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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걸음마 배우는 정보 혁명

입력
2018.06.17 11:15
수정
2018.06.19 14:26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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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잘 정보 혁명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무슨 의미이며, 그 혁명으로 어떤 세상을 맞을까. 21세기의 컴퓨터 처리 능력은 1970년대 초반의 1,000배에 이른다. 인터넷은 거의 모든 것을 연결한다. 1993년 중반에는 전세계에 약 130개의 웹사이트가 있었지만 2000년에 그 숫자는 1,500만을 넘어섰다. 35억 명 이상이 온라인에 있고, 2020년까지 ‘사물 인터넷’이 200억 개의 장치를 연결할 것이라고 한다. 정보 혁명은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걸음마를 배우는 단계이다.

지금 정보 혁명에서 중요한 것은 소통의 속도가 아니다. 전신을 이용한 실시간 통신은 19세기 중반부터 가능했다. 중요한 변화는 정보를 전송하고 저장하는 비용을 크게 줄인 것이다. 자동차 가격이 컴퓨터 작업에 드는 비용처럼 빠르게 싸졌더라면 아마도 지금은 점심 한끼 값으로 차를 살 수 있을 것이다. 기술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면 접근이 쉬워지고 진입 장벽도 낮아진다. 실용적인 목적으로 전세계에 전송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사실상 무한대다. 정보 저장 비용도 크게 줄어 빅데이터 시대가 열렸다. 과거라면 창고를 가득 채울 정보를 이제는 셔츠 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

20세기 중반에 사람들은 컴퓨터와 통신이 이끄는 정보 혁명으로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예견한 중앙통제사회가 오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빅브라더는 중앙 컴퓨터로 우리를 감시해 개인의 자율성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컴퓨터 작업 비용이 싸진데다 컴퓨터의 크기도 스마트폰 등 휴대 가능한 정도로 줄어들면서, 개인끼리 직접 소통이나 새로운 집단 형성을 돕는 분산 효과가 나타나 중앙 집중의 가능성을 상쇄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기술 발전 탓에 분산된 감시가 가능해졌다. 수십억 명이 원해서 갖고 다니는 추적 장치는 기지국 접속 때마다 끊임없이 그들의 사생활을 침해한다. 빅브라더가 우리 호주머니 속에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셜미디어는 새로운 초국적 집단을 만들어내지만, 정부 등이 조작할 여지를 열어준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가 한 것처럼 2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을 연결한 페이스북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할 수 있다. 유럽은 새로운 일반정보보호규정(GDPR)을 통해 개인정보보호 규칙을 만들고자 하지만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다. 그 한편에서 중국은 감시를 위해 여행 같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회적 신용등급을 개발 중이다.

정보는 힘을 만들어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선이나 악을 위해 이전보다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그 힘은 정부뿐 아니라 대기업, 비영리단체에서 범죄자, 테러리스트 등에 이르기까지 비국가 행위자들도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국민 국가가 종말을 고했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는 세계 무대에서 여전히 가장 강력한 행위자이다. 그러나 그 무대는 복잡해졌고 많은 새로운 행위자가 나타나 소프트파워 영역에서 경쟁하고 있다. 해군이 강력하면 해로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 세상에서는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한다. 19세기 유럽에서 권력이란 전쟁에서 이길 능력이었지만, 글로벌 정보화시대에 승리는 종종 어느 군대가 이기느냐 보다 어떤 이야기가 이기느냐를 의미한다.

공공외교와 관심을 끌고 설득하는 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가운데 공공외교가 바뀌어 가고 있다. 외교관들이 고립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오지로 영화 상영용 프로젝터를 실어 나르거나 철의 장막 뒤에서 BBC 방송을 들으려고 단파 라디오를 찾던 건 옛날 이야기다. 기술 발달로 정보가 넘쳐나면서 ‘풍요의 역설’이 생겨났다. 정보가 너무 많다 보니 웬만해선 어떤 정보에도 주목하지 않는 것이다.

정보의 양이 너무 많으면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 주목이 희소 자원이 되는 것이다. 소프트파워가 과거보다 훨씬 중요한 핵심 자원이 되었지만, 정보전이라는 하드파워의 가치도 그에 못지 않다. 평판이 중요해질수록 신뢰를 만들어내거나 금 가게 하는 정치 투쟁은 늘어난다. 선전은 비웃음을 살뿐 아니라 국가의 신뢰를 훼손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라크전쟁 당시 아부 그라이브와 관타나모 수감자에 대한 처우는 미국이 말해 온 가치와 다른 것이었고, 미국은 위선적이라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미국에서 잘 살고 있는 무슬림을 아무리 방송으로 보여준다 한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명백히 거짓인 트럼프의 트위터는 미국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소프트파워를 감소시킨다.

공공외교의 효과는 돈을 얼마나 썼는지가 아니라 (인터뷰나 여론조사로 파악한)태도 변화가 얼만큼 있었는가로 평가할 수 있다. 여론조사 등을 보면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감소하고 있다. 트위터는 글로벌 의제 설정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것을 신뢰할 수 없을 경우 소프트파워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급속히 발전하는 인공지능이나 기계학습 기술로 이런 작업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로봇이 만든 메시지는 알아내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신뢰와 설득력 있는 서사가 완전히 자동화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ㆍ국제정치학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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