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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근로감독 기능의 독립성

입력
2018.08.12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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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6일 삼성의 노조와해 공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삼성전자 전 노무 담당 전무가 구속됐다. 네 번째 구속자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는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 방침을 관철하기 위해 2013년 7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의 노조와해 공작인 이른바 ‘그린화’ 작업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그리고 4곳의 협력사를 ‘기획폐업’하고 조합 가입 노동자에게 탈퇴 종용, 재취업 방해와 같은 불이익 처분을 하는 등 노조 파괴 작업을 총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가 한 이 작업은 정부의 비호 아래 가능했다.

검찰과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에 의해 그 전모가 드러나고 있는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노조 파괴 작업의 실태는 참혹하다. 그룹의 무노조 경영 방침을 협력사에게까지 관철하기 위해 법률전문가,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의 임원뿐만 아니라 경찰, 고용노동부까지 협력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구속된 4명에는 기업 임원뿐만 아니라 경찰관과 고용노동부 전직 간부가 포함되어 있다. 헌법에 노동기본권 조항을 두고 있는 국가의 전ㆍ현직 공무원이 기업의 위헌적 경영 방침의 실현에 조력한 것이다.

2013년 당시 고용노동부의 행태를 보면, 이를 그들의 개인적 일탈이라고 변명하기도 어렵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들이 2013년 6월부터 1개월간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해 수시근로감독을 진행한 후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결론을 내리자, 고용노동부 고위 간부들이 근로감독 기간을 연장하며 불법파견 결론을 바꾸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수시근로감독이 불법파견으로 판정이 나자 삼성과 고용노동부 간부들이 협력하여 압박하고, 그로 인해 근로감독의 결론이 뒤집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부적절한 정경유착으로 인해 숱한 노동자의 삶은 어그러졌다. 만약 그때 근로감독의 결론이 뒤바뀌지 않았다면,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소속 노동자들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모욕과 실업의 고통으로부터 피할 수 있었고,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새 정부가 이 잘못된 결과를 교정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삶을 완전하게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원인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다만 제도적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고용노동 행정 구조에서 근로감독 기능의 독립성이 확보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국제노동기구 제81호 협약(근로감독 협약(1947년)) 제6조는 “근로감독관은 신분 및 근무조건에 있어서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되고 정권 교체 및 외부의 부당한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인 공무원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근로감독 제도의 현실은 위 협약이 상정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평가하기에는 부족하다. 근로감독 행정은 고용노동부의 다른 분야로부터 독립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근로감독관의 채용, 교육, 승진 등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제도적 독립성의 부재(不在)는 근로감독관 개인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훼손하고, 외부로부터의 개입을 교사한다. 독립성 부재의 부작용은 오로지 노동자가 감수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근로감독청’ 신설을 내걸었으나, 이 공약은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폐기된 듯하다. 그 후 근로감독 행정을 전담할 ‘국’ 또는 ‘실’ 단위의 부서를 신설한다는 대안이 제시되었으나, 이것 역시 흐지부지되고 있다. 이제 2013년의 사태, 즉 근로감독관의 독립성 부재가 초래하는 결과가 무엇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난 상황에서도, 정부가 여전히 그 독립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소극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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