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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과 '착취'가 여전... 서부극을 계속 만드는 이유

입력
2017.05.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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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더스트(2016)

“이젠 군대가 아니라 은행이 착취”

 다른 가면을 쓴 서부 학살 보여줘

●더 홈즈맨(2014)

“서부 간다는 놈하곤 결혼하지 마”

 노동 착취하는 세상에 대한 폭로

●슬로우 웨스트(2015)

“살아남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서부시대 피해자에 성찰과 애도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가장 자주 본 영화는 서부극이었다. 영화 ‘셰인’이나 ‘황야의 7인’, ‘석양의 무법자’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르겠다. 흙먼지를 날리며 나타난 주인공은 ‘겁나게’ 총을 빨리 뽑을 줄 알고, 아이들에게는 친절하며, 악당들에게는 난폭했다. 그런 사람이 내 옆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지금 아이들이 슈퍼히어로물을 보면서 느끼는 동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모든 악당을 제거하고 난 주인공은 홀연히 사라진다. 내가 사는 마을에 정착하여 행복하게 살면 좋겠지만, 그는 가버린다.

프랑스 영화 감독 장 르느와르는 서부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웨스턴 영화(서부극)에서 가장 놀랄 만한 일은 그 영화들이 모두 같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서부극의 뻔한 플롯을 비판하는 이야기 같지만 그는 한 마디를 덧붙인다. “이런 점은 감독들에게 무한정한 자유를 준다.” 르느와르의 말은 예술에서의 제약이 커다란 자유를 제공한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많은 예술은 제약에서 출발한다. 영화는 스크린을 통해 상영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고, 수많은 교향곡들은 네 악장으로 이뤄져 있고, 소설은 문자만으로 이야기와 인물을 묘사해야 하며, 건축은 현실 공간이라는 제약 속에서 만들어진다. 형식은 예술가들이 뛰어넘어야 할 벽이 아니라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울타리 같은 것이다. 수많은 서부극들이 비슷한 이유는 그 형식으로 해야 할 말이 무척 많기 때문이고, 새로운 형태의 서부극이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는 여전히 그 형식으로만 할 수 있는 말들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때 서부극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간단명료한 이분법이었다. 가족을 괴롭히는 악당이 있고, 야만을 응징해야 하는 문명세계가 있다. 아군과 적군의 구분은 뚜렷하다. 서부극이라는 장르의 이름 역시 극명한 이분법이다. 동부의 반대말이 서부인 것이다. 동부에서 서부로 팽창해간 것이 미국의 역사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두 세계의 충돌이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고, 그 안에는 엄청난 학살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유지되는 한 서부 영화의 전통은, 그리고 명료한 이분법의 세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메인타이틀픽쳐스 제공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메인타이틀픽쳐스 제공

2016년에 개봉한 ‘로스트 인 더스트’(감독 데이비드 매켄지)는 서부극의 형식을 고스란히 가져온 작품이다. 이 영화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에서도 각본을 썼던 타일러 셰리던의 대사가 일품이다. 은행을 터는 형제의 대사도 좋지만 그들을 뒤쫓는 두 명의 보안관 해밀턴(제프 브리지스)과 알베르토(길 버밍햄)의 핑퐁 대화는 한 문장도 놓치기 아깝다. ‘깐족 대마왕’ 해밀턴은 사사건건 알베르토에게 시비를 거는데, 거의 유일하게 말싸움을 벌이지 않는 장면이 있다. 알베르토가 이렇게 얘기할 때다.

“외지인들이 와서 그들을 죽이고 도시를 무너뜨리고 땅을 차지했어요. 150년 전만 해도 우리 조상들 땅이었어요. 지금 보이는 모든 게, 어제 본 모든 게, 저들의 증조부모들이 빼앗기 전까진. 이젠 후손 놈들이 착취하고 있죠. 이번엔 군대가 아니라 저 개자식들 손으로.”

그리고 알베르토는 손가락으로 은행을 가리킨다. 서부시대의 학살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다른 가면을 쓰고, 새로운 명찰을 달고 나타나서 여전히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더 홈즈맨'. 메인타이틀픽쳐스 제공
영화 '더 홈즈맨'. 메인타이틀픽쳐스 제공

2014년 만들어진 ‘더 홈즈맨’(감독 토미 리 존스)은 개척시대의 척박한 삶을 견디지 못해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는 세 여인을 동부로 옮겨 가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방향성이 중요하다. 동부로 돌아간다는 것은, 서부로 팽창해가던 미국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이고, 출발점으로 돌아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원인을 찾는 일이다. 모든 일을 겪은 조지(토미 리 존스)가 동부의 소녀에게 이런 충고를 한다.

“아직 있지도 않은 농장 운운하며 서부 간다는 놈하곤 결혼하지 마. 여기서 살아.”

별 것 아닌 것 같은 대사지만, 미래의 보상을 약속하며 현재의 노동을 착취하는 난폭한 세상에 대한 폭로이자, 미국의 그릇된 이상을 비판하는 강력한 한방이다.

영화 '슬로우 웨스트'. 영화공간 제공
영화 '슬로우 웨스트'. 영화공간 제공

존 매클린 감독의 ‘슬로우 웨스트’(2015)는 한편의 동화 같은 서부극이다. 제목처럼 느리게, 서부의 세계로 진입하는 스코틀랜드 소년의 이야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무엇보다 인상적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죽은 열일곱 명의 시체를 시간의 역순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은 과정에 대한 반성이자 방향에 대한 성찰일 것이다. 미국의 땅을 서부로 넓히는 동안 죽은 사람들에 대한 마지막 애도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도 의미심장하다.

“살아남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김중혁 소설가·B tv ‘영화당’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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