13일. 순애씨가 3살 반이던 때였다. 대구 북구 경북대 인근 대도시장에서 발견된 순애씨는 대구 중구의 한 보육시설에 맡겨졌다가 1년6개월만에 독일로 입양됐다.
이씨는 “사정이 있어 모친에게 남매를 맡겨두고 경북 구미에서 일을 하다 5월에 와 보니 딸이 사라졌다”며 “대구 동구 북구 일대 보육원을 다 뒤졌지만 행방을 알 수 없었다”고 실종 상황을 설명했다.
이들 부녀가 인연이 닿게 된 것은 이씨가 2016년 6월 대구 서부경찰서에 “딸을 찾아달라”고 요청하면서부터다. 경찰은 각종 기록을 뒤졌지만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자칫 미제로 남을뻔하던 것이 대구경찰청 장기실종사건수사팀이 해외입양 행적 파악에 나서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아버지를 찾고 있던 순애씨가 지난해 11월 중앙입양원에 도움을 요청한 사실을 알게 된 대구경찰청이 유전자검사를 통해 부녀지간임을 확인하고 이날 상봉을 주선했다.
아버지 이씨는 “죽기 전에 생이별한 자식이 보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나. 저처럼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을 텐데,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싶어 오늘 자리를 자청했다”고 말했다.
순애씨도 “10년 전 길러주신 양모가 돌아가시고, 결혼 후 두 남매를 낳아 기르면서 혈육의 정이 그리워졌다”면서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정말 이런 (기쁜)일이 생길 줄 몰랐다”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독일에서 건축관련 일을 하는 순애씨는 캐나다인으로 독일리그에서 활동 중인 아이스하키선수 마르쿠스(34)씨와 결혼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대구경찰청에서 공개적으로 상봉을 마친 이씨 가족은 이날 순애씨가 실종 직전까지 살았던 할머니 집과 대도시장 등을 둘러보았다. 또 1주일 가량 국내에 체류하며 못다한 혈육의 정을 나눌 예정이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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