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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가겠다던 성빈이 가족, 모두 투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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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가겠다던 성빈이 가족, 모두 투사가 됐다

입력
2018.04.14 09: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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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4주기]

#故 박성빈 양 가족의 4년

아빠는 세월호 진상규명 방해한

특조위원 출근 저지 투쟁하고

엄마는 4ㆍ16재단 설립 추진단에

언니도 엄마 도와 활동하면서

의학 전공도 심리학으로 바꿔

“작은 삽질 보태야 태산 움직여”

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인 고 박성빈양의 방이 생전 사용하던 모습 그대로 꾸며져 있다. 박소영기자
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인 고 박성빈양의 방이 생전 사용하던 모습 그대로 꾸며져 있다. 박소영기자

“여기가 성빈이 방이야.”

박영우(60)씨가 안방과 마주한 문을 열자 잘 정리된 여학생의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고 작은 곰 인형들이 줄지어 늘어선 침대와 분홍색 커튼. 벽면 한쪽을 채운 책장엔 문제집과 책, 그리고 상장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서로 의젓하게 기댈 수 있는 자매가 되자꾸나! 사랑한다!!’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에는 2013년 미국 유학을 떠난 성빈이 언니 가을(26)씨가 동생에게 보낸 메시지가 그대로 남아있다. 유치원 시절 사진부터 책상 중앙에 자리한 교복을 입은 증명사진까지. 방의 주인 박성빈(단원고 2학년 1반) 양이 얼마나 사랑받고 충실하게 살았는지 곳곳에 묻어났다. 성빈이는 4년 전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로 떠난 수학여행에서 경기 안산시 단원구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곳은 성빈이의 작은 박물관이다.

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인 고 박성빈양의 방이 생전 사용하던 모습 그대로 꾸며져 있다. 박소영기자
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인 고 박성빈양의 방이 생전 사용하던 모습 그대로 꾸며져 있다. 박소영기자

세월호 참사 이후 4년. 주인이 돌아오지 않은 박물관에는 대신 시간의 흔적이 쌓였다. 책상에는 바다에서 건진 성빈이의 스마트폰이 비닐로 싸여있다. 책장 아래에는 부모님이 만든 노란 리본이 한가득 든 비닐백이, 옆에는 2016년 촛불집회 때 들었던 ‘박근혜 퇴진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이 있다. 책장 한가운데, 밀짚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는 성빈이 사진 옆에는 지난해 8월 세월호 가족 청와대 초청 당시 받은 문재인 대통령의 서명이 담긴 이름표가 놓여있다. ‘4ㆍ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추모사업분과장 김미현’. 팽목항에서 사회의 책임방기를 목격하며 “도저히 한국에서는 못 살겠다. 이민을 가겠다”고 외치던 성빈이 어머니다. 가족은 그동안 어떤 시간을 보내온 것일까.

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인 고 박성빈양의 방이 생전 사용하던 모습 그대로 꾸며져 있다. 박소영기자
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인 고 박성빈양의 방이 생전 사용하던 모습 그대로 꾸며져 있다. 박소영기자

참사 이튿날인 2014년 4월 17일. 성빈이 가족을 전남 목포 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난 날이다. 아버지 박영우씨는 이날 사망자 명단에 성빈이 이름이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진도 팽목항에서 목포까지 택시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온 참이었다. 하지만 시신을 확인한 그는 “엄지랑 귀 모양이 다르다”면서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발걸음을 돌렸다.

4월 22일 팽목항에서 만난 어머니 김미현(56)씨는 ‘72시간의 골든타임’ 동안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는 정부와 언론의 왜곡보도에 대한 분노가 컸다. 가을씨는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미국에서 팽목으로 달려왔다. 그는 “팽목에 있는 사람 가운데 실종자를 가장 오래 못 본 사람이 나일 것”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성빈이가 가족에게 돌아온 후 그해 여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세월호 가족들 사이에서 박씨를 본 게 마지막이었다.

4년 만에 다시 박씨를 만난 것은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2차 세월호 특조위)의 첫날인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특조위 회의실에서다. 1기 특조위에서 진상규명 활동을 방해했다는 혐의를 받는 황전원 특조위원에 대한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는 세월호 가족들 틈에 박씨가 서 있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투쟁현장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한편 그동안 김씨는 안산에서 활동을 이어왔다. 그는 가족협의회 추모분과장으로 활동하며 2015년부터 세월호 유가족들과 안산 지역주민들이 함께 어울리는 장터로 지난해 4회째를 맞은 ‘엄마랑 함께하장’을 기획했다. 여기서 세월호 엄마 아빠들은 공방에서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팔고 수익금을 지역 사회 이웃들에 기부해 왔다. 최근 그는 3년간의 준비 끝에 내달 12일 창립되는 4ㆍ16재단 설립추진단 중 한 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의사를 꿈꾸며 미국 유학생활을 하던 가을씨도 이후 3년간 한국에서 어머니를 도와 활동을 하다 전공을 심리학으로 바꿔 5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성빈이를 떠나 보낸 가족은 4년 동안 투사가 되어 있었다.

김씨는 4년 전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 안타까운 사연을 보며 눈물을 흘렸는데, 그때 눈물 흘리는 것에서만 끝나지 않고 안전, 구조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갖추라고 국민이 들고일어났다면 지금 내가 팽목항에 있을까”고 되물으며 “지금 젊은 세대들이 들고일어나야 해. 이 이야기를 꼭 기사에 써 줘야 해요. 제발, 가만히 있지 말라고”라고 호소했다(본보 2014년 4월 23일자 2면 보도☞ https://goo.gl/cxzuMT )

그의 목소리는 사회 전반을 울렸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가만히 있으라’는 이름의 침묵행진이 벌어졌다. 성빈이 집에도 그의 메시지를 접한 후 ‘1년 동안이라도 세월호 관련 활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대학원생들이 찾아오기까지 했다. 김씨는 “광화문이나 청운동에서 그 취지에 동감했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회상했다.

4년간 성빈이 어머니 김씨의 활동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첫 다짐을 발전시켜온 과정이다. 팽목항에서 그는 지금까지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팽목항에서 온갖 인간군상을 보며 ‘인간이 서로에게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게 됐지. 나는 학원을 운영하고 사회봉사도 해 왔고, 두 딸이 공부도 잘했고. 많이 가지면서도 평균적인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아이들에게도 삶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들 보다는 ‘고등학교 가면 영어 수학이 가장 중요해. 그러면 경쟁이 쉬워져’라고 이야기 해 온 거예요. 인간이 지켜야 할 가치는 머리에 있지만, 그걸 실현하려고 한 적은 없었다는 걸 안 거죠. 그게 사회적으로 팽배한 현실이 결국 세월호 참사까지 오게 된 거예요.”

김씨는 삶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4ㆍ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근거해 출범하는 비영리 민간재단인 4ㆍ16재단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 위에서 출발한다. 세월호 참사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가치관을 재점검하고 문화를 바꾸는 작업을 목표로 한다.

물론 그간의 활동이 쉽지는 않았다. 안산 화랑유원지에 추진 중인 4ㆍ16생명안전공원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측의 ‘납골당’이라는 원색적 비난을 받고 있고, 내부에서도 세월호 진상규명 투쟁보다 장기적이고 도착 지점이 보이지 않는 재단 활동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김씨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지칠 때도 있고 누군가 등을 떠미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재단의 출범에는 ‘사회가 이제는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세월호 가족 중 150여 가구가 500만원의 재단 출연금을 부담했다.

“길게 봐야 하는 일이에요. 저 태산을 움직이기 위해 내가 삽으로 세 번 정도 떠 놓고 지치면, 다음 사람이 삽을 건네받는 거죠. 계속 우리가 삽을 이어받는다면 결국 돈 때문에 싸구려 배 사다가 사람을 짐짝처럼 넣는 일은 없어지지 않을까요.”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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