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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선택한 '테러와의 전쟁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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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선택한 '테러와의 전쟁 2.0'

입력
2014.09.2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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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중동정책의 변화

부시, 테러 지원국 즉각 응징서 오바마, 비폭력 다원주의 통해 중동서 발 빼고 中 견제 노려

오바마 테러와 전쟁 2.0

美 지상군 투입 않고 국제 공조 강조

이라크 보안군ㆍ시리아 온건반군이 지상서 극단주의자와 싸워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의 유엔총회 연설에서 이슬람 수니파 반군 '이슬람국가'(IS)를 '죽음의 네트워크'(network of death)로 규정하면서 국제사회의 적극적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의 유엔총회 연설에서 이슬람 수니파 반군 '이슬람국가'(IS)를 '죽음의 네트워크'(network of death)로 규정하면서 국제사회의 적극적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3년 3월 20일 새벽 카타르의 알-우다이드 공군기지에서 발진한 미군 F117 스텔스 전투기 편대가 바그다드를 맹폭하면서 시작된 이라크 전쟁은 싱겁게 끝났다. 3주 만에 다국적군은 바그다드를 점령했고 5월 1일 부시 대통령은 항모 링컨호 함상에서 전쟁 종료를 선언했다. 42일만이었다. 미군은 사담의 폭정에 시달려 온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켰다.

9ㆍ11 테러라는 미증유의 참상을 경험한 미국은 단호했다. 부시 정부의 네오콘들은 즉각 테러와 전쟁을 선포하고 응징에 나섰다. 당시 미국과 맞설만한 적수는 없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실각시키고, 이라크의 사담을 무너뜨리면서 테러와의 전쟁은 순항했다. 이제 9ㆍ11의 주범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라덴 일당을 어떻게 궤멸시키는가 하는 문제만 남겨놓고 있었다. 장기적으로 미국이 가졌던 복안은 이라크와 아프간을 민주화시키고 그 사이에 있는 이란에 민주화의 기운이 스며들어 이란 정권 변동까지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오바마의 중동외교는 ‘비폭력 다원주의’

그러나 사태는 생각과는 달랐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이라크인들의 눈에 미군은 더 이상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미국은 안정된 민주 연방국가 이라크를 원했다. 그리고 직접 종파와 종족을 중재하며 하나로 엮는 구심점이 되었다. 사담의 부재가 가져온 권력의 진공상태를 그대로 놓아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결국 구원(舊怨) 관계인 수니파와 시아파 그리고 쿠르드족을 협력시키는 안정화 프로젝트를 주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과거 사담의 잔당들과 테러리스트들이 미군과 싸웠다. 그 과정에서 ‘알카에다 이라크’(AQI)가 등장했다. 이들이 지금 이슬람국가(IS)의 전신이다.

명과 암은 명확히 갈렸다. 민주주의 정부를 세웠지만 비용과 희생이 너무 컸다. 9년에 걸친 이라크 안정화 작전과정에서 4,488명의 미군 장병이 생명을 잃었다. 무수한 이라크 민간인들의 희생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1조3,000억달러의 전비가 투입되었다. 기회비용 등의 간접 전비까지 모두 합하면 3조달러(3,300조원)라는 막대한 비용이 든 것으로 추산된다. 이라크 안정화 비용까지 더하면 쓴 돈은 이보다 훨씬 더 커진다. 이 같은 지출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내부는 여전히 불안정과 갈등의 요소가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부시의 임기는 만료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은 극적이었다. 새로운 국면을 예고했다. 취임 직후부터 부시 정부와는 사뭇 다른 중동정책을 표명했다. 부시 대통령이 테러집단 및 테러리스트 지원 국가와 단체를 즉각 응징하고 중동에 민주주의를 심겠다는 야심찬 구상을 추진했던 반면 오바마는 ‘비폭력적 다원주의 (non-violent pluralism)’ 노선을 내세웠다. 비록 미국과 적대관계인 국가라도 정권교체나 정권변환 등을 시도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비폭력적’ 즉 대량파괴무기(WMD)와 테러리즘과 인연을 끊기만 한다면 언제, 누구와도 협력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취임 초기 오바마 대통령은 일련의 연설과 인터뷰를 통해 이슬람 정부든 권위주의 정부든 미국은 다원주의를 인정하고 함께 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아랍 민주화와 함께 테러집단 부활

오바마 정부는 중동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외교정책 기조는 아시아 재균형(Asia rebalancing)이다.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의 향후 행보를 견제할 시점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미ㆍ중간 소위 G2의 세계 양강 구도를 배경으로 외교의 무게중심을 옮기려는 시도였다. 이는 곧 중동과 유럽에서의 힘 빼기를 의미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에서 미국이 개입하면 할수록 외교적으로 짐이 된다고 보았던 것 같다. 이전 정부가 아랍ㆍ이슬람권에서 전쟁과 민주화 프로젝트를 추구하다 재정위기까지 겪었고, 나아가 미국의 매력 즉, 소프트파워도 상당 부분 상실했다고 믿었다. 더 깊이 중동에 연연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군사개입을 통해 중동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고 믿었다. 여전히 종파 갈등의 위험이 있었지만 이라크에는 민주주의 연방정부가 수립되었다. 아프간에서도 일단 공화정부가 들어섰다. 그리고 빈라덴 사살까지 성공했다. 견고한 위계조직이었던 알카에다는 쪼개져 이곳 저곳 흩어졌다. 이 정도면 대테러전 모드를 종료할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맥락에서 오바마는 2011년 말 이라크 전면철군을 시행했고, 2014년 말 아프간 전투병력 철군을 예고한 상태다.

그러나 상황은 오바마의 기대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미국이 힘을 빼자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랍 ‘민주화의 봄’도 이상기류를 몰고 왔다. 각처에서 이슬람 저항세력을 억압하던 독재정권이 붕괴하자 테러리스트들은 호재를 만난 격이 되었다. 민주화 분위기를 타고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 와중에 알 카에다는 성격을 바꾸면서 이들을 규합하는 일종의 네트워크 허브로 다시 부상했다. 중동전역에 테러 위험이 높아진 것이다.

이라크가 그 거점이 되었다. 미군이 철군하자마자 수니-시아파간 종파 갈등은 격심해졌다. 구심점을 잃은 까닭이다. 수니파 거점 지역인 안바르, 살라딘, 니네베, 디얄라 등에서 무장단체들이 발호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아랍 정치변동인 ‘재스민 혁명’의 여파가 시리아로 이어지며 내전상태가 되자 이라크와 시리아에 퍼져있던 광범위한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이 결집하기 시작했다. 현재 IS가 활개를 치게 된 배경이다. 이들은 석유자원과 은행 탈취, 인질 교환 등을 통해 자금원을 확보하고 아예 국가를 선언했다. 통치 이념으로 극단적 폭력 노선을 추구하면서 이른바 공포정치를 구가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인 두 명과 영국인, 프랑스인 각각 한 명이 참수당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국제지원 받아 이라크 자력으로 이겨내야

이쯤 되면 미국인들은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지난 14년 동안 왜 테러와 전쟁을 한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 길고 아픈 싸움을 통해 숱한 희생과 전비를 감수하고 테러리스트 궤멸에 진력해왔는데, 지금은 알카에다 보다 더 잔악한 세력이 아예 국가를 세웠다는데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왜 귀한 병력 4,488명이 죽어서 돌아왔는지, 왜 3조달러에 달하는 전비를 썼는지, 왜 아프간에서는 여전히 14년째 전쟁 중인지에 대한 깊은 회의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이 전쟁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에 대한 의문 그리고 일종의 회한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회한만 곱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 이라크에 다시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지난 14년의 고통을 다시 감수할 수 밖에 없음을 잘 알면서도 오바마는 자국민의 참수 소식 앞에서 결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라크내 소수종파와 기독교공동체에 대한 IS의 탄압도 결심을 재촉했다.

2014년 9월 22일 홍해와 페르시아만 항모전단에서 발진한 전폭기와 전투기 편대, 그리고 토마호크 미사일은 시리아내 라카와 이들립, 알레포 등의 거점 지역을 타격했다. 누구보다도 중동은 중동에 사는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믿음이 강했던 오바마가 2014년판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부시가 이끌었던 테러와의 전쟁과는 완연히 다르다. 오바마는 군수뇌부의 지속적인 건의에도 불구하고 지상군 투입을 거부하고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국제공조를 주장한다. 이번 유엔총회에서 오바마는 쉬지 않고 아랍 5개국의 공습 동참을 언급했고, 40개국에게서 지원 약속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지상에서 극단주의자들과 싸워야 하는 이들은 미군 같은 외부세력이 아니라 이라크 보안군, 그리고 시리아 온건반군들이어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자신들의 땅에서 자신의 힘으로 이겨내어야 할 싸움이라고 믿는 것이다.

IS와 전쟁이 오래갈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단기간 내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싸움이다. 그러나 오바마의 기대 대로 국제사회가 긴 호흡으로 협력하여 극단주의 세력에 맞서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길 수는 있는 싸움이기도 하다. 미국 등 외부세력의 무력으로 평화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노력으로 평화를 쟁취하는 싸움이 되어야 한다는 오바마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ㆍ중동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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