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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강요에 의한 피해자로 판단… 180도 다른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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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강요에 의한 피해자로 판단… 180도 다른 판결

입력
2018.02.06 04:4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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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죄 대부분 무죄

“경영권 승계 추진한 증거 없어”

#1심 핵심 ‘묵시적 청탁’ 불인정

“전형적 정경유착 아니다”

“대통령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거액 뇌물공여로 나아간 사안”

#집행유예 선고 배경

獨 송금, 뇌물공여 의사로 판단

‘중형’ 재산 국외도피 혐의 무죄

#특검 전략이 무너진 이유

안종범 업무수첩 등 증거서 배척

‘0차 독대’도 신뢰성 인정 못받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뒤 석방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뒤 석방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징역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아 석방된 건 항소심 재판부가 이 부회장을 강요에 의한 피해자로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겐 ‘경영권 승계 현안’과 ‘부정청탁’이 없었고, 단순히 박근혜(66ㆍ구속기소)전 대통령과 최순실(66ㆍ구속기소)씨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뇌물에 해당한다고 인지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승마지원 부분을 제외한 다른 뇌물공여 혐의가 모두 무죄가 됐다. 가장 형량이 높았던 재산국외도피 혐의 역시 ‘범죄 의도’가 없다고 인정된 점도 선고 결과에 크게 작용했다.

‘세기의 재판’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 정형식)는 이날 열린 선고공판에서 쟁점이 된 ‘경영권 승계 현안’과 ‘묵시적 청탁’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이 받고 있는 5가지 혐의 가운데 핵심인 뇌물공여 혐의가 인정되기 위해선 두 가지가 전제돼야 한다. 1심 재판부는 ‘포괄적 승계 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을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를 위해 현안이 추진됐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개별 현안들이 이 부회장의 지배력 확보에 직간접적으로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효과가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지만, 사후적으로 확인될 뿐”이라고 했다.

아울러 각 계열사 운영을 미래전략실이 맡고 있고, 미래전략실 임직원들이 이 부회장을 후계자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승계작업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다는 삼성 측 주장을 모두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설령 승계작업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를 도와달라는 취지의 청탁을 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못 박았다.

재판부가 이 부회장을 강요에 의한 피해자로 판단한 부분이 가장 주목을 받았다. 재판부는 “최고 정치권력자인 대통령이 국내 최대 기업집단인 삼성그룹 경영진을 겁박했다”고 강조했다.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꾸짖은 1심 재판부 판단과 180도 다른 결론을 내린 것이다.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고 판단한 재판부는 제3자 뇌물공여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단을 받았던 16억원 상당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도 무죄로 봤다. 1심에서 무죄로 인정된 미르ㆍK스포츠재단 출연금 부분도 그대로 유지됐다.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는 이유다. 다만 승마지원과 관련해선 “삼성이 코어스포츠에 송금한 돈은 최씨와 딸 개인에 대한 지원금이 됐고, 피고인들도 이 사실을 알았다”는 취지에서 유죄로 인정됐지만 이 부분도 1심(77억여원)보다 훨씬 줄어든 36억원 가량만 인정됐다.

뇌물 혐의 대부분이 깨지면서 뒤따라오는 횡령ㆍ재산국외도피 등의 혐의도 무죄가 나오거나 액수가 줄었다. 특히 유죄가 나올 경우 형량이 가장 높은 재산국외도피 혐의 무죄는 집행유예 선고에 큰 영향을 줬다. 1심은 삼성이 독일 코어스포츠에 보낸 용역대금 36억원 가량에 대해 “도피의 뜻이 있었다”고 유죄를 인정했지만, 2심은 “이 사건 용역대금은 뇌물공여 의사이지 재산국외도피 의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포괄적 현안인 경영권 승계작업을 대가로 한 뇌물제공이라는 특검 논리를 뒷받침했던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업무수첩과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가 증거로서 배척된 것은 반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검은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간의 3차례 독대 이전의 만남, 이른바 ‘0차 독대’가 부정한 청탁의 정황이라며 항소심에서 강력하게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안종범 수첩과 ‘0차 독대’라는 핵심 쟁점에 대해 재판부가 삼성 측 손을 들어주면서 특검 전략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재판부가 안 전 수석 증언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그대로 반영된 사실이 확인된 수첩내용과 이 부회장의 계열사 지배력 확보 등 승계문제가 기록돼 박 전 대통령에까지 보고됐다는 청와대 캐비닛 문건의 증거능력까지 부정한 것은 삼성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재판부는 캐비닛 문건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이 보고서 내용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해도 부정한 청탁의 대상으로서 승계작업 추진에 관해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애매모호한 판단을 내렸다. 징역 2년6월이 선고된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재판에선 이 같은 증거들이 토대가 돼, 박 전 대통령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지시했다는 특검 주장이 인정된 것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안종범 수첩은 이미 이화여대 입시비리 사건, 차은택ㆍ안종범ㆍ장시호 사건의 재판부가 증거로 받아들인 바 있어, 결국 이재용 항소심에서만 배척된 셈이다. 특검이 항소심 판결에 대해 “이재용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사건의 본질을 왜곡한 판결”이라고 강력 반발하면서 대법원에서도 치열한 다툼을 예고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353일만에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담담한 표정으로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353일만에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담담한 표정으로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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