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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미소의 미학

입력
2017.12.15 14:3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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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대화를 한다. 인간에게는 소통의 본능이 있다. 말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이다. 언어학에서 소통의 첫걸음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서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 알아가는 과정에서만큼은 협력이 필요하다고 가정한다. 그 내용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을 수는 있지만, 말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까지는 서로 협력해서 공통의 명제를 손에 쥐어야 한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이와 같은 협력의 과정에는 서로에게 필요한 양의 정보를 적절하게 주어야 한다는 소위 격률들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 협력의 과정이 실제 대화 상황에서 쉬운 것만은 아니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상대방의 부담스러운 눈초리 때문에 입을 다물 수도 있고, 적절하지 않은 반말의 사용으로 상대방의 마음에 금이 가게 할 수도 있다. 같은 말을 해도 불친절하며 퉁명스러운 어투로 말하면, 어떤 말을 했든지 간에 상대방은 그 말의 내용보다는 그 퉁명스러운 태도에 마음을 열기 어려울 것이다.

크고 작은 다툼의 시작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많은 경우 이와 같은 협력의 과정이 실패하여 상대방에 대한 오해와 섭섭함이 알게 모르게 쌓인 것이 원인이 된 경우가 적지 않다. 대개 사람들은 이 협력과 조정의 과정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할말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에만 급급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빨리 빨리’ 습관이 이를 더욱 부추긴다. 그렇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의미 전달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듣는 사람 역시 말한 사람의 의도를 챙길 여유가 없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든 지 자신의 입장에 맞추어서 그 말을 해석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불필요한 오해를 낳고, 언쟁을 낳기 십상이다.

대화에서 무엇을 말했는지만큼 중요한 것이 상대방이 어떻게 말했는가이다. 말의 내용만큼이나 말의 태도와 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같은 말을 해도 친절한 억양과 표정으로 말할 수 있고, 무뚝뚝한 억양과 표정으로 냉담하게 말을 할 수도 있다. 친절한 억양과 표정은 건네기 힘든 말이라도 상대방이 좋은 마음으로 소화할 수 있게 돕지만, 무뚝뚝하고 냉담한 억양과 표정은 상대방의 마음에 두고두고 앙금을 낫게 할 수 있다.

월파 김상용의 시에 “왜 사냐건 그냥 웃지요”라는 시구가 있다. 아마 이 웃음은 껄껄거리는 웃음이라기 보다는 잔잔한 미소가 아닐까 한다. 이 잔잔한 미소는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통용할 수 있으며, 자칫 불협화음이나 오해, 언짢음이 생기기 쉬운 순간을 회복시키게 하는 소통의 묘약이다.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 없다는 옛말처럼 말이다. 이 미소는 어떤 말 보다도 강하며, 짧고 간결하지만, 마치 은은한 숯불의 따스함 같이 마음과 마음을 엮어 주고, 혹여 싹틀 수 있는 상대에 대한 오해와 가시 돋침이 마음에 두고두고 남지 않게 순간순간 말끔히 씻어준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만, 사실 나는 말 한마디보다 대화에서 미소 하나의 역할이 더 절실하고,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미소는 대개 얼굴 표정으로 나타나지만,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하는 맥락이라면 스마일 이모티콘 하나로도 나타날 수 있다. 상대방에게 잔잔한 미소 하나를 선물하거나, 스마일 이모티콘을 하나 붙여 주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는 상대방에 대한 작은 배려의 시작이다. 이 배려가 이뤄지고, 이 배려를 상대방이 공감할 때, 불필요한 오해나 앙금들이 걷히고, 동시에 서로가 서로의 세계를 더 효과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두 사람 간의 바람직한 듣고 말하기의 조합인 대화(對話) 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지은 케어 옥스퍼드대 한국학ㆍ언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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