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혜정 기자

등록 : 2018.02.20 04:40
수정 : 2018.02.20 07:30

정리해고에 맞서 12년, 그들은 아직도 굴뚝 위에 있다

등록 : 2018.02.20 04:40
수정 : 2018.02.20 07:30

[2018 갈등리포트] <24ㆍ끝> ‘고공농성’ 파인텍 노조

노조 “정상화 의지 없어”

공장가동 최소 20명 필요한데

사측, 8명外 추가 고용 안해

회사 “새 법인 만들어 최선”

회사 규모 그 전보다 작아졌는데

임금ㆍ복지, 본사 수준 요구는 무리

파인텍 노조의 두번째 굴뚝 고공농성이 97일째 이어지던 16일 설날 오전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앞에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신혜정 기자

“원래 식사는 생리현상 때문에 하루 두 번만 보내는데 오늘은 특별히 한 끼 더 올려요. 설날이니까.”

설날인 16일 낮 12시쯤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서 얇은 줄이 내려왔다. 차광호(48)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이 막대로 줄을 능숙하게 잡아당겼고 전 스타케미칼 노조 소속 동료 정모(47)씨가 떡국과 동태전이 담긴 보온가방을 줄에 묶어 올려 보냈다.

명절에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굴뚝 위에서 찬바람을 맞는 홍기탁(45) 전 지회장과 박준호(45) 사무장을 위해 동료들이 손수 만든 음식이다.

2015년 7월 8일, 스타케미칼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구미 공장 내 45m 굴뚝에 올랐던 차 지회장이 408일만에 내려왔다. 모기업이 신설법인 파인텍을 세워 고용 및 노동조합ㆍ단체협약 승계를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 후 859일만인 지난해 11월 12일 다시 고공농성이 시작됐다. 모기업인 스타플렉스 본사 건물이 보이는 목동으로 농성 장소를 옮기면서 굴뚝은 75m로 높아졌고, 사람도 두 명으로 늘었다. 첫 번째 투쟁만으로도 이들은 이미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다시 오를 수 밖에 없었던 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거란 절박함 때문”이라고 차씨는 말한다.

풀리지 않는 노사갈등의 매듭

정리해고에 맞선 노조의 싸움은 벌써 12년째다. 그동안 회사 이름은 한국합섬에서 스타케미칼, 파인텍으로 바뀌었지만 이들의 자리는 여전히 공장이 아닌 굴뚝이다.

차씨와 동료들은 구미국가산업단지에서 한때 이름을 날리던 섬유기업인 한국합섬의 근로자들이었다. 회사는 1990년대 후반까지 폴리에스테르 원사 생산량이 하루 850톤으로 아시아 1위를 자랑했지만 중국투자 실패 등으로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2006년 구조조정을 시작했고 이듬해 파산했다. 노조는 빈 공장을 지키며 공장 정상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공장 불은 다시 켜지지 않았고, 노조는 인수자가 나타날 때까지 하염없이 공장을 지켜야 했다.

일터가 사라진 지 4년 만인 2010년 광고용 섬유 제조사인 스타플렉스가 공장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스타플렉스는 한국합섬의 사명을 스타케미칼로 바꾸고 남아있는 직원 168명을 고용하며 노조 승계까지 약속했다. 새 출발이었다.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3년 1월 2일 시무식 자리에서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가 공장 가동 중단을 선언했다. 공장 인수 뒤 2년 연속 약 150억원의 적자가 났고 섬유산업 경기도 침체돼 자칫하면 모기업까지 부도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공장 중단 선언 4일만에 기계가 멈췄다. 한달 후 권고사직이 시작됐다. 139명이 동의하고 520만원의 위로금을 받기로 했다. 차씨 등 28명은 모기업이 건재한데도 회사가 위장폐업을 한다며 권고사직을 거부하다 해고됐다. 당시 사례를 분석한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스타플렉스는 당시 자산가치 455억원이던 한국합섬을 399억원에 인수했다. 또 적자가 난 것은 맞지만 그때도 10억원 이상의 현금배당을 실시했고, 인수 후 3년간 영업이익은 364억원으로 심각한 경영위기에 처한 상황으로 보긴 어려웠다고 분석한다.

해고자 중 11명은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해복투)’를 구성하고 다시 공장을 지켰다. 멈춘 공장에서 하나 둘 기계가 나갔다. 2014년 5월부터 회사는 공장 철수에 시동을 걸었다. 5월 27일 새벽 차씨가 공장 굴뚝을 올랐다. 일터가 사라지는 걸 온몸으로 막기 위해서였다.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의 박광호(가운데) 사무장과 홍기탁(오른쪽) 전 지회장이 지난달 14일 서울 목동열병합발전소 굴뚝 위 농성장에서 국가인권위원회와 면담을 하며 건강검진을 받고 있다. 파인텍지회 제공.

두 번째 고공농성, 바꿀 수 있을까

차씨의 고공농성에 ‘최장기’ 딱지가 붙고 해복투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노조는 사측과 교섭을 시작할 수 있었다. 2014년 12월까지도 고용승계는 어렵다고 못박았던 사측이 이듬해 여름 대화에 나섰고 2015년 7월 7일 노사는 극적으로 합의했다. 해복투측 변호인인 김유정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사회적 비판여론이 생기지 않았다면 사측이 대화에 나서는데 더 오래 걸렸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회사는 새 법인을 세워 해고자 전원을 고용하고 노조 활동도 보장하기로 했다.

2016년 1월 사정상 구미를 떠날 수 없던 3명을 제외한 8명이 아산의 새 회사 파인텍으로 왔다. 그러나 1월까지 마무리하기로 한 단협 체결이 늦어지면서 노사관계는 다시 삐걱댔다. 사측은 “파인텍을 설립해 고용을 책임지려고 노력했다”며 “회사 규모가 작아졌는데 임금과 복지를 본사 수준으로 맞춰달라는 노조측 요구는 들어주기 어렵다”고 했다.

노조는 무엇보다 공장을 가동하려면 최소 20여명이 필요했지만 사측은 8명 외에 추가 고용을 하지 않은 것에 주목했다. 노조가 ‘여전히 공장가동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이유다. 18차례의 교섭과 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 끝에 노조는 결국 그 해 10월 파업에 돌입했다. 이듬해 11월 차씨의 고공농성을 도왔던 홍씨와 박씨가 다시 굴뚝에 올랐다.

지난달 14일 조영선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파인텍 고공농성자들의 인권상황 및 건강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의료진들과 함께 직접 굴뚝 위에 올랐다. 이날 이후 인권위는 파인텍 투쟁상황을 계속 모니터링 중이다. 지난 13일에는 고용노동부와 민주노총간의 ‘투쟁사업장 해결을 위한 노정협의체’에서 파인텍 문제가 안건으로 올랐다. 첫 고공농성 때보다 정부의 관심은 늘었지만, 차 지회장은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굴뚝에 오를 이유도 없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가 아무리 굴뚝에서 버텨도 현실은 바뀌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 때 제일 힘드네요.” 19일 파인텍 노조의 두 번째 고공농성은 100일을 맞았다.

글ㆍ사진=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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