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내 곁의 이방인] “외국인과 밥 한번 먹고 대화하면 선입견 없애는 데 큰 도움”

입력
2017.10.14 04:40
9면
0 0

# 미래세대 참여 ‘한강네트워크’

작년 국내외 전문가 모여 발족

다문화 공존 주제 프로젝트 진행

# 중국 동포 돕는 ‘동포세계신문’

15년째 가리봉 지키는 김용필씨

마음의 벽 허물고 징검다리 역할

# 이주여성 비영리단체 ‘톡투미’

이레샤 대표가 8년째 이끌어

인형 제작 수익금으로 자립 지원

한국이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가 공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서로 다른 피부색, 종교, 역사적 경험을 지녔지만 한국과 다른 나라를 잇는 다리가 되고자 노력하는 세 사람을 만났다. 더 많이 소통해 믿음을 쌓고, 결국 누구나 사회 일원으로서 제 몫을 하는 것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드는 길이었다.

이해: 서로를 좀 더 알기

카디르 아이한(왼쪽에서 두번째) 한국외대 교수가 한강학술문화교류네트워크 관계자들과 프로그램 운영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카디르 아이한(왼쪽에서 두번째) 한국외대 교수가 한강학술문화교류네트워크 관계자들과 프로그램 운영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카디르 아이한(30)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5월 한강학술문화교류네트워크(한강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한국인과 외국인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해 인종, 종교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서로 배우고 고민을 나눌 기회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역시 야부즈 제프 KAIST 교수, 나정원 강원대 교수를 비롯해 교수, 작가, 변호사 등 국내외 전문가 20여 명이 이사 및 자문위원으로 동참했다.

카디르 교수가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의 다리가 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뉴질랜드 유학 시절 이웃에 살던 한국인 가족과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뉴질랜드라는 낯선 나라에서 만난 한국인 가족은 제게 배려와 정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줬죠. 서구 사람들과 한국인의 차이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뉴질랜드에서 태어나면 인종, 종교, 부모의 출신 국가와 상관없이 뉴질랜드인으로 여기지만 친구로 사귀기는 어려운 반면 한국 사람들은 한국인과 외국인을 철저히 나누지만 친구가 될 가능성은 훨씬 높다는 것. “뉴질랜드 사람들은 외국인을 많이 겪어 봤고 잘 알지만 개인주의 성향 때문에 서로 부대끼는 걸 싫어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을 잘 몰라 처음엔 경계하죠. 그런데 외국인의 삶을 조금만 더 잘 알면 상황이 달라지는 거예요.”

한강네트워크는 특히 대학생을 비롯한 미래 세대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강청년포럼은 한국인 학생과 외국인 학생들이 하나의 주제를 정해 전문가 강의를 듣고,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1기 참가자들은 ‘다문화 공존’이라는 주제로 한국 내 외국인들을 인터뷰했다. 이런 경험은 머리로는 알아도 피부로 느끼지 못하던 편견을 깨닫게 한다. 대학생 최홍서(24)씨는 한국에서 식당으로 성공한 외국인 사업가, 국내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외국인을 만나 한국에서 살면서 겪는 어려운 점 등을 인터뷰했던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사실 다문화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텍스트 위주여서 공감이 잘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한강청년포럼을 통해 외국인과 함께 밥을 먹으며 그들의 고민에 대해 대화하는 것 자체가 제가 갖고 있던 선입견을 없애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올해 2기 참여자들은 ‘성 평등’을 주제로 예술인복지재단의 도움을 받아 ‘단편 영화’를 만들고 있다. 한국인 가정과 외국인 가정을 일대일로 짝지어 서로 집을 방문하고 문화 교류를 할 수 있는 ‘패밀리 매칭 프로젝트’, 매주 목요일 독서 토론을 진행하는 ‘책 읽는 목요일’ 등도 진행 중이다. 이달 21일에는 한국 학생, 외국인 학생, 교수 등이 참가하는 한강국제풋살대회도 개최한다.

한국인 전문가들과 외국인 전문가들을 모아 학술,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카디르 아이한 한국외대 교수. 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한국인 전문가들과 외국인 전문가들을 모아 학술,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카디르 아이한 한국외대 교수. 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카디르 교수는 특히 북미, 유럽에서 인종ㆍ종교의 차이에서 비롯한 충돌이 계속되는 상황을 한국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역시 갈등의 조짐은 있습니다. 충돌이 한 번 일어나면 더 많은 사회적 자본이 소요되기 때문에 그 전에 막아야 합니다. 한국에서 테러가 일어난다면 이는 한국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 있는 모두의 일이죠. 이를 대비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도 함께 해야 할 일입니다.”

신뢰: 상대방을 믿고 존중하기

15년째 가리봉동 지킴이로 활동 중인 김용필(가운데) 동포세계신문 편집국장이 사무실에서 중국 동포들을 고충을 듣고 있다.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15년째 가리봉동 지킴이로 활동 중인 김용필(가운데) 동포세계신문 편집국장이 사무실에서 중국 동포들을 고충을 듣고 있다.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김용필(48) 동포세계신문 편집국장은 15년째 ‘가리봉동 지킴이’로 활약 중이다. 거의 매주 16페이지 신문을 통해 중국 동포들이 접하기 어려운 한국의 관련 법이나 정책을 전한다.

“중국 동포 입장에서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데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한국의 법과 제도였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폭력 사건이 일어나도 당사자들끼리 합의하면 문제삼지 않지만, 한국은 한 번 경찰에 신고가 들어가면 당사자끼리 합의와 상관없이 조사받고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죠.”

김 국장은 1990년대 후반 대학 졸업 후 통일 전문 잡지에서 일하며 구로구 가리봉동의 중국 동포 사회를 접하게 된 뒤 이들의 정착을 돕는 일에 나서게 됐다. “당시만 해도 중국 동포 대다수가 불법체류자 신분이었고 한국 사람들을 보면 경계하는 경향이 강했죠.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 전후로 한편으론 불법체류자를 단속ㆍ추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에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각종 비자 제도가 만들어지는 일이 벌어지면서 중국 동포 사이에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속인다’는 오해가 깊어졌고 마음의 벽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을 ‘어머니 나라’라고 생각했던 중국 동포 입장에선 일종의 배신감이었다. “신뢰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인이 중국 동포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도우려 한다는 점을 인식시켜야겠다고 느꼈죠.”

한동안 중국 동포들을 지원하는 교회에서 소식지 만드는 일을 하던 그는 2003년 독립해서 ‘가리봉 중국동포타운 신문’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동포세계신문으로 제호를 바꿨다. 단순히 동포사회의 소식을 전하는 데에서 벗어나 출입국관리사무소를 비롯해 한국의 정부 기관을 찾아가 동포들이 가장 궁금해 할 내용을 듣는 통로 역할을 해 오고 있다. 때로는 중국 동포 입장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용필 동포세계신문 편집국장이 최근 이슈가 된 영화 '청년 경찰' 문제를 다룬 신문을 펼쳐 보이고 있다. 뒤쪽 벽에는 2003년 가리봉동 불법체류자 문제를 다룬 신문이 액자 안에 걸려 있다. 류효진기자
김용필 동포세계신문 편집국장이 최근 이슈가 된 영화 '청년 경찰' 문제를 다룬 신문을 펼쳐 보이고 있다. 뒤쪽 벽에는 2003년 가리봉동 불법체류자 문제를 다룬 신문이 액자 안에 걸려 있다. 류효진기자

2005년 특별귀화를 해서 한국 국적을 얻은 중국 동포 손철호(57)씨는 “많은 중국 동포들이 여전히 곤란함을 겪고 사정 밝은 누군가가 알려주었으면 할 때가 많다”며 “김 국장 같은 분들이 징검다리 역할을 해 줘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가족 구성원 중 일부만 한국에 와서 돈 벌어 중국에 송금하고 때가 되면 중국에 돌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갈수록 가족들을 한국으로 불러오는 중국 동포들이 많아졌다. 김 국장은 “그만큼 한국의 구성원이 돼 적응하려는 마음이 강합니다. 한국 사회가 조금만 더 중국 동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이들도 마음의 빗장을 걷어낼 준비가 돼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자립: 스스로 서기

이레샤 페라라 톡투미 대표가 모니카 인형과 라자 코끼리 쿠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이레샤 페라라 톡투미 대표가 모니카 인형과 라자 코끼리 쿠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스리랑카 출신으로 한국인과 결혼한 이레샤 페라라(42)씨는 2010년 결혼이주 여성의 자립을 돕는 비영리민간단체 ‘톡투미(Talk to me)’를 만들어 8년째 이끌고 있다. 10명으로 시작했던 이 단체는 현재 5,000명 이상이 참여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주 여성들은 남들의 도움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야 합니다. 스스로 재능과 전문성을 살려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 기회를 만들어야 해요.”

이레샤 대표는 의류 디자이너로 일하던 2001년 사업 차 한국에 왔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결혼을 하고 한국 국적을 얻고 아이 둘(아들, 딸)을 낳아 키웠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뒤 다시 일을 시작하려 했지만 경력이 단절된 이주 여성이 일 할 기회를 얻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였다. “한국에서 어떤 사업 아이디어로 어떻게 사업체를 만들고 운영할지 등 모든 게 막막했어요. 게다가 이주 여성이 어딜 감히 한국에서 일을 하느냐는 시선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이주 여성들끼리 힘을 모아 헤쳐 나갈 수밖에 없겠구나 마음 먹었죠.”

톡투미의 첫 번째 시도는 모니카 인형이었다. 이주민과 선(先)주민을 끊임없이 구별하는 한국인의 인식을 바꿀 방법을 고민하다 누구에게나 친근한 인형 만들기를 시작했다. 모니카 인형은 똑같은 모습이 하나도 없는데, 세상 사람들이 제각각의 피부색과 외모를 가졌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다. 이주 여성과 선주민 자원봉사자들이 디자인, 원재료 수급 등을 함께 하고, 완성된 인형은 애니메이션 센터, 벼룩시장 등에서 판매한다. 자기만의 인형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톡투미에 신청하면 기본 몸통과 도안 등이 담긴 키트를 보내준다. 인형과 키트 판매 수익금은 이주 여성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지원, 해외 아동 교육 환경 개선 등에 쓰고 있다. 국내외 소외 계층 아이들에게 인형을 기부하거나 교육 도구로 활용하기도 한다. 모니카 인형에 이어 라자 코끼리 쿠션 사업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부터는 ‘톡투미 다밥 협동조합’을 통해 ‘톡투미 다밥’이라는 밥차 사업을 시작했다. 이주 여성 6명이 2인 1조로 서울밤도깨비 야시장에서 태국, 베트남, 인도 요리를 판매하고, 각국 대사관이나 서울시 행사 등에 도시락, 케이터링 서비스를 제공한다. 외국 전통요리를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이주 여성 요리 강사를 파견해 요리법과 함께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가르치는 일도 한다.

톡투미 소속 이주 여성들이 서울밤도깨비야시장에서 '톡투미다밥'이라는 이름의 밥차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김주은 인턴기자
톡투미 소속 이주 여성들이 서울밤도깨비야시장에서 '톡투미다밥'이라는 이름의 밥차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김주은 인턴기자

밥차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베트남 출신 호지완(35)씨는 “새 메뉴 아이디어 내고 만들어 보고 맛 보고 평가하고 부족한 점을 고치는 과정 전부를 우리 힘으로 해내고 있어요. 닭고기 덮밥은 가게 문 닫기 몇 시간 전에 재료가 다 떨어질 정도로 인기가 많아요. 처음에는 우리가 과연 낯선 한국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부정적이었지만 이제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분명 있구나 자신감을 갖게 됐죠. (한국인) 남편도 처음에는 왜 이런 걸 하느냐는 식이었지만 지금은 가게 일도 도와주고 응원해 줍니다”라고 말했다.

이레샤 대표는 이제 진짜 자립 사업을 시작한 셈이라고 했다. 이주 여성들은 이제 고기 잡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렇게 당당한 이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