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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숲은 버섯공장 “향도 맛도 으음~”

입력
2016.10.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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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버섯 찾기] 1 말린 목이버섯. 2 표고버섯. 품종이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표고버섯. 백화고와 흑화고도 포함된다. 3 포토벨로 버섯 4 말린 은이버섯 5 송고버섯 6 팽이버섯 7 말린 능이버섯 8 양송이버섯 9 영지버섯 10 새송이버섯 11 느타리버섯 12 송이버섯 13 백만송이버섯 14 만가닥버섯 15 상황버섯.
[숨은 버섯 찾기] 1 말린 목이버섯. 2 표고버섯. 품종이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표고버섯. 백화고와 흑화고도 포함된다. 3 포토벨로 버섯 4 말린 은이버섯 5 송고버섯 6 팽이버섯 7 말린 능이버섯 8 양송이버섯 9 영지버섯 10 새송이버섯 11 느타리버섯 12 송이버섯 13 백만송이버섯 14 만가닥버섯 15 상황버섯.

경동시장은 재래식 식자재 백화점이다. 골목마다 싱싱한 과일과 채소는 물론 온갖 종류의 고기, 생선에 한약재까지 없는 게 없다. 골목 중엔 버섯 골목도 있다. 추석 전이면 야생버섯의 찌릿한 향이 진동하는 곳이다. 늦가을로 접어든 요즘에야 버섯도 줄고 사람도 줄었지만 여전히 송이버섯은 소담하게 쌓여 있다. 이제 끝물인 올해도 송이는 풍년이었는데, 명절이 지나자 값도 똑 떨어졌다. 가을의 정취는 매년 송이버섯 향과 함께 찾아와, 버섯이 자취를 감추는 늦가을에 증발한다.

가을의 3미각, 송이ㆍ능이ㆍ표고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상황버섯, 말린 능이버섯, 생 표고버섯, 말린 흑화고와 백화고, 영지버섯, 송이버섯.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상황버섯, 말린 능이버섯, 생 표고버섯, 말린 흑화고와 백화고, 영지버섯, 송이버섯.

‘1 송이, 2 능이, 3표고’라는 말이 있다. 엉터리다. ‘1능이, 2송이, 3표고’라는 사람도 있고 ‘1표고, 2능이, 3송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하는 소리가 다른 것은 세 버섯이 못지 않게 다 좋다는 의미다. 맛과 향이 진하고 각기 빼어난 개성이 있다. 야생에서 난다는 것 또한 공통점이다. 송이버섯은 주로 적송림에서 난다. 한국과 일본에서 가을의 진미로 꼽는다. 송이버섯이 짧은 한 철 즐기고 1년을 또 기다려야 나는 귀한 식재료라는 데엔 이견이 없다. 가격까지 귀한 것이 문제인데, 갓이 활짝 핀 것이나 수입산 송이버섯은 상대적으로 값이 싸다. 집에서 휘뚜루마뚜루 먹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갓이 다 핀 것이 더 향이 좋다는 사람도 있다. 워낙 고가이다 보니 날로 먹거나, 조심스레 구워 먹거나, 아니면 향을 쭉 빼서 국물을 마신다. 건조시킨 것도 나오긴 하지만 제철에 쫄깃한 식감과 신선한 향을 실컷 즐기는 편이 낫다.

능이버섯은 참나무 아래에 많이 자란다. 다른 이름이 향버섯일 정도로 특유의 쿰쿰한 향이 강하다. 향의 강도로 치면 송로버섯(트러플) 못지 않다. 말려두면 그 향이 한층 깊어진다. 생 능이버섯은 송이버섯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값이 나간다. 그래도 허리가 휠 정도는 아니라 백숙 등 요리 부재료로 많이 사용한다. 버섯을 꼽을 때, 때로 으뜸으로 쳐지기도 하는 표고버섯은 슈퍼마켓 매대에 곱상하게 누워 있는 재배 표고버섯이 아니라 산에서 딴 야생 표고버섯이다. 평화로운 환경에서 곱게 자란 재배 표고버섯과 아예 다른 버섯이라고 여겨도 좋을 정도로 맛과 향에서 차이가 크다. 숲에서 따온 표고버섯은 훨씬 달고, 향도 한층 다채롭다. 참나무나 너도밤나무 같은 활엽수의 그루터기에 돋아난다.

세상은 금수저만으로 이뤄져 있지 않듯이, 가을 숲이 남기고 간 버섯은 송이와 능이, 표고뿐이 아니다. 산느타리버섯, 싸리버섯, 참나무버섯, 칡버섯, 가지버섯, 꾀꼬리버섯 등 ‘잡버섯’으로 뒤섞여 팔리기도 하는 흙수저 버섯들 역시 저마다 강인한 향취를 지닌 가을의 별미다. 숲 속 버섯공장의 가을은 8월부터 시작해 인간의 가을보다 이른 10월에 끝난다. 충북 청천괴산전통시장, 청주 육거리시장, 강원 양양시장 등지에 이들 야생버섯이 모인다. 서울 경동시장에 올라오는 양은 많지 않다.

버섯이 좋아하는 생육 온도는 17-19도 사이다. 평소엔 땅 속에 균사를 무려 1㎠당 2,000m 길이에 달하는 그물 구조로 펼치고 있다가 좋아하는 온도와 습도가 맞아떨어질 때 자실체를 지표면으로 뿅 돋아올린다. 버섯의 80-90%는 수분으로 채워져 있는데, 공기 중 습도가 높을 때 자실체가 수분을 흡수하며 부풀어오른다고 생각하면 쉽다. 우리가 먹는 버섯은 실상 버섯의 자실체 부분이다. 다 부풀어 오른 버섯은 갓을 활짝 펴고 포자를 퍼트려 번식한다. 맛 성분은 대보다 갓 부분에 더 많다.

기후가 맞지 않을 때엔 버섯도 쉬는 터라 저장할 필요가 있다. 마침 송이버섯과 느타리버섯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버섯은 말렸을 때 맛이 더 좋아진다. 대표적인 것이 표고버섯이다. 심지어 뜨거운 물에 담가 불릴 때 향 분자가 활발해지며 향이 더욱 극대화된다. 표고버섯 불린 물을 버리지 않고 육수로 사용하는 이유다. 감칠맛 성분이 많아 말린 것을 갈아 천연조미료로 쓰기도 좋다.

진화하는 재배 버섯

첫 줄 왼쪽부터 느타리버섯, 양송이버섯, 은이버섯, 새송이버섯, 포토벨로 버섯, 팽이버섯, 목이버섯, 만가닥버섯과 백만송이버섯, 송고버섯.
첫 줄 왼쪽부터 느타리버섯, 양송이버섯, 은이버섯, 새송이버섯, 포토벨로 버섯, 팽이버섯, 목이버섯, 만가닥버섯과 백만송이버섯, 송고버섯.

풍부한 감칠맛과 숲의 단백질, 맛과 영양을 사시사철 누리고 싶은 인간의 식탐은 말려서 저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버섯 재배 기술로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일교차가 크고 바람이 세지 않은 내륙지역이 버섯 주산지다. 전남 장흥, 전북 진안, 충남 부여, 천안, 충북 영동 등지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중국에서는 13세기부터 이미 표고버섯을 재배했고, 프랑스에서는 17세기부터 양송이버섯을 재배했다. 이후로도 버섯 재배에 대한 집념은 이어졌지만 아예 재배가 안 되는 버섯도 있긴 하다. 살아있는 식물과 공생관계를 이루는 종류들이다. 이외 버섯은 식물에 기생하거나, 낙엽이나 동물의 배설물, 토양을 양분 삼아 자란다. 식용할 수 있는 버섯 종은 1,000여종에 이르지만 재배에 성공한 것은 아직 몇 십 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는 버섯만 해도 종류가 이미 수십 가지다. 어찌된 일인가 하면, 교접을 통해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낸 덕분이다. “1990년대 이후 재배 버섯이 급성장했습니다. 버섯 생육에는 온도와 습도가 중요한데 자동제어가 가능해지면서부터죠.” 신세계 조태호 농산물 바이어는 “양송이, 느타리, 팽이버섯, 표고버섯이 주였는데 최근에는 교접을 통해 다양한 신품종 버섯이 출시되는 경향”이라며 “버섯의 맛과 품질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일어난 흐름”이라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버섯 매대 면적은 90년대에 비해 두세 배 훌쩍 커졌다. 볼 때마다 못 보던 종류가 하도 많아 외우기도 힘들 정도다. 새송이버섯도 큰 것이 나왔다가 요즘은 작은 것만 모은 제품이 따로 나오고, 느타리버섯에는 ‘참’ 또는 ‘황금’ 같은 접두어가 붙은 것이 나오기도 한다. 갈색 모자를 쓴 만가닥버섯 옆에는 새하얀 백만송이버섯이 놓여있다. 이런 버섯들은 같은 종류라면 맛에서 크게 유의미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새카만 목이버섯과 상아색 은이버섯(흰 목이버섯)은 전자는 잡채나 짬뽕 재료, 후자는 고급요리 재료로 몸값이 갈린다.

새송이버섯도 그렇지만, 송이버섯의 맛과 향을 목표로 교접한 새로운 버섯은 꾸준히 새 품종이 등장한다. 요즘은 표고버섯과 송이버섯의 특징을 합친 송고버섯(송화버섯), 동글동글한 달걀처럼 생겨서 대가 짧은 이슬송이버섯이 인기라는 것이 조태호 바이어의 얘기다. 두 버섯 다 기본이 되는 종류는 표고버섯이다. 약용으로 주로 쓰는 노루궁뎅이버섯도 재배에 성공했다.

버섯은 수확 후에도 살아있다. 심지어 자라기도 한다. 미처 내뿜지 못한 포자를 내보내기 위해 영양을 갓으로 올린다. 갓이 자라면 감칠맛이 강해지지만, 수분이 많은 버섯은 자신이 내뿜은 수분에 축축해져 부패하기 쉬우므로 구입 후 바로 먹는 것이 좋다. 보관할 때는 키친타올을 덧대 수분을 흡수시켜준다. 버섯을 씻지 말라는 것은 수분을 흡수해 조리 중 질척해지기 때문에 나온 속설이다. 영양이나 맛 손실과는 별 관계 없는 얘기다. 조리 직전 가볍게 닦는 정도로 씻는 것은 문제 없다. 버섯을 조리할 때는 수분이 증발되도록 천천히 굽는 것이 가장 맛있다. 국물 속에서 장시간 익혀도 녹지는 않지만 수분이 빠져나가 심하게 쪼그라든다. 대신 질감은 단단해져 씹는 맛이 생긴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사진 강태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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