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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뉴스] 사람 때려 죽여도 집행유예? 망자 울리는 ‘합의 감형’

입력
2018.02.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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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여자친구를 때려서 죽게 한 40대 남성에게 ‘집행 유예’가 선고됐습니다. 사람을 죽였는데 어떻게 집행 유예처럼 지극히 낮은 형량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한국일보가 알아봤습니다.

제작 :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피해자의 머리채를 양손으로 붙잡아 강하게 흔든 후, 주먹으로 얼굴과 머리 등을 열 번 이상 때리고..." 지난해 숨진 정은비(46,가명)씨의 사망 원인은 판결문에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범인은 바로 그녀의 남자친구 이모(40)씨. 은비씨에게 다른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녀를 불러내 무자비하게 폭행했습니다.

뇌혈관이 파열되고, 늑골이 부서질 정도로 맞은 은비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중환자실로 옮겨진 지 열흘만에 결국 사망했습니다. 

이 잔혹한 범행에도 이씨가 받은 형량은 고작 징역 3년, 그리고 4년간의 집행유예.

사람을 죽였는데 '집행 유예'라니? 바로 유족이 '합의'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합의금 9,000만원을 받고 법원에 '처벌불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일선 판사들에게 형량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합의에 의한 처벌 불원'은 주요한 감경요소. 피해자 본인이나 유족과의 합의를 특별양형인자, 즉 일방 감형요소보다 무게를 두고 있죠. 

기본형의 무게 자체도 턱없이 가볍습니다. 폭행 치사의 기본형은 2~4년, 상해치사는 3~5년. 법정 최저형에 겨우 닿는 형량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식선에서 생각했을 때에도 의아한 판결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사망범죄조차 유족 합의를 내세우면 지극히 낮은 형량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이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2012년 동거인이었던 여자친구 이희영씨를 때려 죽게하고 시멘트로 암매장한 40대 남성 이모씨의 형도 '징역 3년'. 지난해 수감된 그의 출소일은 2년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가해자 이씨는 어릴 때 희영씨를 버린 그녀의 아버지에게 수천만 원을 지급하고 '합의'를 했습니다. 정작 그 아버지는 딸이 실종됐던 4년 동안 딸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있었죠.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들은 반문합니다. "남보다 못한 아버지와의 합의가 과연 피해자와의 합의라고 할 수 있나" "사람을 죽이고도 고작 3년을 살고 나온다니..." 차마 말을 잇지 못하기도 하죠. 

합의를 감경요소로 보는 대법원 양형위의 가이드라인은 제대로 된 단죄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런 지적도 나옵니다. "합의를 감경요소로 볼 것이 아니라, 합의를 하지 않을 경우를 가중요소로 둬야 한다."

억울하게 맞아 죽어 이젠 입을 열 수 없는 피해자들. 은비씨와 희영씨는 가해자들을 용서한 적이 없습니다. 

유가족의 합의가 터무니없는 선고를 이끌어내는 현실.  잔혹한 사망범죄의 형량마저 돈으로 흥정이 돼선 안 될 것입니다. 

기사 원문 : 이진희 기자, 박소영 기자 

제작 : 박지윤 기자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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