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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비, 억대 연봉자도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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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비, 억대 연봉자도 버겁다

입력
2015.03.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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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에 매달 300만원 지출, 노후 계획은 꿈도 못 꿀 판

공교육 정상적이라면 왜… 빗나간 교육열로 보지 말길"

그의 연봉은 1억2,000만원이다. 매월 750만원을 실 수령액으로 받는다. 연봉이 어느 수준인지 영국 디자인에이전시 포크(POKE)사가 운영하는 글로벌리치리스트(globalrichlist.com)에서 확인해보니 전세계 72억 인구 가운데 상위 0.07%에 해당됐다. 시간당 6만2,500원을 벌어들이는 것으로도 나왔다. 전업주부인 아내에 재수생과 고등학교 1학년인 두 아들을 둔 금융회사 김모(49)부장 얘기다. 기자는 지난주 평소 알고 지낸 그를 만났다.

김부장은 자신을 “그래도 자수성가한 사람”이라고 했다. 부모 도움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이었고,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좋은 직장에 억대 연봉까지 받고 있는 때문이다. 억대 연봉은 우리 사회에서 고소득층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수치가 아니던가.

그런 그도 “사교육비 감당하느라 노후계획은 꿈도 꿀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서울의 89m²(27평)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다. 임금 인상이 아파트 가격 상승을 따라잡지 못했기에 아직까지 집을 마련하지 못했다. 전세 3억3,000만원 중 3,000만원은 신용대출을 했고 이 중 원리금 상환으로 1,200여만원을 갚았다. 여기에 마이너스 통장 대출로 7,000여만원의 빚이 더 있다.

빚은 최근 2년 사이에 급격히 늘었다. 고등학교 1, 2학년 때 공부를 해야 할 이유를 못 찾겠다던 큰 아들이 고3이 되자 뒤늦게 갑자기 마음을 바꿔 공부해보겠다고 나서면서다. 학교에서는 이미 성적이 뒤쳐진 아들을 챙겨줄 시스템이 없었고 결국 사교육에 맡겨야 했다. 김부장은 “매월 국영수 3과목에만 200만원이 넘게 들었다”며 “그때 중학생인 둘째도 학원비로 매월 100만원은 썼다”고 했다. 공과금을 포함한 생활비와 각종 보험, 아내 국민연금, 부모님 용돈 등에 월급 절반 가까이 고정비용이 되는 상황에서 아이들 사교육비에 목돈이 들어가다 보니 빚이 늘어났다.

놀랍게도 사교육의 효과는 있었다. 중하위권이던 큰 아들은 성적이 쑥쑥 올라가 작년 6월 모의고사에서는 만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수학능력 시험 당일 컨디션 조절 실패로 시험을 망쳤고 아들은 재수를 선택했다. 그는 “옛말에 자식이 공부한다면 달러 빚이라도 내는 게 부모 심정이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면서도 “솔직히 억대 연봉자인 나도 자식 사교육비 대느라 버거운데, 벌이가 못한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다”고 말했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지켜본 공교육에 대해 말할 때 김 부장의 어투와 표정은 원망에 가까웠다. 공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 탓에 모든 가정이 사교육비 부담으로 멍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공교육이 정상적이라면 사교육비 걱정을 왜 하겠느냐”며 “사교육 문제를 부모의 빗나간 교육열로만 보지 말고 진짜 피부에 와 닿는 교육정상화 정책을 내 놓기는 했는지 당국이 스스로 물어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교육을 줄일 계획이 없느냐고 물었다. 마침 그를 만난 날은 교육부가 ‘2014년 사교육비ㆍ의식조사’ 결과를 발표한 직후로, 월 700만원 이상 고소득 가구의 1인당 사교육비는 42만8,000원(전체 평균 24만2,000원)이었다. 아들이 둘인 김 부장 가정의 사교육비는 평균(90만원대)보다 3배를 넘는다는 점에서 과하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이에 그는 “정부조사에 한 달에 300만~400만원을 사교육비로 쓴다고 말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라며 “주변과 비교하면 더한 사람이 많아 내가 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 부장은 공교육 황폐화가 바로 잡히지 않으면 중산층 몰락도 멀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나조차도 매월 허덕이며 삽니다. 사교육비를 감당할 능력이 되든 안 되든 자녀 교육을 생각하면 행복하지 않은 건 모든 가정이 마찬가지일 겁니다. 학교와 학원에서 청소년기를 모두 보내야 하는 자녀들은 또 어떻겠습니까. 이런 사교육 부담에서만 벗어나도 많은 가정의 삶이 풍요로울 겁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 아닌가요.”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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