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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콰한 얼굴도 통과…낮술에 찌든 화상경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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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콰한 얼굴도 통과…낮술에 찌든 화상경마장

입력
2017.11.13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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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화상경마장 인근 식당에서 화상경마장 이용객이 입장하기 전에 술을 마시고 있다. 그 옆에는 화상경마장 직원도 있다. 손영하 기자
영등포 화상경마장 인근 식당에서 화상경마장 이용객이 입장하기 전에 술을 마시고 있다. 그 옆에는 화상경마장 직원도 있다. 손영하 기자

취객 “안 마셨다” 말하면 입장 시켜

음주측정기는 아예 보이지도 않아

물병·검은봉지에 감춰 내부서 마셔

곳곳 음주고성… 세번 강퇴 손님도

“신고할 때만 단속” 사실상 방치

인근 주민들 “이전하라” 목청 커져

서울 영등포역(지하철 1호선) 인근 화상경마장 건물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금요일인 지난 3일 오전 점심 식사를 위해 주변으로 흩어지는 사람들. 그중 베이지색 야구모자를 눌러 쓴 중년 남성이 한끼 5,000원 하는 한식 뷔페식당으로 향했다. “소주 한 병 주소.” 옆자리에는 마침 ‘불법사설경마 NO 퇴장’이 적힌 띠를 두른 경마장 직원이 앉아 있었다. 15분 정도 흘렀을까. 한 끼 식사와 음주를 금세 마친 남성은 불콰한 얼굴로 경마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화상경마장이 음주 ‘경마꾼’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피우거나, 인근 주민이나 행인에게 드물지 않게 돈 잃은 화풀이까지 하면서 화상경마장은 동네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마사회가 2014년부터 아예 이름을 ‘렛츠런CCC(Culture Convenience Center)’로 바꾸면서 음주자 입장을 원천 차단하겠다고 공언한 것도 이 같은 이유. 하지만 본보 기자가 찾은 경마장은 변한 게 없었다.

영등포 화상경마장 건물 1층 편의점에는 ‘음주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간이식탁 위에 놓인 마시다 만 막걸리 두 병, 전통주 한 병. 기자가 팩소주를 사면서 “갖고 가도 되냐”고 묻자, 직원은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표정이었다. 그는 “주머니에 넣고 올라가요”라며 검은 비닐 봉투를 내밀었다. 경마 팸플릿을 팔에 낀 한 남성은 막 구입한 막걸리를 병째 마셔댔다.

입장 시 음주 단속은 없었다. 1층 로비엔 “음주 입장, 객장 소란 등의 경우 환불 없이 퇴장 조치됩니다”는 입간판이 세 군데 놓여 있었다. “아저씨 술 마셨어요?” 직원 박모(40)씨가 술기운에 비틀거리는 손님에게 물었지만 “아뇨”라는 답에 곧바로 통과시켜 줬다. 단속을 위해 지사당 두 대씩 지급했다는 음주측정기는 보이지 않았다. 건물 내부에서는 어디서든 술 냄새가 났다.

오후 4시쯤 음주소란이 벌어졌다. “도둑놈들! 나 합기도 5단이야” 경주가 끝날 때면 들려오던 탄식과 욕설 사이, 한 남성이 직원들에게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빨리 내쫓아요. 술 취해서 아침부터 저래요.” 이 남성은 이날만 이런 식으로 세 번이나 강제 퇴장을 당했다.

직원 김모(50)씨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내쫓는 것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 과정에서 폭행을 당해도 경찰 신고는 엄두도 못 낸다고 한다. “앞으로 찾아올 고객이기 때문”. 그는 “물병에 소주를 담아와 몰래 마시고, 중간중간 밖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단속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음주 이용객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공언은 공언(空言)에 불과하다는 얘기였다.

피해는 다른 경마꾼과 인근 주민 몫이다. 오후 6시, 마지막 경마 경기가 끝난 건물 밖 거리에서 주취 소란으로 쫓겨났던 남성이 “오늘 돈 하나도 못 땄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글ㆍ사진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화상경마장 인근 식당에서 화상경마장 이용객이 술을 마시고 있다. 손영하 기자
화상경마장 인근 식당에서 화상경마장 이용객이 술을 마시고 있다. 손영하 기자
영등포 화상경마장에 설치 돼 있는 기초질서 준수 협조 당부 입간판. 손영하 기자
영등포 화상경마장에 설치 돼 있는 기초질서 준수 협조 당부 입간판. 손영하 기자
영등포 화상경마장에서 술에 취한 60대 남성이 직원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 손영하 기자
영등포 화상경마장에서 술에 취한 60대 남성이 직원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 손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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