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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해요? 물으면 꽝… 그냥 만남을 즐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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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해요? 물으면 꽝… 그냥 만남을 즐겨요

입력
2015.07.2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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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파티 '와인 온 웬즈데이'

호텔 매달 한번 서구식 파티, 참가비만 내면 누구나 입장

외국 문화 익숙한 30, 40대 주한 외국인들이 주로 찾아

사업 인맥관리 목적도 있지만 일상 탈출 생활에 활력 찾아

파티에는 경계도 벽도 없다. 열린 마음만이 있을 뿐. 22일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서울에서 열린 ‘와인 온 웬즈데이 서울’ 파티에서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와인 온 웬즈데이 서울 제공
파티에는 경계도 벽도 없다. 열린 마음만이 있을 뿐. 22일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서울에서 열린 ‘와인 온 웬즈데이 서울’ 파티에서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와인 온 웬즈데이 서울 제공

22일 밤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서울 명동’ 호텔의 루프탑 바. 남산타워를 중심으로 서울 도심의 야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여름 밤 야외 공간에 세련된 수트 차림의 남성들과 드레시한 정장을 차려 입은 여성들이 속속 들어선다. 3인조 재즈 밴드의 라이브 연주가 공간 가득 운치를 자아내고, 한 손에 화이트와인이 담긴 잔을 든 참석자들이 서성이며 나누는 인사말과 통성명으로 분위기는 이내 왁자해진다. ‘사교의 기술’이 절실해지는 이곳은, 강태안 서울 가스트로 투어 대표와 비즈니스 컨설턴트 타드 샘플씨가 공동주최하는 비즈니스 네트워킹 파티 ‘와인 온 웬즈데이 서울’. 남성과 여성이 반반, 한국인과 외국인이 반반인 이 절묘한 균형의 스탠딩 파티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용감하게 발을 들였다. 어색하다. 아, 격렬하게 어색하다.

“서울은 국제도시, 파티는 글로벌 컬처”

외국 문물을 급속히 흡수하는 것이 한국문화의 특징이지만, 파티만큼은 여전히 어색하고 낯선 문화다. ‘파티’란 면식의 유무와 상관없이 호스트의 초대로 모인 사람들이 친분을 쌓는 사교의 장이지만, ‘모임’은 아는 사람들끼리의 지속적 만남이 그 정의이기 때문이다. 모임에 초대를 받으면 아는 사람 누가 오는지부터 확인할 만큼 폐쇄적 사교문화가 지배하는 곳이니 낯 모르는 이들이 가득한 파티장은 흥성스러울수록 고독해지는 역설의 공간이 되기 십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 물론 즐겁다. 하지만 누가 내 앞에 대령해다 소개를 해줘야지 어떻게 내가 먼저 다가가 “하이, 하우 아 유?”를 외친단 말인가.

이런 분위기 탓에 국내에서 파티라고 하면 미국이나 프랑스 등 주요 국가의 주한상공회의소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네트워킹 파티나 대기업이나 주요 민간단체의 기념일에 부가 행사로 열리는 이벤트 정도를 떠올리게 된다. 당연히 모이는 면면이 편중될 수밖에 없다. 상공회의소 파티에 가면 변호사, 컨설턴트, 헤드헌터밖에 없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누구에게나 공개되는 ‘와인 온 웬즈데이’ 파티는 이런 한계를 넘어서고자 기획됐다. 30ㆍ40대 전문직 및 비즈니스 피플이 주 타깃층으로, 참가비 5만원으로 호텔의 뷔페식 디너에 와인을 무제한으로 즐기며 다양한 분야의 내ㆍ외국인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리며, 참가비만으로 부족한 재원은 파티 참석자들을 마케팅 타깃으로 삼는 기업들의 협찬을 통해 조달한다.

강 대표는 스위스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한 호텔리어 출신으로 파티문화의 도입을 한국 식문화 발달의 주요 과업으로 판단, 3년 전부터 소셜 네트워킹 파티를 이벤트 형식으로 개최해 왔다. 하지만 문화 차이로 인해 잘 되지 않았다. 다행히 올 2월 론칭한 ‘와인 온 웬즈데이’는 20년간 한국에 살며 주한 외국인들과 탄탄한 인맥을 맺은 샘플씨와의 협업으로 좋은 평판을 얻으며 안정적 궤도에 올라섰다.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의 오픈과 함께 시작된 이 행사는 처음 50명 정도 참석하는 오붓한 파티였다가 최근에는 150명을 훌쩍 넘길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7월 파티에는 오후 내내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10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모여 파티를 즐겼다.

내국인 참가자들은 아직까지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나 대사관 근무자, 대기업 국제 비즈니스 담당자 등 서구식 파티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며 이들이 데려오는 새로운 친구들로 인해 참석자들의 종 다양성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 외국인 참가자들은 비즈니스 목적으로 만나는 한정된 범위를 벗어나 보다 다양한 한국인들과 교류하고자 파티를 찾는다. 역시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가장 많다. 공동 주최자인 샘플씨는 “서울도 이제 국제도시인데 글로벌 컬처는 아직 뒤처져 있다“며 “파티는 사교의 장이자 우연이 빚어내는 무수한 기회의 보고”라고 강조했다. 얼마 전 파티에 참석했던 조명디자이너는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건축사 덕분에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했다고. 샘플씨는 “그런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와인 온 웬즈데이 서울’ 파티에서 제공되는 뷔페식 디너.
‘와인 온 웬즈데이 서울’ 파티에서 제공되는 뷔페식 디너.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영감의 원천”

삼성물산 경영기획실에서 금융팀 과장으로 근무하는 신일철(38)씨는 페이스북 친구의 게시물을 통해 이 파티를 접하고 이날 처음 참석했다. 매우 어색할 수도 있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친구 몇 명과 함께 왔다. 예전부터 인맥 쌓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0여년 전 ‘동호회 시절’부터 독서모임 등을 통해 전혀 다른 분야의 전혀 다른 사람들과 만나기를 즐겨왔다. 인맥관리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거부감, 어떻게 인간관계가 관리의 대상일 수 있는가 따지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한 켠에서 일지만, 그 또한 편견일 수 있다.

“친교의 반경을 확대하는 네트워킹이 창의적인 사고와 영감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해요.”

신씨는 “회사나 국적, 인종, 사회적 지위 같은 기존의 인맥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그 외부적 충격으로 새로운 관점이나 생각을 가지게 된다”며 그렇게 얻게 되는 통찰을 인사이트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아웃사이트’라고 설명했다. 10년 넘는 직장생활에 누군가를 새로 만나는 일이 피곤하지는 않을까. 그는 “오히려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고 말했다. “너무 가까운 사이에는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들, 좋은 생각들을 자유롭게 만나서 나눌 수 있으니까요.”

영국 기업 인트라링크의 한국지사에서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라이프 칼렌(32)씨는 이 파티에 참석한 게 세 번째다. 올해로 한국생활 5년째인 그는 스웨덴에서 고교까지 마친 후 미국으로 건너가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이중국적자. 외국 클라이언트에게 한국에서의 사업 파트너를 찾아주는 사업개발 컨설팅이 주요 업무라 이런 비즈니스 목적의 네트워킹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요새 들어 파티는 그에게 정의가 달라지고 있다. 한정된 사람들과 보내는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출해 예기치 못한 사람과 새로운 만남을 갖는 것. 그 자체가 ‘생활에서의 재미 추구’가 된 것이다.

“비즈니스 파티지만 비즈니스가 제1의 목적이 되면 재미가 없어져요. 그런 사람과 만나는 것도 재미가 없고요. ‘안녕하세요. 무슨 일 하세요?’ ‘안녕하세요. 전 이런 일 해요’ 이런 말만 하는 거 너무 재미 없고 피곤해요. 그런 건 업무상 하는 런치 모임 같은 데서나 통하는 거죠. 저는 지금 돈 안 받고 제 개인 시간 내서 놀러 온 거라고요.(웃음)”

“한국에서는 업무관계에 있는 사람만 만나야 하는 단조로운 인간관계에 많은 답답함을 느꼈다”는 칼렌씨는 좋은 와인과 음식, 서울 도심의 야경과 음악이 빚어내는 이 파티만의 분위기를 사랑한다. “한국의 전통적 문화에 맞지 않는다는 건 잘 알아요. 하지만 누구나 다 초면이고, 어색하다는 동일한 조건에 있어요. 일단 말을 걸고, 공통점을 찾는 거예요. 와인, 음식, 주변 풍경, 뭐든지 괜찮아요. 그냥 즐겨보세요. Just relax. Enjoy your life!”

재미동포인 조슈아 로(51) 피플컨설팅그룹 전무는 헤드헌팅 업무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파티가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그도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의 즐거움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파티에서 한두 번 만났다고 해서 비즈니스에서의 이득을 기대할 순 없죠. 매우 리스키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쌓아가면서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게 되고,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맺게 되는 거니까요. 이 파티에 오는 분들은 아직 임원급은 아닌 젊은 분들이 많잖아요. 당장의 계산보다는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는 편안한 마음을 갖고 꾸준히 파티를 즐기는 게 좋습니다.”

이런 개방성은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낙천적인 신뢰가 없으면 갖기 어렵다. 유독 파티문화가 자리잡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간불신의 한 징후인지도 모른다. 인맥이라는 것이 혈연, 지연, 학연의 촘촘한 그물망으로만 조성되는 배타적 한국문화에 파티는 민주적 균열을 낼 수 있을까.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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