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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입니다’가 뿌린 독립영화 '부흥의 씨'

입력
2017.06.2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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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 포스터. CGV아트하우스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 포스터. CGV아트하우스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20일까지 174만(영화진흥위원회 집계)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신작 영화 ‘하루’와 칸국제영화제 초청작 ‘악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미이라’ ‘원더우먼’에 이어 일일 박스오피스 4~5위를 꾸준히 지키고 있습니다. 개봉한 지 벌써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뒷심이 매서워 200만 돌파도 무난할 듯싶습니다.

‘노무현입니다’는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N프로젝트’라는 가제로 첩보작전 하듯 극비리에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개봉 여부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제작자 최낙용 PD는 “개봉을 못하면 영화를 유튜브에 올려놓고 잠적할 생각이었다”고 하더군요. 결코 농담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이 영화를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소개한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는 “흥행은 정치적 상황의 반전 덕분”이라며 “천재지변”이라고까지 말합니다.

‘노무현입니다’는 전주영화제의 제작지원 프로그램인 전주시네마프로젝트에서 1억원을 투자 받고, 제작자의 지인을 비롯한 개인투자자들이 2억원을 모아줘 어렵게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개봉을 앞두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2억원을, 또 개인투자자들에게서 1억원을 모아 배급비용과 마케팅비용을 마련했습니다. 그렇게 총제작비 6억원이 투입됐죠. 그야말로 마음과 마음이 모여 탄생한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확인한 20일 현재 극장 매출액은 137억 5,000만원입니다. 단순 계산으로 제작비 대비 23배의 매출이 발생한 셈입니다. 이 수익을 극장과 배급사가 5대5로 나누고 배급사는 다시 배급수수료를 뺀 금액을 제작사와 투자자들에게 배분하게 됩니다. 대부분 소액 투자라서 투자자 개개인이 받게 되는 금액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 투자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과 손해를 각오하고서 기꺼이 힘을 보탠 마음들에 보답할 수 있게 됐으니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다행스러움을 넘어 기쁘기까지 합니다.

‘노무현입니다’ 흥행의 의미는 단순히 수익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 수익이 향후 어떻게 쓰일 것이냐가 더 중요하겠지요. 이 영화에 1억원을 지원한 전주영화제는 현재 상황에서 대략 5~6억원을 받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돈은 고스란히 전주영화제 기금으로 적립돼 독립ㆍ예술영화를 위한 지원 사업에 쓰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현재 전주영화제가 한 해 제작지원하는 영화는 각 1억원씩 총 3편입니다. 내년에는 편수가 더 늘어날 수도 있겠지요. ‘노무현입니다’가 독립영화계의 선순환을 위한 재정적 자양분이 된 셈입니다.

‘노무현입니다’ 스틸컷. CGV아트하우스 제공
‘노무현입니다’ 스틸컷. CGV아트하우스 제공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의미가 또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독립ㆍ예술영화의 시장 잠재력을 증명했다는 사실입니다. 충분히 여건만 갖춰진다면 ‘제2의 노무현입니다’는 언제든 탄생할 수 있습니다. 독립영화는 비주류 감성일 것이란 선입견을 없애는 데도 일조했다고 봅니다. ‘노무현입니다’를 통해 독립영화를 알게 된 관객들은 다음에도 좋은 작품이 있다면 일부러 찾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노무현입니다’에서 그랬던 것처럼요. 그러니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인해 재정지원이 끊겨 움츠러든 독립영화계가 다시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입니다’의 산파 역할을 한 전주영화제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주영화제는 지난해엔 최승호 PD의 ‘자백’도 상영했습니다. 국가정보원의 간첩 조작 사건을 파헤친 영화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실세였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영화에 등장하지요. ‘노무현입니다’를 제작지원하기로 한 것도 국정농단사건이 터지기 이전이었습니다.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겁니다.

미국의 선댄스영화제는 수준 높은 독립영화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라라랜드’로 올해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역대 최연소 감독상을 받은 데이미언 셔젤도 선댄스영화제가 발굴한 감독입니다. 독립영화들의 든든한 지원군인 전주영화제는 한국의 선댄스영화제를 꿈꾸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노무현입니다’ 같은 영화가 탄생해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노무현입니다’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제공
‘노무현입니다’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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