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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24시] 중국 네티즌 “나도 디돤런커우” 분노 확산

입력
2017.12.03 17:1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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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외곽 임대 아파트 화재 빌미

市 ‘하층민 정리’ 강제 퇴거시키자

금지어 지정ㆍ게시글 삭제 조치에도

SNS “양심 깨어나야” 수천개 댓글

당국의 철거 명령에 이삿짐을 싸는 베이징 다싱구 신흥먼의 농민공들. SCMP
당국의 철거 명령에 이삿짐을 싸는 베이징 다싱구 신흥먼의 농민공들. SCMP

“나도 디돤런커우(低端人口: 도시빈민ㆍ하층민)다!”

중국 네티즌들이 요즘 자신의 웨이보(微博) 계정에 올리는 글 중 하나다. 자신의 글에 ‘#디돤런커우#’라는 말머리를 다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거의 예외없이 ‘관련 규정에 따라 삭제됐다’는 웨이보 관리자의 통보를 받는다. 네티즌들은 이번엔 관리자의 통보 내용을 자신의 계정에 올리고 다른 네티즌들은 말머리를 달아 이를 퍼 나른다.

중국에서 요즘 가장 주목받는 단어는 디돤런커우다. 원래는 외지에서 온 하층민을 지칭하는 용어였는데 개혁ㆍ개방 이후 농촌에서 대도시로 이주한 농민공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됐고, 최근엔 가정부ㆍ청소부는 물론 빈민가정 출신 대학생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확장됐다. 베이징(北京)시정부가 ‘디돤런커우 정리 작업’이란 표현을 쓴 뒤 네티즌들이 스스로 디돤런커우라 자임하고 나선 걸 보면 일정한 저항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발단은 지난달 18일 오후 베이징 남부 교외지역인 다싱(大興)구 시흥먼(西紅門)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였다. 19명이 죽고 8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는데, 대부분 외지에서 이주해온 저임금 노동자들이었다. 실제 시흥먼 일대 거주민의 대부분은 베이징 호적이 없는 농민공들이고, 이들은 낡고 오래된 저가 임대아파트나 쪽방촌, 무허가 영세공장 등지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임대아파트에도 소방ㆍ안전시설이 거의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베이징시정부의 폭력적인 조치였다. 베이징시는 화재 발생 사흘 만에 ‘안전’을 이유로 다싱구를 비롯한 외곽지역의 무호적 거주민들에게 수일 내에 해당지역을 떠나라고 통보했고 곧바로 단수ㆍ단전 조치까지 취했다. 또 삶의 터전을 잃은 농민공들에게 숙소와 생필품을 제공하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활동까지 막았고, 이 와중에 베이징시가 이번 조치를 ‘디돤런커우 정리 작업’이라고 명명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이러자 지식인 100여명이 공산당 중앙과 국무원 등에 공개적으로 항의서한을 보내고 네티즌들은 주류매체들이 외면하는 강제철거 현장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파하는 동시에 디돤런커우 말머리 달기 운동을 벌이는 등 이에 대한 반발이 커졌다. 문화대혁명의 깊은 상흔 때문인지 바로 옆에서 교통사고가 나도 외면하는 게 일상화한 중국에선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측근인 차이치(蔡奇) 베이징시 서기는 결국 지난 27일 간부회의를 열어 철거민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라고 지시해야 했다.

하지만 베이징뿐만 아니라 상하이(上海)와 광저우(廣州)ㆍ선전(深圳)ㆍ닝보(寧波) 등 다른 대도시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농민공들을 강제 퇴거시키는 조치가 진행되면서 네티즌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급기야 중국 당국은 웨이보ㆍ웨이신(微信) 등 SNS와 바이두(百度)ㆍ시나닷컴(新浪網) 등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디돤런커우’를 금지어로 지정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네티즌들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 네티즌은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마오쩌둥(毛澤東)은 공산당 권력의 원천이 인민이며 공산당이 변질되면 인민이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면서 “베이징시가 디돤런커우를 정리한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현실 앞에서 우리의 양심이 깨어나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던 이 글은 1일 오후부터 사라졌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중국의 한 네티즌이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나도 디돤런커우(도시빈민ㆍ하층민)다"라고 썼다가 관리자의 삭제 통보를 받았다며 올린 글. 웨이보
중국의 한 네티즌이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나도 디돤런커우(도시빈민ㆍ하층민)다"라고 썼다가 관리자의 삭제 통보를 받았다며 올린 글. 웨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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