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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돌아온 쿤타 킨테, 美 인종 갈등의 현실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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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돌아온 쿤타 킨테, 美 인종 갈등의 현실을 말하다

입력
2016.05.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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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는 달리 백인 사연은 줄어

경찰관의 잇단 흑인 총격사건에

“美 인종 갈등의 현실 반영” 분석

국내서도 케이블채널 통해 방송

‘갑을 논란’ 등 뜨거운 감자 예고

1977년에 이어 2016년 새로 만들어진 미국 드라마 ‘뿌리’에서 백인에게 노예로 잡힌 한 흑인이 학대 받고 있다. 딜라이브 제공
1977년에 이어 2016년 새로 만들어진 미국 드라마 ‘뿌리’에서 백인에게 노예로 잡힌 한 흑인이 학대 받고 있다. 딜라이브 제공

“와~!” 지난 4월19일 미국 워싱턴 D.C의 하워드대학교. 약 40년 만에 리메이크된 미국 드라마 ‘뿌리’(Roots) 시사회 도중 객석에서 환호가 터졌다. 미국에 노예로 끌려 가던 아프리카 흑인 소년 쿤타 킨테가 다른 흑인들과 함께 노예선을 장악하려는 장면에서였다. 1976년 퓰리처상을 받은 알렉스 헤일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뿌리’는 흑인 노예 쿤타와 후손들의 역경을 다룬 드라마로, 1977년 1월 ABC방송에서 첫 전파를 탔다. 4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21세기에 이뤄진 ‘뿌리’의 귀환과 이에 대한 환대는 미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인종차별 문제가 여전하고 인종 갈등은 더욱 심각해줬음을 보여준다.

‘뿌리’의 리메이크작 첫 회가 30일 오후8시(현지시간) 미국 케이블TV 히스토리 채널 등에서 많은 화제와 관심 속에서 방송됐다. 한국 현충일에 해당하는 메모리얼데이에, 역사 전문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송된 점이 흥미롭다. ‘뿌리’ 리메이크작은 원작과 이야기의 틀은 같지만, 일부 캐릭터의 배경은 달라졌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리메이크작에서 쿤타는 아프리카 고향 권력층의 자손이다. 내세울 것 없는 촌사람이었던 원작 속 캐릭터에 변화를 줘 흑인의 근엄함과 저돌성을 부각했고 흑인의 주체성을 살렸다.

리메이크작은 8부작으로 제작됐다. 12부였던 원작과 달리 백인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줄이고, 흑인 등장인물들 얘기에 집중했다. 네 명의 영화 감독을 투입해 에피소드 별로 공을 들인 덕에 영상은 보다 화려해졌다. 영화 ‘킬로 투 브라보’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인 영국 출신 배우 말라치 커비가 쿤타를 연기했다. 제작비는 약 5,000만 달러(약 600억 원)로 미국 드라마 가운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뿌리’의 리메이크는 미국 사회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뿌리’의 부활은 미국 내 극에 달한 인종 갈등에 대한 증후라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2008년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버락 오바마)이 탄생하고 2012년 재선까지 했음에도 인종 갈등은 오히려 악화하고 있는 것에 대한 현실 반영이란 분석이다. 데일리헤럴드 등은 2014년부터 미국에서 확산 중인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을 ‘뿌리’ 리메이크의 사회적 배경으로 보고 있다. 블랙 라이브즈 매터 운동은 백인 경찰관의 흑인 무차별 총격 사건이 2014년부터 잇따라 불거지면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걸 강조하는 사회 운동이다. ‘뿌리’의 리메이크는 2015년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에서 20대 백인 청년이 흑인 교회에서 벌인 총격 사건이 계기가 돼 추진됐다는 후문이다. 새로 만들어진 ‘뿌리’는 드라마로서는 이례적으로 백악관에서 시사회가 진행되는 등 여러모로 미국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흑인 인권의 뿌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최근 대중문화 곳곳에서 발견되는 점도 ‘뿌리’의 귀환과 무관치 않다. 팝스타 비욘세는 지난 2월 미국 최대 스포츠 행사인 프로미식축구리그(NFL) 결승전인 슈퍼볼에서 1960~70년대 게릴라 활동을 펼친 흑인인권무장단체 흑표당이 입던 의상을 입고 신곡 ‘포메이션’을 부르며 흑인 인권을 외쳐 파장을 일으켰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부 교수는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과 그를 지지하는 백인 노동자와 중산층이 경제적 위기의 원인을 유색 인종과 이주민에 돌려 인종 간 위화감이 커지고 있는 게 현재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로 인해 인종 문제가 2~3년 사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고, 현재는 한국의 여성혐오 문제와 같이 갈등의 골이 깊어져 ‘뿌리’ 같은 콘텐츠가 재생산되는 것”이라고도 분석했다.

‘뿌리’의 부활은 태평양 건너 한국에도 ‘나비효과’를 불러 일으킬 전망이다. ‘뿌리’ 리메이크작은 미국 방송과 더불어 국내 케이블채널인 드라맥스를 통해 방송(한국시간 31일)됐다. 드라마 속 인종 문제가 내포한 계급 갈등이, 경제적 양극화로 심화된 ‘갑을 논란’과 맞닿아 있어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논쟁거리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 드라마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수저 계급론과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한국 사회는 현재 계층간 갈등이 극심하다”며 “‘뿌리’가 50대 이상 세대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콘텐츠로 작용하겠지만, 20~30대에게는 구조적 계층 갈등 문제를 환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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