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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문재인 정부의 국민지상주의

입력
2017.07.1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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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형사립고 학부모연합회 회원들이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자사고 폐지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국민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지도자가 중심을 잡고 원칙과 정론을 지켜나가야 한다.
자율형사립고 학부모연합회 회원들이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자사고 폐지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국민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지도자가 중심을 잡고 원칙과 정론을 지켜나가야 한다.

SNS 집단지성 국민주권시대 앞당겨

포퓰리즘으로 흐를 위험성 경계해야

정론(正論)과 부의(浮議) 분별력 중요

청와대 홍보수석은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를 관리하고 대언론 관계를 책임지는 자리다. 역대 정부 홍보수석은 신문ㆍ방송사 출신 중진 언론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름을 국민소통수석으로 바꾸고 국내 대표 포털인 네이버 부사장 출신을 임명했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SNS 소통을 맡을 뉴미디어비서관도 포털 출신이다. 그간 홍보수석실 비서관 서열 1위였던 ‘홍보기획’보다 ‘뉴미디어’ 비중이 더 커질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인터넷 민심(넷심)이 실제 민심을 반영하는 뉴미디어 전성시대를 보여 주는 상징적 변화다.

새 정부의 국민지상주의는 국정운영 및 정책 추진 과정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문 대통령이 장관 임명의 기준점으로 ‘국민 판단’을 제시한 게 대표적이다. “검증 결과를 보고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고 저는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 문 대통령이 야당 반발을 물리치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했던 말이다. 실제 여론조사에서 강 장관 지지 여론이 60%를 넘어 반대 의견을 2배나 압도했다. 문 대통령은 핵심 공약인 탈(脫)원전 정책도 국민 의사를 물어 정하기로 했다. 신고리 원전 5ㆍ6호기 건설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공론화위원회가 선정한 시민배심원단 공론조사를 거쳐 최종 건설 중단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에너지 분야를 제외한 사람 중 국민적 신뢰가 높은 중립적 인사로 공론화위원회를 꾸릴 계획이다.

기성 정당이 대의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할 때 주권자인 국민은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한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국민주권시대 실천에 앞장서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 정보화의 진전으로 국민과 직접 소통할 기반도 갖춰졌다. 인터넷과 SNS를 통한 상호작용 확산과 집단지성의 등장은 국민주권주의를 지탱하는 실질적인 힘이다.

촛불정부의 국민지상주의는 주류 기득권 집단에 대한 국민적 불신의 영향도 크다. 국정농단을 비롯한 적폐의 중심에는 늘 관료 학자 언론인 법률가 등 전문가 집단이 있었다. 이들이 전문성이라는 희소가치에 주어지는 독립적 권위와 혜택만큼 공익 수호와 사회적 책무를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전확대 정책만 해도 소수 관료가 ‘원전마피아’로 불리는 원자력 학계ㆍ산업계 인사들과 밀실에서 결정해 왔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상당수 국민은 자기 이익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전문가 집단이 객관적 판단을 했으리라고 믿지 않는다.

현재 문 대통령 지지율은 80%를 넘나든다. 대선 득표율(41.1%)의 거의 두 배다. 역대 어느 대통령의 취임 1년 차보다 높은 지지율이다. 이런 고공행진 배경에는 새 정부의 상식적인 국정운영 자체가 박근혜 정부 실정과 대비돼 반사이익을 얻은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민 눈높이에 맞춰 인사와 정책을 집행하려는 노력이 공감을 얻었음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지금 몹시 취약하다. 취임 두 달이 넘도록 9개 부처 장관이 아직 임명되지 못했다. 이 와중에 원전 건설 중단,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화, 자사고ㆍ특목고 폐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폭발력 큰 이슈들이 중구난방 터지고 있다. 참여정부가 여대야소 국면에서도 개혁 피로감을 이기지 못해 국민 지지를 잃었던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율곡 이이는 “정론(正論)이 아니라 부의(浮議)가 세간에 돌아다니면 나라가 혼란스럽다”고 했다. 정론은 그 시대의 올바른 의견이다. 양심적인 전문가 집단의 심층연구와 국민의 윤리적 성찰이 결합된 그 시대 집단지성의 공적 판단이다. 부의는 국민 다수의 정서적 의견이다. 다수 국민이 지지한다고 무조건 옳은 건 아니다.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가치와 이익을 좇다 보면 포퓰리즘으로 흐를 우려가 크다. 실제 우리 사회에는 특정 지역 및 집단의 이익을 주장하는 부의가 넘쳐난다. 복잡다기한 정책 과제를 일일이 국민 판단에 맡기는 것도 불가능하다.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와 정론을 펼치려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까닭이다. 국가지도자는 국민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원칙을 지키고 정론을 따라야 한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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