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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바람 때문에 드론 오륜기 포기할 뻔"

입력
2018.02.11 17:1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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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선보인 드론쇼에는 1,218대의 드론으로 만든 오륜기가 등장했다. 인텔 제공
9일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선보인 드론쇼에는 1,218대의 드론으로 만든 오륜기가 등장했다. 인텔 제공

“프로젝션 맵핑(어떤 대상물에 영상을 비춰 해당 대상물이 다르게 보이도록 하는 예술기법)을 통한 다양한 영상, 레이저와 증강현실, 그리고 드론.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벗고 ‘하이 테크 코리아’라는 개념을 전한 개막식이었다.”(원종원 뮤지컬평론가ㆍ순천향대 교수)

“새로운 디지털 기술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드론과 촛불의 연결 등 아날로그와의 접목을 통한 감성적 전달이 좋았다.”(안호상 전 국립극장 극장장)

9일 강원 평창군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이 나라 안팎으로 호평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의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표현했다는 데 높은 점수를 줬다. 적은 예산과 추운 날씨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평화’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달했다는 평이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은 강원도 산골에 사는 다섯 아이 해나래(불), 아라(물), 푸리(나무), 비채(쇠), 누리(흙)가 동굴에서 발견한 고대 벽화에서 살아난 백호를 따라 긴 여정을 떠난다는 설정으로 시작했다. 아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미래 도시에서 ‘행동하는 평화(Peace in motion)’라는 답을 찾는다. “남북한 선수들이 개회식에서 공동입장하고, 단일팀도 구성된 만큼 개회식을 통해 전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었습니다.” 양정웅 개회식 총연출가가 11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밝힌 개회식 연출의 변이다. 양 총연출가는 “95% 이상 만족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자평했다. 개회식 직후 미국 방송 CNN, 영국 방송 BBC, 일간 가디언 등 해외 언론들도 우리나라와 북한 선수들의 공동입장을 메인 뉴스로 전하며 ‘극적인 올림픽’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이 9일 오후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Peace in motion’(행동하는 평화)라는 주제로 펼쳐지고 있다. 평창=김주영기자
2018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이 9일 오후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Peace in motion’(행동하는 평화)라는 주제로 펼쳐지고 있다. 평창=김주영기자

올림픽스타디움의 원형무대에는 한반도의 고대 신화와 전통 유산들이 소환됐다. 상원사 동종을 모델로 해 만든 높이 9m, 지름 4.8m의 거대한 평화의 종소리가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개회식 초반에는 고구려 덕흥리 고분벽화 등에 묘사된 ‘인면조’가 등장했다. 인면조는 사람 얼굴을 한 새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존재로 전해진다. 10일 오전 평창에서 열린 개회식 기자회견에서 송승환 총감독은 “한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준다는 기본적인 계획 하에 한국 과거를 고구려부터 시작하려 했고,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 송 총감독은 “고분벽화 속 백호, 청룡, 주작, 현무 네 동물과 웅녀가 함께 등장해 평화를 다 같이 즐기는 한국의 고대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고분벽화 속에 등장하는 무용수들도 무대로 옮겨와 춤을 췄다. 벽화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무용수들의 옷은 평면성을 강조해 디자인했다.

안호상 전 국립극장 극장장은 “고구려 벽화, 장구 춤 등 한국적인 것들을 감각적으로 표현해 세계인들에게 이해하게 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였다”며 “스토리를 정확하게 이해시키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라, 청각과 시각으로 자연스럽게 공감을 얻어내 우리 고유의 문화에 관심을 갖게 했다”고 평했다.

9일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평화의 땅’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송승환 개회식 총감독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인면조와 벽화 속 무용수들을 현실로 소환했다. 평창=김주영기자
9일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평화의 땅’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송승환 개회식 총감독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인면조와 벽화 속 무용수들을 현실로 소환했다. 평창=김주영기자
9일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한 백호. 평창=김주영기자
9일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한 백호. 평창=김주영기자

개회식은 과거의 한국에만 집중하지는 않았다. 선수단이 입장할 때는 가요 ‘미인’과 ‘단발머리’,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주제가 ‘손에 손잡고’ 등을 일렉트로닉뮤직(EDM)으로 경쾌하게 편곡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때마침 입장하던 미국 선수들을 춤추게 했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빅뱅의 노래 등 최신 K팝도 흘러나왔다. 올림픽 찬가는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소프라노 황수미가 불렀다.

무엇보다 최신 디지털 기술을 집약해 구현해 낸 무대가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원형무대에는 프로젝션 맵핑을 활용한 빛 그림이 쉴새 없이 그려지며 탄성을 이끌어냈다. 3만5,000개 좌석마다 설치한 LED조명을 이용한 미디어아트 공연도 관객의 이목을 끌었다. 단연 화제는 드론 1,218대를 쏘아 올려 만든 오륜기였다. ‘드론 오륜기’와 ‘드론 스노보더’를 본 관객들은 “컴퓨터 그래픽(CG)인 줄 알았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드론은 이제껏 세계 여러 대회 개회식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송 총감독이 강한 의지로 드론 활용을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극연출가로서 평소에도 기술과 예술의 융합에 관심을 보여 온 양 총연출가는 “예산과 바람 등 요인들로 여러 번 드론을 포기할 뻔한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송 총감독님과 함께 드론을 실현할 수 있게 끝까지 열의를 불태웠다”며 웃었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서울올림픽 때는 대한민국 국가브랜드에 대한 해외 인지도가 높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인지도가 더 높은 상황에서) 어떤 한국의 이미지를 어필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며 “이런 고민에서 찾은 답이 테크놀로지였다”고 분석했다.

9일 열린 ‘2018 평창겨울올림픽’ 개회식은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의 전통과 현재를 조화롭게 구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공연된 ‘모두를 위한 미래’. 평창=김주영기자
9일 열린 ‘2018 평창겨울올림픽’ 개회식은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의 전통과 현재를 조화롭게 구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공연된 ‘모두를 위한 미래’. 평창=김주영기자

다만 증강현실 사용 등에 대해서는 엇갈린 반응도 나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개회식 중계방송을 하며 불꽃놀이를 CG로 과장되게 표현해 논란이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한국 위의 별자리와 별을 묘사한 것과 같은 증강현실은 TV 시청자들을 위해 고안된 요소들”이라며 “정작 스타디움에서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증강현실로 구현한 별자리)를 보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 봤다”고 보도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은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알찬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베이징올림픽은 6,000억원,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개・폐회식은 1,715억원의 예산이 들었던 데 비해 평창은 개・폐회식 예산으로 600억원을 썼다. 제일기획과 CJ 등 5개사로 구성된 컨소시엄의 협력도 큰 힘이 됐다. 송 총감독은 “실제 콘텐츠를 만드는 데 든 비용은 200억~300억원이었다”며 “애초부터 다른 나라의 개폐회식과는 차별화된, 작지만 강한 한국을 보여주려는 마음으로 출발했다”고 밝혔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는 프로젝션 맵핑과 증강현실, LED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한 화려한 공연이 펼쳐졌다. 평창=김주영기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는 프로젝션 맵핑과 증강현실, LED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한 화려한 공연이 펼쳐졌다. 평창=김주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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