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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붓다는 한 폭의 산수화

입력
2015.05.2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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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지난 10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전 시대보다 확실히 더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그것이 인간행복으로 연결되지 않는 나라. 이것이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자존감을 이루지 못하고 상대적 박탈감에 매몰될 때, 인간은 비극적 선택에 내몰리곤 한다. 그러므로 현대인의 내면에는 춘풍(春風)과 같은 계몽과 각성이 필요한 것이다.

‘붓다’를 중국에서는 각자(覺者) 즉 ‘깨달은 사람’이라고 번역했다. 붓다가 ‘각성한 인간’이라는 의미의 대명사인 것이다. 이러다 보니, 불교에는 석가모니, 아미타, 비로자나와 같은 다수의 붓다들이 존재하게 된다. 즉 붓다란 석가모니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완성을 자각한 모든 인류를 가리키는 표현이며 석가모니 역시 이들 중 한 사람일 뿐인 것이다.

붓다라는 명칭이 인간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재벌 2세가 금수저를 물고 나오는 것과 같은 태생적인 가치가 아니다. 석가모니는 ‘인간의 고귀함은 선천적인 태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행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하였다. 붓다 역시 태어나는 것이 아닌 수행의 숭고한 결과물일 뿐이다. 즉 극기(克己)를 통해 스스로 각성한 초인, 이것이 바로 붓다이다. 이런 점에서 붓다는 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가치인 동시에 속박을 풀어버린 인간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아름다운 칭호’라고 하겠다.

석가모니 이전의 인류는 신의 권위에 짓눌려 인간의 성스러운 존엄성을 망각하고 있었다. 이 굴레를 벗어 던져 인간을 신으로부터 해방시킨 것이 인도에서는 석가모니이다. 이 시기 중국에서는 공자와 노자가 같은 일을 했으며, 희랍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신에게 대항하는 이성(理性)의 깃발을 높이 쳐들었다. 이 시기 전 세계에 불어 닥친 인본주의의 물결, 이것을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축의 시대’라고 명명했다.

석가모니가 말하려는 것은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그가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파하라고 설하는 ‘전도선언’(傳道宣言)을 통해 잘 드러난다. 여기에는 ‘모든 이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진리를 이치에 맞춰 조리 있게 설하라’고 되어 있다. 즉 모두의 행복을 위해 올바른 진리를 말하는 것, 이것이 바로 불교인 것이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이야말로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최고의 선(善)’이라고 말했다. 석가모니 역시 인간의 행복을 말할 뿐이며, 그 행복이란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대자유이다.

현대의 잿빛도시와 저성장 시대가 초래한 답답한 미래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강렬한 해방과 자유를 갈망하게 한다. 북송을 대표하는 화가 곽희는 그의 미술이론서 ‘임천고치’(林泉古致)에서 ‘누구나 자연을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그곳에 거처할 수는 없으므로 산수화를 곁에 둔다’고 하였다. 이런 점에서 붓다는 행복과 자유를 꿈꾸는 이들에게 자신을 환기할 수 있는 한 폭의 산수화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석가모니가 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존귀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봄일 수도 있지만(春來不似春)’, 동시에 ‘단지 하나의 떨어지는 낙엽으로 온 천하에 가을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一葉落知天下秋)’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오지 않는 것에 다가가고 숨겨진 것을 찾으려는 모험심으로, 우리 모두 행복이 가득한 본래의 나를 찾아가 보도록 하자. 그것은 어제나 멀리가 아닌 바로 ‘지금’일 뿐이다. 이러한 행복의 밝은 빛이 비칠 때 자살이라는 암울한 그림자는 현대사회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자현 스님ㆍ능인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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