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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정치게임의 시작

입력
2016.12.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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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조기퇴진 기정사실화

정치권 관심 ‘다음 대통령’으로 이동

광장 민심과 현실정치 괴리는 커져

‘탄핵 정국’이 오리무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3차 담화에서 조기 퇴진 의사를 밝힌 순간 뇌리를 스쳤던 우려가 이틀 만에 현실화했다. 3차 담화를 두고 야3당은 즉각 “꼼수”라며 “탄핵 강행”을 다짐했지만, 어차피 관건은 새누리당 비박계가 쥐고 있었다. 그 비박계가 1일 ‘4월 퇴진, 6월 대선’에 친박계와 합의했다. 당내 갈등을 거듭해 온 양측의, ‘최순실 사태’ 이후 첫 합의다. 구속력이 만만하지 않다. 그만큼 비박계의 적극적 탄핵 의지가 묽어졌다. 이에 따라 국회의 탄핵안 처리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정확히 지적했듯, 부결될 게 뻔한 탄핵안 발의는 오히려 박 대통령에게 정치적 면죄부만 주는 꼴이기 십상이다.

야당은 비박계 설득이란 쉽지 않은 과제를 안았다. 비박계는 박 대통령이 7일까지‘4월 퇴진’에 대한 입장을 밝히길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 전까지는 야당의 탄핵 동참 요구에 확답을 미루겠다는 얘기다. 1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만난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9일 탄핵안 처리에도 응할 태세가 아니다”고 확인했다. 한편으로 ‘4월 퇴진’에 대한 청와대 반응은 굳이 기다려 볼 것도 없다. 박 대통령이 이미 국회가 정해 주면 따르겠다고 밝힌 마당이다. 여야 합의라면 어떤 안이든 좋다는 원칙론만 반복할 게 뻔하다. 결국 야당은 퇴진 일정을 협의하자는 여당의 요구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할 수밖에 없다. ‘질서 있는 퇴진’에 무게 중심을 두어 온 국민의당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즉각 퇴진’에 기울어 온 민주당은 진통이 불가피하다.

이 모든 상황을 박 대통령의 ‘꼼수’ 탓으로 돌리기는 쉽다. 비박계의 탄핵 의지가 묽어졌고, 시간문제일 듯하던 탄핵이 신기루처럼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비박계가 박 대통령이 던진 올가미에 걸렸고, 그 바람에 야3당의 가지런했던 탄핵 발걸음이 어지러워졌다는 볼멘소리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꼼수라는 성격 규정은 시간 벌기 목적을 전제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임기가 끝날 때까지 버틸 거라면 몰라도, 박 대통령이 특별히 시간을 벌어야 할 이유가 무언지 헤아리기 어렵다. 더욱이 민주당 뜻대로 국회가 2일 탄핵안을 처리해 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청구해도 3~4개월은 걸리리라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여당의 ‘4월 퇴진’당론과 한 달 남짓한 차이다. 그 정도면 얼마든지 협의ㆍ조정 여지가 있다.

그것이 꼼수든 권력의지 포기든, 박 대통령의 3차 담화가 결과적으로 정치 분위기를 적잖이 바꾸었다. 광장의 민심은 3일의 촛불집회에서도 여전히 박 대통령의 즉각적 퇴진을 요구하는 당위론에 머물겠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미 조기 대선을 앞둔 본격적 정치게임이 시작됐다. 박 대통령의 조기 퇴진이 기정사실화한 만큼 다음 대통령이 누구냐로 관심이 옮겨 갈 수밖에 없다. ‘6월 대선’을 당론으로 정한 여당이나, 탄핵 절차를 서둘러 조금이라도 대선 일정을 앞당기려는 민주당, 그 양쪽을 동시에 붙잡으려는 국민의당 모두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이해타산을 감추지 않고 있다.

광장의 민심에는 젯밥에만 눈독을 들이는 꼴불견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즉각적 퇴진을 거부하는 대신 ‘질서 있는 퇴진’으로 기운 순간 굳어진 현실정치의 행로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도편추방(陶片追放)’과 같은 제도화한 직접 민주주의 절차가 없는 현실에서는 광장의 민심을 그대로 주워담을 그릇이 없다. 반면 조금만 길게 보면 여당의 6월 대선도 대선 일정을 6개월 앞당기는 것이자 ‘박 대통령 임기 단축’이다. 여야 협상 결과에 따라 추가 단축 가능성도 있어 얼마든지 여야가 통 큰 합의를 시도해 볼 만하다. 앞으로 수없이 흔들릴, 현재의 표심에 매달린 잔머리 계산만 버리면 어려울 게 없다.

여야 모두 초심을 되돌아 볼 때다. 국정 공백 사태를 서둘러 해소해 정치적 불안정을 제거하자던 다짐은 어디로 갔는지, 정국의 불확실성만 커졌으니 하는 말이다.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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