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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짜리 축구화로 키운 꿈… '한국의 부폰' 김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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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짜리 축구화로 키운 꿈… '한국의 부폰' 김진현

입력
2015.02.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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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30만원짜리 축구화 신을 때 5만원짜리 신고 운동한 기억 아픔

"10년치 인터뷰 요즘 다 하는 기분"... 전설의 골키퍼 '부폰' 처럼 되고파

축구 국가대표 골키퍼 김진현 선수가 10일 경기 분당 소속사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며 축구공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축구 국가대표 골키퍼 김진현 선수가 10일 경기 분당 소속사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며 축구공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공격을 잘 하는 팀은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지만, 수비를 잘 하는 팀은 우승을 한다”

지난해 10월 슈틸리케 감독은 가슴에 품었던 미 프로농구(NBA)의 격언을 꺼내들었다. '아시아 최강'을 위해 실점을 최소화 하는 데 무게를 두겠다는 확고한 뜻이었다. 뚫릴 것 같다 싶으면 어김없이 뚫렸던 수비라인과 골 먹겠구나 싶으면 어김없이 벌어졌던 실점 상황들은 실패로 끝났던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드러낸 한국 축구의 가장 큰 문제점이기도 했다.

이런 슈틸리케에게 김진현(27·세레소오사카)의 등장은 한 모금의 청량수 같았다. 지난 31일 막을 내린 2015 아시안컵에서 김진현은 화려한 '선방쇼'로 국민들의 뇌리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남겼다. 종이 한 장 차 승부가 유독 많았던 이번 대회, 자칫 패배 혹은 무승부로 이어질 법한 승부처에서 나온 그의 선방 하나 하나는 곧 승리라는 결과로 이어졌고, 그 승리들이 계속 이어져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로 돌아왔다.

10일 경기도 성남의 소속사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김진현은 "10년치 인터뷰를 요즘 다 하는 기분"이라며 너스레를 늘어 놓으면서도 이번 대회에서 가장 기억 나는 장면을 묻자, 아무도 언급 않는 실책 장면을 먼저 떠올렸다.

유년 시절 넉넉지 않았던 가정 형편 탓에 축구를 그만 둘까도 고민했었다는 김진현은 "아직 꿈도 많고 이뤄야 할 것도 많다"면서 "날 키우느라 고생하신 어머니를 위해 더 뛰겠다. 효도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시안컵 후 스타가 됐다. 유명세 실감하나.

“그렇다.(웃음) 아시안컵 이전에는 그냥 ‘키 큰 사람’이라고 불렸다. 운동복 차림으로 다닐 때면 농구선수나 배구선수로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제는 사진 찍어달라는 요청도 많고, 인터뷰 요청도 많다. 지금까지 해 왔던 인터뷰보다 요즘 한 인터뷰가 더 많은 것 같다.”

-J리그에 진출한 1호 골키퍼지만 주목도는 떨어졌다. 아쉬움은 없었나.

“내 실력 탓이다. 미디어의 주목도가 떨어지더라도 내가 더 잘하고 더 좋은 선수였다면 미리 주목 받지 않았을까?”

-아시안컵 주전 골키퍼, 예상은 했었나.

“전혀 하지 못했다. 사실 지난해 베네수엘라전에서 결정적 실수를 했을 때 ‘27년 축구 인생이 한 순간에 무너졌구나’싶었다. 제주도 전지훈련 때도 23명의 본선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게 최우선 목표였다. 발탁이 되더라도 주전 경쟁까지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김진현은 지난해 9월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베네수엘라와의 평가전에서 전반 21분 결정적 실축으로 선제골을 헌납했다.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지만 다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결정적 실수를 저질렀다.

-차두리, 곽태휘 등 선배들의 역할은 어땠나.

“(차)두리 형은 둘도 없는 분위기 메이커다. 팀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하는지 잘 알았고, 해외 경험도 많았던 탓인지 후배들과의 친밀감도 높았다. (곽)태휘 형도 평소엔 편하게, 축구를 할 때는 집중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잡아줬다. 두 선배 덕에 아주 무겁지도, 아주 가볍지도 않은 최상의 분위기를 유지했던 것 같다.”

-슈틸리케만의 장점은 뭔가?

“섬세함이다. 경기나 훈련 중 움직임에 대해 일일이 체크하고 몸짓은 물론 선수의 생각까지 읽으려 노력한다. 또 하나는 한국 축구를 정말 많이 생각하신다는 거다. 열정이 남다르다. 마음만 앞서는 열정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팀 전체가 발전할 지를 항상 고민하신다. 감독의 열정과 정성을 느낀 선수들이 그 뜻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실점하지 않는 방법도 잘 찾아내신다. 특히 수비 간격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한번이라도 흐트러지면 미팅에서 바로 지적이 나올 정도로 꼼꼼하다”

-요즘 ‘소통’이 화두다. 슈틸리케의 소통법은?

“외국인 감독이지만 선수들과 직접 소통을 많이 하는 편이다. 특히 독일어가 가능한 두리 형이나 (손)흥민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영어에 능통하면서 주장도 맡고 있는 기성용과도 수시로 소통한다. 골키퍼들의 경우 직접 소통할 기회가 많지는 않지만, 평소에 소통을 위해 노력하거나 선수들을 편하게 해주려는 마음이 많이 느껴진다.”

-슈틸리케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뭔가.

“앞서 말한 수비와 함께 ‘점유율 축구’를 강조한다. 볼을 힘들게 뺏었는데, 소유하는 시간이 짧으면 경기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때론 사소한 패스미스도 비디오로 다 잡아서 보여주시면서 되도록 패스미스가 없게 플레이 해달라고 부탁하신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울리 슈틸리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 호주의 AFC 편입, 어떤 효과를 가져왔나.

“호주 선수들을 상대하며 여러모로 묘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유럽선수와 비슷한 체격과 체력을 갖췄다. 하지만 플레이스타일은 또 다른 차이가 있었다. 우리와 같은 범주 안에 강한 팀이 많을수록 좋다. 호주의 AFC 합류가 한국은 물론 아시아 팀들의 경기력을 높이고 의식 폭을 넓히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고 본다.”

김진현에게 아시안컵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자 수 많은 선방들을 뒤로하고 ‘이라크전 실책’과 ‘호주전 2실점’을 꼽았다. 상대 역습 상황에서 무리하게 오른쪽 터치라인까지 뛰쳐나왔지만 막아내지 못했다. 실점으로 이어진 장면도 아니기에 굳이 스스로 이야기 꺼내지 않으면 잊을 법한 장면이지만, 김진현은 다시 꺼내 곱씹었다. 반성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는 신념 때문이다.

-아시안컵을 통해 느낀 보완점은.

“순간적인 집중력이 부족했다. 또 킥의 정확도도 높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점유율이 중요한데 골킥 한 번을 하더라도 우리 선수가 받기 편하게 차는 것부터가 우선이 돼야 한다고 본다. 그런 부분을 보완하면 슈틸리케 감독이 원하는 축구에 더 근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승 전날 호주 교민들의 영상편지를 접했다.

"그 영상을 보고난 뒤에 많은 동기부여가 됐다. 꼭 이겨서 교민분들께 꼭 우승이란 좋은 선물을 남기고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나 또한 해외생활을 오래 해왔기에, 교민들의 외로움과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어느정도 이해했다. 정말 교민분들께 힘이 될 수 있는 뭔가를 해내고 싶었다. 어디가서 한국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기 위해선 우승 말고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너무 아쉬웠다."

-골키퍼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정말 단순하다. 키가 커서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골키퍼를 맡았다. 골키퍼가 맡겨진 데 대해 불만도 없었지만, 그때는 ‘뭘 하고 싶다’ 생각이 들어도 고집을 피울 수 없는 때기도 했다. 그 뒤로 계속 골키퍼를 했다.(웃음) 학생 때는 프리킥도 많이 찼고, 대학 때는 골킥이 그대로 골문으로 들어가 득점도 했다. 세레소 오사카에 입단한 뒤에도 두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내 장점은 분명히 킥인데, 대표팀만 가면 왜…(웃음)”

- 아시안컵 때 ‘한국의 노이어’라는 별명이 붙었다. 역할 모델로 삼았던 골키퍼는.

“잔루이지 부폰(37ㆍ유벤투스)이다. 막을 수 없는 공을 막아내는 골키퍼였다. 밸런스가 깨졌는데도, 역동작이 걸렸는데도 공을 다 막아내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상대편 선수들이 감히 마음 놓고 차기 힘들 것 같았다.”

지난달 22일 호주 멜버른 렉탱귤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8강전 한국 대 우즈베키스탄 경기. 골키퍼 김진현이 공을 차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호주 멜버른 렉탱귤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8강전 한국 대 우즈베키스탄 경기. 골키퍼 김진현이 공을 차고 있다. 연합뉴스

동국대 3학년이던 지난 2009년 J리그 세레소 오사카에 입단한 김진현은 어느덧 팀 내에서도 고참급 선수가 됐다. J리그 7년차. 팀은 지난해 리그 17위를 기록하며 2부 리그로 강등됐다. 2부 리그에 있던 팀을 1부 리그로 올려 본 적은 있어도, 강등의 순간을 직접 겪어보긴 처음이었다. 고정운 김도근 노정윤 윤정환 하석주 황선홍 등 한국을 대표하는 선배들이 거쳤던 팀이기에 ‘자존심 회복’에 대한 간절함은 어느 때보다 더 크다.

-J리그 진출, 마음먹기 쉽지 않았을 텐데.

“사실 당시 나에게 선택권이 없었다. 당시 K리그에는 쟁쟁한 선배들이 너무 많았다. 경기를 뛸 수 있는 팀을 찾아야만 했다. 그 때 기회가 주어진 팀이 세레소 오사카였다. 입단 당시 사령탑이었던 레비 쿨피(61.브라질) 감독도 나를 바로 선발 기용하겠다고 해 더 고민 않고 비행기를 탔다.”

-어린 시절부터 했던 해외생활, 힘들지 않았나.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해외에 갔는데, 반 년 동안은 숙소와 훈련장만 오간 것 같다. 그래도 텃세는 없었다. 나 역시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하며 적응을 위해 노력했고, 이런 진정성을 느꼈는지 일본 선수들도 적응 때까지 잘 기다려줬다. 또 한국 선배들이 팀에 좋은 이미지를 많이 남겨놓으셔서 덕을 본 부분도 있다. 한국 선수들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내가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더 노력하기도 했다.”

-소속팀이 강등됐는데도 재계약을 했다.

“고민 많이 했다. 아시안컵 개막 전에 선택한 것이다. 의리가 우선이었다. 사실 강등이 이제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지난해엔 팀에 구심점이 없어 강등됐지만, 꼭 승격을 시키고 더 큰 꿈을 노려보겠다.”

-‘유럽 진출’을 꿈꾸고 있다. 선호하는 리그는?

“어릴 적부터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항상 꿈꿔왔다. 경기를 보다가 골대 앞에 내가 있는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호날두가 무회전 킥 막는 기분은 어떨지, 나라면 어떤 플레이를 했을 지에 대한 생각도 해봤다. 요즘은 독일 분데스리가에도 매력을 느끼고 있다. 유럽 진출이 쉽지 않을 거란 건 알지만, 항상 꿈을 꾸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김진현의 가정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남들이 20~30만 원짜리 고급 축구화를 신을 때 5만 원짜리 축구화를 신고 뛰었다. 하지만 축구화 가격이 꿈의 크기를 대신하는 건 아니었다. 고교 시절 생계에 대한 걱정 탓에 축구를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이를 다시 악물었다. 마음을 다시 잡고 골키퍼 장갑을 낀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헌신은 끝이 없었다. 프로 진출 후에는 한국과 일본을 수시로 오가며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누나는 타지에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동생에게 수시로 응원 메시지를 전하며 힘이 됐다.

-가족들의 기쁨도 남달랐을 것 같다.

“어머니가 우실 것 같더니 끝까지 눈물을 참으시더라.(웃음) 생활도 축구도 힘들게 했던 걸 아셨기에 많이 뿌듯해하신 것 같다. 어머니께선 J리그에서 뛰는 날 위해 수시로 왕래 하셨다. 말은 안 하셨지만 많이 힘드셨을 거다.”

-선수로서의 성장이 순탄치는 않았다고.

“사실 넉넉한 집안 형편은 아니었다. 친구들이 20~30만원짜리 축구화 신을 때 난 5만원 짜리 축구화를 신었다. 어머님이 두 남매를 도맡아 키우다시피 하셨다. 고등학교 때 진지하게 축구를 그만 두려 했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니 끝까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잘 참았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많은 돈을 모으지는 못했지만, 당장의 큰 돈 보다는 오랜 시간동안 보답하고 싶다. 효도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노우래기자 sporter@hk.co.kr

조윤경 인턴기자 (국민대 중국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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