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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유행어 사전] 젠트리피케이션

입력
2016.01.1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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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이란 도시 어떤 지역의 자산 가치가 갑자기 치솟는 것을 뜻한다. 독일 태생의 영국 여성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가 1960년대에 처음 사용한 말이다. 도시 사회학자였던 그녀는, 도심의 노후 지역이 개발되어 땅값과 집값이 급격히 오른 뒤에 원래 살던 하층 계급 주민들이 쫓겨나고 그 대신 중류 계급이 몰려드는 과정을 이 개념으로 설명했다.

어원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은, ‘gentry + fy’로 이루어진 gentrify라는 동사의 명사형이다. 그러니까, 이 말 자체의 뜻은 중류 계급으로 된다, 혹은 그런 한에서 고급화된다는 것이다. 원래 젠트리는 근대 이전의 영국에서 지주 계급을 가리켰다. 젠트리 계급 아래가 요우먼리라는 자영농 내지 자작농 계급이었고, 또 그 아래가 허즈번드맨이라는 차지농 내지 소작농 계급이었다. 오늘날 남편이란 뜻으로 쓰이는 허즈번드는 차지농으로서의 세대주 남성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이다.

예컨대, 만유인력으로 유명한 아이작 뉴턴 집안의 경우, 뉴턴이 태어나기 몇 대 전에 허즈번드맨 계급에서 상승해서 요우먼리 계급이 되었고, 뉴턴의 아버지는 요우먼리에 속하기는 했지만 교육을 받지 못해서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유복자인 뉴턴이 네 살 되던 해에 뉴턴의 어머니는 재산이 아주 많지만 늙은 목사와 결혼한다. 뉴턴 어머니의 새 남편은 결혼한 지 7년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이 재혼을 통해서 뉴턴 가문은 젠트리 계급으로 상승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로 치면 ‘은수저’ 정도에 해당하는 계급을 가리켰다고 할 수 있는 젠트리란 말의 어원은 ‘고귀한 출생’이란 뜻이었고 집합명사로서의 젠트리 계급에 속한 개개의 남성이 젠틀맨이었다. 젠트리 및 젠틀맨의 어근인 gen은 출생, 종족 등의 의미를 갖는데, 창세기(genesis), 유전자(gene), 세대(generation)란 말에도 들어가 있다.

그런데, 젠트리 계급은 토지 소유관계에서 보자면, 위로는 대지주 계급이자 고관대작 귀족 계급인 노빌리티(nobility)와 또 아래로는 자영농 계급인 요우먼리 사이에 놓인 토지 소유 계급을 가리켰지만, 점차 다소간에 더 광범위한 중간 계급, 즉 중소 지주층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서 종교계 및 법률계 등의 고위 전문직 종사자들과 부유한 상인까지도 아우르게 되었다. 또 이 과정에서 젠틀맨은 경제적인 측면보다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그 문화적 가치가 강조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한편, 젠틀맨이라는 단어는 근대 초에 동북아시아로 들어오면서, 향신(鄕紳) 혹은 신사(紳士)란 말로 번역되었다. 한자어 신(紳)은 예복에 갖추어 매는 큰 띠를 뜻하는 말이고, 신사란 말 자체는 이러한 예복을 입은 선비를 뜻했다. ‘논어’를 보면, 공자님 말씀을 자장이라는 제자가 급히 받아 적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때 허리띠를 풀러 거기에 적었다고 한다.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 과거 시험의 초급 단계에만 합격해서 중앙 관료로 진출하지는 못한 채 향촌에 거주하거나 혹은 퇴직 관리들로서 향촌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유교적 교양을 갖춘 지주 계급을 향신 혹은 그저 신사라고 불렀다. 향신 계급 출신 중에서도 몰락한 사람들이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과거 시험에 매달리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바로 ‘유림외사’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싼 곳에 작은 문화 시설, 카페, 식당, 술집, 옷가게 등이 하나둘씩 들어와서 장사를 한다.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이곳이 소위 ‘핫 플레이스’가 된다. 그 후 입소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더욱 더 몰려든다. 그 결과, 보증금과 월세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처음 들어와서 문화적, 상업적 분위기를 만들어 냈던 임차인들은 다른 곳으로 쫓겨나게 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을 막는 방법은 무엇일까. 일단은, 임차인을 보호하는 법적, 사회적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근로소득 및 사업소득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세금을 경감하고 동시에 자산소득 등의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세금을 무겁게 때리는 길뿐이다. 궁극적으로는 토지 공 개념이 답일 테지만 말이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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