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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공론화 논의의 몇 가지 아쉬움

입력
2017.10.25 15: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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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론조사만으로 정할 사안이었나

시민참여단의 궁금증 해소는 충분했나

숙의의 질 향상이 앞으로 풀어 갈 과제

신고리 원전 5ㆍ6호기 공사 여부를 두고 시민 다수가 숙의를 통해 해법을 도출했다. 최종 결정에 불만의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공사 중단을 요구해 온 환경단체에서 “결과를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성명이 나온 것은 인상적이다. 정부가 대선 공약이라며 공사 중단을 밀어붙였을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일부 주장대로 논의가 국회로 넘어가 만약 공사 재개 결정이 나왔더라도 이처럼 결과를 수긍하는 분위기였을지 의문이다. 공론화 논의를 통해 사회 갈등을 조정하고 결론을 도출할 필요성을 실감한다.

효용을 확인한 공론화 작업을 앞으로 더 내실 있게 진행하기 위해 이번 논의에서 미흡했던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먼저 시민참여단 구성에 기계적 중립의 여지는 없었는지 살펴야 한다. 공론화위는 이번 작업이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중단 여부에 대해 국민 전체 의견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원전 정책을 정하는 것이라면 ‘국민 전체’ 의견만 묻는 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공론화의 초점은 울주군 일대에 2기의 원전을 더 짓느냐 마느냐였다. 이 지역은 반경 30㎞ 이내에 수백만 명이 거주하고 있고 인근에 10기의 원전이 밀집해 있다. 이를 문제삼아 신고리 원전 건설 취소 소송까지 제기된 상태다.

공론회위의 보고서를 보면 시민참여단이 최종 결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둔 것은 ‘안전성’이었다. 시민참여단 중에서는 원전 건설을 재개할 경우 필요한 조치에 대해 ‘원전 주변 지역주민들의 안전ㆍ보상 등 대책 마련’을 지적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국민 전체의 생각을 파악하는 것과 함께 사고라도 났을 때 직접 피해를 볼 지역민의 의사를 더 가중치를 두어 반영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이번 최종 조사 결과가 시민참여단의 지역별 구성을 달리하거나 응답에 가중치를 두더라도 결론이 다르지 않을 내용으로 나와 더 아쉬움이 남는다. 또 원전이 미래세대에 부담 지우는 사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고교생 등 10대를 시민참여단에서 배제한 것도 합당했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만하다.

시민참여단 설계의 문제와 함께 3개월 정도의 공론화나 한 달 남짓한 숙의가 충분했느냐는 지적도 돌아봐야 한다. 공론화 과정에서 계속 제기되었던 이 문제에 대해 공론화위는 해외 사례에 비해 짧지 않았다면서 기간이 길어지면 ▦공사 중단에 따른 손실이 늘고 ▦사회 갈등이 증폭할 수 있으며 ▦시민참여자가 이탈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온라인 이러닝 프로그램 등을 통한 다양한 학습 기회 제공 등을 강조했다.

하지만 공론화위 보고서에서는 시민참여단 스스로 “더 충분하게 이야기하고 분임 토의를 하면 좋을 것 같다” “인원 대비 시간이 너무 짧다”며 논의의 미흡함을 토로하고 있다. 시민참여단 구성 전 2만명 여론조사와 시민참여단 최초 조사 결과를 보면 신고리 5ㆍ6호기는 처음부터 공사 재개가 중단보다 9%포인트 높았다. 3분의 1 정도였던 판단 유보자들이 최종으로 의견을 정하면서 19%포인트로 그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판단 유보자들이 의견을 정하면서 나뉜 비율은 애초 공사 재개ㆍ중단 의견을 표시했던 사람들 비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숙의 과정을 거쳐 재개에서 중단으로, 중단에서 재개로 의견이 바뀐 숫자도 많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원전 정책이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결 양상을 띤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수 색채가 강한 고령층ㆍ영남에서 애초부터 재개 의견이 월등히 우세했고 숙의 이후에도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숙의 기간이 얼마나 길어야 충분하다고 할지 기준이 있는 건 물론 아니다. 사안별로 다르겠지만 더 높은 숙의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기간이나 방식을 재고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공론화 작업을 정리해 앞으로 낼 백서에 이런 부분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담기기를 기대한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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