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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제식이란 이유로… 폭력에 눈감은 의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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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제식이란 이유로… 폭력에 눈감은 의료계

입력
2017.10.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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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71% 폭언ㆍ20% 폭력 경험

의사들 시술ㆍ수술 중 주먹 폭행도

수련 과정 일부로 여겨져 관행화

적발돼도 징계 1~3개월에 그쳐

자격증 취득해야 하는 전공의들

슈퍼갑 교수에 대항 사실상 어려워

병원 내부에서 의사집단의 폭언과 폭력이 관행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솜방망이 처벌로 피해자가 공포에 떠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병원 내부에서 의사집단의 폭언과 폭력이 관행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솜방망이 처벌로 피해자가 공포에 떠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A(34)씨는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을 졸업하고 인턴을 거쳐 지난해 전북 전주의 모 대학병원 정형외과 레지던트가 됐을 때만 해도 꿈에 부풀어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병원에서 4년만 버티면 정형외과 전문의가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레지던트 생활 1년 만에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1년간 지속된 레지던트 동기와 선배, 정형외과 임상교수(전문의)의 폭언과 폭행. 견디다 못해 그는 결국 올 2월 병원을 그만뒀다. 그의 삶은 무참히 파괴됐다. 아내는 충격에 유산을 했고, A씨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그는 지금 강원 철원, 광주 등을 전전하며 일반의로 일하고 있다.

반면 그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들의 삶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A씨가 사직 후 대한병원협회 전공의 폭력신고센터에 이를 신고했지만 폭언을 일삼은 선배 레지던트는 1개월 정직 뒤 다시 병원에 돌아왔다. 동기와 임상교수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병원에서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다.

전공의(인턴ㆍ레지던트)들에 대한 폭력문화는 오랜 의료계의 병폐다. 환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다는 이유로 도제식 교육이 불가피하게 받아들여지면서 여전히 폭력은 적발이 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필요한 교육수단의 하나로 묵인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런 관행은 설문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10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2017년 전공의 수련 및 근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공의의 71.2%가 언어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20.3%는 신체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절반 이상은 지도 교수나 상급 전공의들이 가해자였다.

이처럼 폭력과 폭언이 난무하지만 수련병원에서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과정을 밟아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 전공의들은 ‘슈퍼 갑’인 교수들에게 대항하기 어렵다. 지도 교수에게 찍힌 전공의들은 선배와 동료 전공의들에게도 폭언과 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같은 ‘을’이지만 교수에게 찍힌 전공의를 감싸다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두렵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성형외과 레지던트 4년차로 근무 중인 B(30)씨도 좌불안석이다. B씨는 지난 3월 이 병원 성형외과 C교수가 지속적으로 성형외과 레지던트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행한 것이 알려진 후 동료 레지던트 6명과 뜻을 모아 서울성동경찰서에 C교수를 처벌해달라며 고소장을 제출했다.

병원 측은 C교수에 대한 인사위원회를 열어 대학 징계위원회에 회부했지만 대학에서는 사건발생 후 6개월이 지난 9월 초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는 12월초 병원으로 복귀한다. B씨는 “레지던트들이 지도교수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려 피해망상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는데 교수가 다시 현장에 복귀하면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전임의도 병원 내 폭력과 폭언에서 자유롭지 않다. 경기지역 한 대학병원에서 산부인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는 D(34)씨는 8월초 산부인과 외래 시술실에서 이 대학병원 E교수에게 주먹으로 폭행을 당했다. 난소 양성종양 흡입시술을 하던 중 환자 앞에서 머뭇거렸다는 이유였다. D씨가 민원을 제기했지만 이 대학 인사위원회는 해당 교수에게 ‘엄중경고’를 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D씨는 “올 3월에 1년 전임의 계약을 맺고 들어왔는데 내년 2월 계약연장을 해줄지 걱정”이라며 “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병원을 그만둬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씁쓸해했다.

전공의들은 “욕을 먹는 것은 일상이고, 시술ㆍ수술 도중 폭력이 가해져도 보다 나은 의사를 만들기 위해 훈계한 것으로 미화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아직도 폭언과 폭행이 전공의 수련과정의 일부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아무리 의사교육이 도제식이라 해도 비상식적인 폭력문화가 관행이란 이유로 면죄부를 받게 해서는 안 된다”며 “민ㆍ형사 소송 결과가 날 때까지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시키는 장치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 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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