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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나라 망신

입력
2016.10.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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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들어 유독 나라 망신이 잦았다. 취임 직후 박 대통령 방미 중 일어난 ‘윤창중 성추행 파문’은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다. 정상외교를 수행하던 청와대 대변인이 호텔에서 교포 여대생을 성추행 해 물의를 빚자 야반도주하듯 홀로 귀국해 미국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오른 사건이다. 외신에선 한국을 ‘성문화 후진국’으로 취급하는 보도가 쏟아졌다. “젊은 여성에 대한 성추행을 사소한 일로 여기는 경향이 고위층 남성들에게 퍼져 있다”며 한국의 성차별 문화를 도마위에 올렸다.

▦ 임기 중반에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을 문제삼은 일본 산케이신문 기자를 기소해 국제적 비웃음거리가 됐다. 졸지에 한국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국가로 분류됐고, 국가 이미지는 수십 년 전으로 후퇴했다. 해외 주요 언론은 한국을 유신시대나 군사정권 때와 같은 모습으로 묘사했다. 시대착오적 언론통제는 법원에서의 무죄 선고로 다시 한번 망신을 샀다.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행 중인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우리의 국격을 크게 실추시켰다. 유엔에서조차 국정교과서 채택 국가에 폐지를 권고한 마당에 시대 흐름을 역행하고 있으니 손가락질 받는 게 당연하다.

▦ 정권 말기가 되자 박 대통령이 직접 나라 망신에 뛰어든 형국이다.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사태가 외신에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최씨는 외신에서 ‘제정 러시아를 파멸로 몰고 간 괴승 라스푸틴과 같은 인물’‘부패 스캔들의 중심에 있던 불가사의한 여성’‘재단 돈을 개인ATM(현금인출기)처럼 사용한 인물’‘그늘의 실력자’ 등으로 묘사됐다. 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공직은 물론 공식적인 프로필도 없는 최씨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랐다”는 조소와 함께 “정치적 궁지에 몰려 있다”고 강조했다.

▦ 박 대통령과 최씨의 스캔들에 우리 사회는 깊은 우울감과 허탈감에 짓눌려 있다. “어디 가서 한국 사람이라고 하기 민망하다”며 자괴감과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 많다.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박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을 늘 입에 달고 다닌다. 1991년 2월 21일 ‘열국지’를 읽은 뒤에는 일기에 이런 글을 썼다. “지도자가 마음이 바르지 못하게 나갈 때 나라에 망조가 드는 것은 시간 문제다.” 지금 우리가 딱 그 꼴이다.

이충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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