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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역차별받는 이른둥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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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역차별받는 이른둥이들

입력
2014.11.2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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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치료비 부담 위해 빚내고

경제활동 위축ㆍ가족 갈등도 겪어

정부 지원 예산은 만성적 부족

출산희망온도를 포근하게 유지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약속과 달리 지원금 지연지급 등 이른둥이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어 근원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출산희망온도를 포근하게 유지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약속과 달리 지원금 지연지급 등 이른둥이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어 근원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임신 25주 6일 만에 세상에 나온 사내 아기 지민. 진단서에 적힌 병명만 28가지인 지민이는 병원의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에서 세상살이를 시작했다. 고작 790g으로 태어난 아기를 바라보며 엄마는 출생신고를 하고 곧바로 사망신고를 하게 될까 겁이 났다.“아이만 버텨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 내겠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살릴 수 있다는 믿음 속에 시작한 치료. 하지만 치료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소변이 나오지 않아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복막투석에 성공했지만 동맥관개존증(태아기에 대동맥과 폐동맥 연결 혈관인 동맥관이 출생 직후에도 닫히지 않고 계속 열려 있는 상태)을 치료해야 했고, 미숙아 망막증으로 눈 수술도 했다. 지민이는 입원 6개월이 지나서야 호흡기를 떼고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있었다. 지민이를 살리는데 들어간 비용만 2억원. 부부는 그 중 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은 3,000만원의 진료비를 지불했다. 퇴원 후에도 매주 3회 재활치료 등 외래치료를 받고 있는 지민이. 간간히 호흡이 떨어질 때가 있어 모니터와 산소기계까지 대여한 부부는 “정신적ㆍ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아기가 힘든 치료과정을 견디고 살아줘 고맙다”며 아이를 대견스러워 했다.

치료비 충당하려 빚지고, 가족갈등도 발생

대한신생아학회가 이른둥이 부모 235명을 대상으로 올 9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른둥이 10가정 중 6가정(60.2%)은 신생아집중치료실 퇴원 후 치료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가족 또는 지인에게 빚을 지거나 적금 해지, 금융대출 등을 경험했다. 이른둥이 출생으로 인한 사회ㆍ경제적 활동 위축도 만만치 않다. 응답자의 43.8%는 이른둥이 출생 후 사직 또는 무급휴가를 선택했고, 자영업자의 경우 사업을 접거나 사업규모를 축소하는 등 경제활동이 위축됐다. 가족갈등도 심각했다. 응답자의 24.1%는 이른둥이 출생 후 부부ㆍ친척 관계가 소원해 지거나 이혼을 고려하는 등 갈등을 겪었다고 답했다. 올 9월 이른둥이를 출산한 전승미(31)씨는 “치료비 마련을 위해 시댁에 도움을 청했다가 관계만 악화됐다”며 “혹시 돈을 빌려 달라고 할까 봐 친지들이 연락을 피해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현실이 이렇다 보니 응답자의 60.4%는 이른둥이 출산으로 아이를 더 갖고자 하는 의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이른둥이 출산으로 받은 정신적ㆍ경제적 고통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른둥이 출산을 경험한 이들은 ▦치료비 전반에 대한 가정부담 절감 ▦신생아집중치료실 퇴원 후 재활치료비 지원 ▦신생아집중치료실 퇴원 후 응급실 방문 및 재입원 비용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른둥이에 대한 정부지원은 월평균 소득 150%(3인 가족 기준 642만2,000원)이하 이른둥이 출산 가정에 지급되는‘미숙아 및 선천성이상아 의료비 지원사업’이 유일하다. 정부는 출생체중 1,500g 미만은 최대 1,000만원, 1,500~2,000g은 700만원, 2,000~2,500g은 500만원으로 나눠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방자치단체 예산부족으로 지원을 못 받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남궁란 세브란스어린이병원 신생아과 교수(대한신생아학회 회장)는 “지원비를 받기 위해 지원이 가능한 지역으로 이사하는 부모들도 있다”며 “해마다 미숙아 지원사업 예산이 부족해 지원금이 지연 지급되고 있지만 정부에서는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행복을 위한 실천과제로‘출산희망온도’를 포근하게 유지토록 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다짐과 달리 이른둥이 출산온도는 영하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연초에 낳아야 정부 돈 받는다”불만 팽배

실제로 미숙아지원사업은 해마다 예산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10억~16억원에 이르던 부족 예산액이 2012년 29억7,000만원으로 상승하더니 지난해에는 37억4,400만원을 기록했다. 남궁 회장은“국감자료에 따르면 올 미숙아지원사업 예산은 연말까지 48억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 된다”며 “늘어나는 예산부족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 없이 오히려 예산이 축소된 것은 보편적 복지라는 틀에서 이른둥이들이 역차별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내년에도 제 때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발을 구르는 이른둥이 부모들이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5년 미숙아지원사업 예산은 올해보다 3억원이 감소한 93억원이다. 신생아학회 등에서는 “당초 기획재정부에서 올 예산보다 10억원이 감소한 86억원을 미숙아지원사업 예산으로 책정했는데 복지부가 설득해 93억원으로 증액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임신부들 사이에서는 상반기에 아이를 낳아야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을 만큼 문제가 심각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 관계자는 “기재부에서 예산 삭감을 결정한 바 없다”며 “사업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사업예산 확보가 쉽지 않아 애를 먹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국회에 본 예산 93억원과 함께 64억4,500만원 증액예산을 신청했다”며 “100% 증액은 어렵겠지만 국회에서도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일정부문 예산이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이른둥이 퇴원 후 지원 전무…산모 치유지원도 절실

예산이 증가해도 만사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이른둥이 지원사업예산은 임신 37주 미만 또는 2,500g 이하로 출생한 신생아 중 출생 24시간 이내 집중치료를 필요로 하는 신생아집중치료실에 입원한 경우만 적용된다.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퇴원하면 정부지원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이른둥이 지원사업은‘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김한석 서울대병원 신생아중환자실장(소아청소년과 교수)은 “이른둥이들은 퇴원 후에도 기관지폐이형성증,신생아 호흡곤란 증후군, 동맥관개존증, 뇌출혈, 이른둥이 망막증 등 다양한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1주일에 2,3번 정도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두 돌까지 잘 치료하면 평생 동안 문제없이 잘 살 수 있는 아이들이 경제적 이유로 치료가 중단되는 일이 발생하면 안 된다”고 했다. 김성신 순천향대부천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이른둥이들은 퇴원 후에도 장기적으로 안과검진, 청력검진 등이 필요하고 만성 폐질환, 호흡기 감염 위험이 높아 재입원할 가능성이 높다”며 “재입원을 할 경우 한 달 이상 입원하는 경우가 많아 진료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른둥이를 출산한 산모에 대한 지원도 절실하다. 신손문 제일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예정일보다 빨리 출산을 해 정신적ㆍ신체적으로 고통 받은 산모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지만 이와 관련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며 “장기적으로는 산모와 이른둥이 모두를 위한 인프라를 갖추는데 중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이른둥이를 출산한 산모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때문에 아기가 잘못됐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며 “신생아집중치료실 설치기준에 임상심리사를 배치토록 한 일본처럼 산모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실질적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야 아기를 잘 키울 수 있다”며 “미국에서는 정신적ㆍ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른둥이로 태어난 아이가 가정에서 학대 받고 있다는 사례가 발표됐는데 우리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남궁 교수는“출산을 기피하는 사회적 여건 속에서 출산만을 장려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위한 대책마련도 중요하지만 이미 태어난 이른둥이들을 건강하게 보살피는 것이 저출산 해결의 해법이 될 수 있다”며 “이른둥이들이 힘든 치료과정을 이겨내고 우리사회의 희망둥이가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실질적인 지원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 서울대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 탐방

“건강하게 엄마 품에 안길 날 멀지 않았어요”

서울대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간호사들이 이른둥이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서울대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간호사들이 이른둥이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엄마ㆍ아빠가 보고 싶어 세상에 빨리 나온 이른둥이들이 모여 있는 서울대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은 조용했다. 손바닥만한 체구에 주렁주렁 달린 주사줄들, 잘 보이지도 않은 작은 입에 걸려있는 인공호흡기…. 하지만 이른둥이들은 엄마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갈 희망 속에 최선을 다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서울대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은 선진국 신생아중환자실 수준에 맞춘 분리식 공기조절 시스템, 중환자실 전체에 헤파필터를 설치해 쾌적하고 여유로운 환경 속에서 이른둥이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환자 별 모니터 40대, 중앙 모니터 시스템 4대, 최신 인큐베이터 28대, 광선치료기 48대, 주사펌프 54대, 수액펌프 67대 등 치료에 필요한 최첨단 장비를 보유한 것도 자랑이다.

김한석 신생아중환자실장은 “이른둥이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전문간호사 수가 부족해 아기들에게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환자 대 간호사 비율이 국내 최고인 0.65대 1인 병원에서 간호인력이 부족하다는데 다른 병원의 상황은 안 봐도 훤하다. 실제로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들은 쉴 새 없이 이른둥이들의 상태를 점검하느라 분주했다.

심장박동은 있지만 호흡이 곤란하거나 정지된 상태인 ‘신생아 가사’를 앓고 있는 이른둥이 앞에 섰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는 아기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김 교수는“이 아이는 평생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며 “이른둥이 지원도 필요하지만 이렇게 평생 큰 병을 안고 살아야 하는 아기를 위한 지원도 우리사회가 생각할 때가 됐다”고 했다.

상태가 호전된 이른둥이들이 있는 옆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아기들을 보다가 상태가 좋아진 아기들을 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아기면회를 온 엄마는 “아이만 보면 눈물만 나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엄마는“그래도 집중치료실에 있을 때는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와 다행인데 퇴원하면 지원자체가 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며 “아이가 퇴원하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간호사들은 “하루에 1,2시간 허용되는 면회시간에 아이를 보면서 펑펑 눈물만 흘리는 엄마들이 많다”고 전했다.

뉴턴ㆍ아인슈타인ㆍ처칠의 공통점은 이른둥이라는 것이다. 비록 남들처럼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했지만 오늘 이곳에서 만난 이른둥이 중 역사에 남을 인물이 있을지 모른다. 생명의 소중함과 위대함이 살아 숨쉬는 곳이 바로 신생아집중치료실이다.

김치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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