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홍주 기자

등록 : 2015.09.04 12:32
수정 : 2015.09.05 04:54

행복일까 혼란일까, 성큼 다가온 '스마트 알약'

꿈의 '해피 드럭' 불 붙은 논란

등록 : 2015.09.04 12:32
수정 : 2015.09.05 04:54

'모다피닐' 인지기능 향상 첫 입증…기면증 환자 처방약으로 사용

일반인 임상실험서 복용 후 문제 해결 능력 등 급상승 효능

장기 복용 부작용… 윤리 문제도… 보편화 땐 너도나도 남용 우려

벌써 인터넷서 암거래 이뤄져 "공정한 경쟁 룰 위반" 시끌

정신을 맑게 하고 지력을 높여주는 ‘해피 드럭(Happy Drug)’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매우 높다.

시험을 앞둔 학생은 수면시간을 줄여 공부를 해도 집중력이 유지돼 좋은 성적을 얻고 싶을 것이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둔 비즈니스맨은 완벽한 발표를 위해 몰입도를 높여 짧은 시간에 훌륭한 보고서를 쓰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재난현장에서 잠을 충분히 못 잔 구조대원이라면 각성상태를 보다 오래 유지해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고 싶을 것이다.

이렇게 인지능력을 향상 시킬 수 있는 약을 감기약처럼 쉽게 구할 수 있다면 개인의 행복은 물론 수많은 사고의 원인이 되는 ‘휴먼 에러(Human Error)’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인지능력 향상을 돕는 이른바 꿈의 ‘스마트 알약(Smart Pill)’과 가장 근접한 효능을 지닌 약의 효과가 최근 검증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기면증(신경정신과 질환으로 대낮에 참을 수 없이 졸리고 수면에 빠지는 병증) 치료제로 개발된 모다피닐(Modafinil)이 그 주인공으로 한 알만 먹으면 두뇌성능을 단숨에 끌어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다피닐의 약효 개선을 통해 일반인이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 알약으로 시판될 경우, 과연 이러한 약을 먹는 행위가 ‘사기(Cheating)’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논쟁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기면증 치료제에서 인지능력 향상 효과 발견

기면증 환자의 처방약으로 2002년 이후 사용되어온 모다피닐이 정상적인 수면패턴을 가진 실험자 집단에서 인지기능을 활성화 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처음 입증됐다고 영 일간 인디펜던트와 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그 동안 병증 치료제로만 판매돼온 약이 안전하고 실용적인 스마트 알약으로 진화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루아르드흐 배틀데이 박사가 이끄는 하버드와 옥스퍼드대 공동연구팀은 1990년부터 2014년까지 시행되어온 24건의 모다피닐 효능에 대한 선행연구들을 재분석, 지난달 30일 과학 저널 ‘신경정신약리학’학회지에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논문 ‘모다피닐이 건강한 수면패턴을 가진 사람들의 인지능력 향상에 미치는 영향’을 게재했다.

배틀데이 박사는 인디펜던트 기고문 ‘모다피닐, 신경증진제의 미래?’에서 인간의 인지능력을 약을 통해 증대시키는 시대가 눈앞으로 도래했다고 설명하며 이러한 약제를 수레바퀴와 나침반, 그리고 통신의 발명에 견줬다. 그는 “모다피닐 임상 실험(일반인 대상)들 에서 문제해결, 계획 짜기 등 인지 능력이 약 복용 후 현격히 증대된 사례를 보인 경우가 상당히 많았고 이를 통해 단기 복용에 한해 보편적인 효능이 있음을 검증했다”고 밝혔다. 배틀데이 박사는 “추가 연구를 통해 약제가 전두엽의 활동을 증폭시킨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인디펜던트는 “제한된 환경 아래에서 진행된 연구이지만 모다피닐을 먹은 일반인의 인지능력이 확장된 것은 물론 안전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라며 “다만 해당 약제가 이러한 용도로 사용되기에는 부작용 해소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덧붙였다.

건강한 사람이 스마트 알약을 먹어 인지능력을 향상시킬 경우 경쟁사회의 질서가 흐트러질 수 있다. 약을 먹을 수 있는 사람과 먹지 못한 사람의 시험 결과를 과연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스마트 알약을 먹고 정신 능력이 향상된 인물의 삶을 보여준 영화 ‘리미트리스’의 한 장면.

경쟁사회의 딜레마… 윤리적 논의 시작할 때

스마트 알약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인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장기 복용에 따른 부작용의 위험은 물론, 노력의 땀방울을 단 한 알의 약으로 대체할 수 있는 만큼 정당한 경쟁의 룰에 어긋난다는 윤리적인 문제 또한 쉽게 풀리지 않을 숙제로 대두된다.

2011년 국내 개봉된 영화 ‘리미트리스(limitless)’에는 미래의 어느 날 주인공(브래들리 쿠퍼)이 스마트 알약을 먹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이 그려진다. 마감을 잘 지키지 못하는 작가인 주인공은 지인이 준 약을 먹은 후 뇌의 기능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낀다. 모든 신경이 일시에 잠을 깬 듯, 하루에 한 개의 외국어를 습득하고 복잡한 수학공식을 순식간에 풀어낸다. 인지능력이 급격히 향상된 그는 주식 투자로 쉽게 거금을 모은다. 영화 속 상상의 모습이지만, 이러한 스마트 알약이 실제 일상으로 들어올 경우 겪게 될 사회적 난제들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남보다 월등히 뛰어난 인지능력을 갖기 위해 벌어질 오남용, 이를 통해 벌어질 혼란은 스마트 알약이 현실화하면 피하기 힘든 음지인 셈이다.

모다피닐과 함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로 쓰이는 애더럴(Adderall)은 이미 서구 학생들 사이에서 몰래 유통되는 각성제로 악명이 높다. 폭스뉴스 등에 따르면 학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들에서 처방이 필요한 모다피닐의 암거래가 이뤄지며, 학생들은 이를 ‘모다(Moda)’라는 약어로 부르고 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약을 먹은 한 학생은 인터넷 게시판에 “마치 나의 뇌가 닌자라도 된 것처럼 빠르게 돈다”고 밝혔다. 만일 스마트 알약이 보편화 될 경우 너도나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남용할 수 있으며, 사회적인 중독의 위험성도 간과할 수 없다. 비록 모다피닐 등이 쾌락을 주지 않아 중독성이 없다고 하지만 과거 일부 연구 가운데 도파민 생산을 늘려준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중독에 따른 남용도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스마트 알약이 실제 시장에서 널리 유통되기 전에 많은 윤리적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이 굿윈 유럽 신경심리약리학회 회장은 “모다피닐이 시험 준비 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첫번째 스마트 알약의 실례가 된 것은 분명하다”면서 “다만 인지능력이 정상인 사람들에게 이 약을 허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윤리적인 토론이 이제 막 시작됐다”고 가디언에 밝혔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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