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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독고다이’ 홍준표 대표가 길을 잃은 까닭

입력
2018.04.02 15:4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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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아직도 그 당 이름을 곧바로 떠올리지 못한다. 지금도 한참 생각해야 ‘자한당’, 그 다음에 ‘자유한국당’이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그 당의 대표에 대해 말하는 게 시간낭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야당이 건강해야 국정이 건강할 수 있다’는 정치학 교과서 같은 이유 때문에 홍준표 대표에게 쓴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유력한 정당의 대표이기에 정치현상의 하나로서 문제점을 짚어 본다.

홍준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독불장군’, 혹은 일본어 표현을 빈 ‘독고다이’다. 지난해 한 칼럼에서 그를 ‘독불장군’이라고 하자 홍 대표는 “언제나 주변의 조언을 듣고 결정하며 결정하면 머뭇거림이 없는 독고다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이게 무슨 차이일까? 참고로 독고다이는 특공대(特攻隊)의 일본식 발음이다.

여기서 홍 대표의 부정확한 언어 사용의 한 단면이 보인다. 흔히 그는 자신이 어느 누구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홀로 커 왔다는 것을 강조할 때 “홍준표는 독고다이”임을 강조해 왔다. 그게 특공대랑 무슨 상관인가? 혹시 그는 독고다이의 독고를 우리 한자 독고(獨孤)로 착각한 게 아닐까? 특공대란 오히려 지휘부의 특명만을 수행하는 부대 아닌가? 쓴소리를 하기에 앞서 쓴 웃음부터 짓게 된다.

홍 대표가 동양고전을 즐겨 인용하는데 ‘정통’은 아닌 듯하다. 삼국지 운운할 때도 있지만 실은 그 또한 정통은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정작 한 정당의 리더로서 홍 대표가 보여 준 리더십은 한마디로 ‘무협지 리더십’이다. 지난해 당 대표가 되고서 인용한 육참골단(肉斬骨斷)이라는 말도, 절박감의 표현이라 봐 주더라도, 한 정당의 미래를 밝히는 자리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자기 살을 베어 내 상대의 뼈를 끊겠다는 것인데 민주국가 정당의 대표가 취임사에서 가장 먼저 내세울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아마도 읍참마속(泣斬馬謖)은 너무 자주 쓰이다 보니 낡아 보여서 그 말을 찾은 것 같은데 지나쳤다. 게다가 시비를 걸자면 살을 베어 내는 모습도, 뼈를 끊는 모습도 지난 10개월 사이에 보여 준 바 없다. 한마디로 말장난이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공자의 리더십에 대한 통찰 중 하나가 바로 필부의 용맹(匹夫之勇)과 아녀자의 어짊(婦人之仁)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이 둘은 눈앞의 사건을 두고 즉자적(卽自的)으로 반응하는 것을 말한다. 지도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게 공자의 생각이다. 눈앞의 강도가 있다고 해서 내가 찔러 죽이고 눈 앞의 불행에 한없이 동정만 하는 게 각각 필부의 용맹과 아녀자의 어짊이다. 이들의 행동이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지도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동안 사고 현장마다 찾아갔던 대통령의 모습이 아녀자의 어짊의 전형이라면 지난 10개월 동안 보여 준 홍 대표의 모습은 전형적 필부의 용맹이다. 그것도 말만 그랬을 뿐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은 없다.

물론 지도자의 과거 체험은 중요하다. 홍 대표가 검찰이나 도지사 시절, 자신의 체험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도 대표로 전국체전 나가는 것과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나가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홍 대표는 여전히 도 대표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운데 그것은 ‘독고다이’를 자랑스러워하는 무협지 리더십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으로 보인다.

‘논어’에서 한 구절 권한다. 관즉득중(寬則得衆), 너그러울 때라야 대중을 얻을 수 있다. 여론조사 잘못됐다지만 ‘그 당’ 10% 중반 지지율은 크게 잘못된 것 같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지금처럼 계속 인색하면 그나마 더 떨어질 것이다. 인즉실중(吝則失衆)이다. 인(吝)은 지금 홍대표가 보여 주는 모습, 즉 인색하다는 뜻이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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