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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베트남전 참전과 사과, 그리고 ‘캡라이’

입력
2017.11.17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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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쩐 다이 꽝(Tran Dai Quang) 베트남 국가주석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쩐 다이 꽝(Tran Dai Quang) 베트남 국가주석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몇 년 전 일이다. 일군의 작가들과 베트남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그 때 만난 사람 중 한 명이 당시 베트남작가협회 부주석이었던 호프엉이었다. 알다시피 공산국가에서 ‘작가’ 혹은 ‘문인’의 지위는 막강하다. 이데올로기 국가에서 말과 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 나라의 작가협회 부주석이었으니 호프엉은 베트남의 대표적 지식인이랄 수 있겠다.

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려 노력했다. 호프엉은 베트남이 프랑스, 미국과 싸울 때 일선에서 전장을 누볐던 역전의 용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작가협회 부주석이란 지위가 말해주듯 뛰어난 인텔리이기도 했다. ‘혁명’이니 ‘전사’니 하는 단어로 치장된 소개를 들을 땐 딱딱할 것만 같았는데, 사선(死線)에 서봤던 사람 특유의 여유와 따뜻함을 갖춘, 무척 친절한 어른이었다.

호프엉은 베트남 젊은이들이 옛 전쟁의 기억을 너무 쉽게 잊는 것 같다는 걱정을 털어놨다. 프랑스나 미국 같은 제국주의 국가를 증오하라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비참함과 베트남의 출발점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거꾸로 한국 젊은이들은 치열했던 경제발전과 뜨거웠던 민주화 투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한국에 대한 베트남의 생각이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바는 “베트남은 한국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프랑스, 미국, 중국 같은 큰 제국주의 국가에게 하도 당하고 살았기 때문에 제국주의 피해를 입은 약소국 한국에 대해서는 오히려 친근감을 느낀다는 얘기였다. 베트남전의 경우에도 상대는 미국이었고, 베트남으로써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 맞서 싸워 이겼다는 자부심이 대단하기 때문에 그 ‘미국의 용병’이었던, 돈 벌기 위해 남의 나라에 와서 싸운 한국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줄거리다. 학살이나 잔혹행위가 좀 있었다 한들 넘어갈 법 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때 호프엉이 들려준 얘기는 좀 달랐다. 그가 베트남어와 영어를 섞어가면 몇 차례나 반복적으로 정성껏 설명하려 든 단어는 베트남어 ‘캡라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베트남 정부가 ‘과거는 닫고 미래로 나아간다’라는 외교적 수사를 쓸 때, 과거를 닫는다는 뜻으로 쓰는 단어가 캡라이다. 호프엉의 설명에 따르면, ‘닫는다’는 표현으로는 캡라이 말고 다른 단어도 있다. 차이라면 다른 단어가 두 번 다시 열어 볼 수 없도록 완전히 문을 꽝 닫아버린다는 의미라면, 캡라이는 다시 열어볼 수 있도록 살짝 닫아둔다는 뜻이라는 얘기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다낭을 다녀왔다. 다낭은 지금은 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베트남전 때는 남북이 치열하게 싸운 중부전선의 중심지였다. 다낭에서 30분만 가면 하미 마을이 있다. 1968년 2월 한국군의 대표적 학살이 저질러졌으나, 한달 뒤인 3월에 터진 미군의 미라이 학살에 가려졌던 비극의 장소다. 그런 다낭을 찾았으니 문 대통령이 뭐라 한마디 했으면 좋았으련만, 베트남과의 단독 행사가 아니라 APEC 무대여서인지 “마음의 빚이 있다” 정도의 언급만 살짝 나왔다.

이런 조심스런 상황판단 때문인지, 아니면 포항 지진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2001년 김대중 대통령,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베트남전에 대해 사과했을 때만큼은 이데올로기 논란이 불거지지 않는 것 같다.

다만, 자유한국당 대변인이 낸 성명을 보니 역시나 ‘베트남이 공식 사과를 요구한 적 없는 데 왜 먼저 사과를 꺼내는가’라고 비판해뒀다. 그에겐 호프엉 부주석의 ‘캡라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공식 사과 요구가 없다 해서 끝난 게 아니다. 아니, 박정희 정권 때 청구권 협상 다 끝났는데 뭘 또 사과하고 배상하라느냐는 일본의 태도를 우리는 늘 고까워하지 않았던가. 사과는 요청이 없어도 미리미리, 충분히 하는 게 좋다.

조태성 문화부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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