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위기의 남성들 "여성은 배려 아닌 척결 대상" 뒤틀린 적개심

알림

위기의 남성들 "여성은 배려 아닌 척결 대상" 뒤틀린 적개심

입력
2015.05.28 04:40
0 0

2000년대 들어 여성부 출범

군가산제 위헌 등 男 피해의식

개똥녀 ㆍ신상녀ㆍ루저녀 모멸 시리즈

여성 고시 약진ㆍ대학진학률 추월

불황 속 일자리 경쟁 압박감까지

실제론 임금격차ㆍ채용비율서

한국 여성 여전히 OECD 최하위권

우리사회에 여성 혐오 현상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더 이상 여성들을 배려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남성들도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사회에 여성 혐오 현상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더 이상 여성들을 배려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남성들도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올해는 대한민국 사회에 된장녀가 등장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커피믹스 하나면 족할 것을, 된장인지 커피인지도 모르면서 꼴에!’로 번역할 수 있는 이 신조어는 한 끼 밥값에 육박하는 스타벅스 카페라테를 손에 쥐고 해외 럭셔리 브랜드로 치장한 젊은 여성들의 사치 풍조를 비판하는 다소 유머러스한 용어로 수용되며, 이듬해 야후 코리아가 조사한 인터넷 신조어 및 유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광범위한 파급력을 보여줬다.

● 된장녀에서 개보년까지… 여성혐오 약사

이후 10년간 여성혐오의 발전사는 현란하다. 개똥녀(2005), 강사녀(2006), 군삼녀(2007), 신상녀(2008), 루저녀(2009), 패륜녀, 지하철 막말녀(2010) 등 끝없는 ‘○○녀 시리즈’를 김치녀가 집대성한 것과 동시에 여성 성기 명칭을 핵심 어근으로 삼는 신조어들-보슬아치, 개보년 등-이 온라인, 특히 포털 사이트의 언론 기사 댓글에까지 창궐하기 시작했다. ‘댓글은 본래 저질이고, 저질 댓글을 공론장의 의견인 양 수용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라며 주류언론이 외면하고 있는 사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언사로 가시화한 여성혐오는 명백하고도 심각한 사회 문제로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성혐오는 더 이상 일부에 국한된 행태가 아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2014년 12월 발표한 ‘온라인 상의 여성혐오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보슬아치’ 등 여성혐오 표현은 정치적으로 극우인 일베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쉽게 접하는 정상적인 온라인 공간-네이버 댓글, 엠엘비파트, 오늘의유머, 네이트 판-은 물론 진보적인 인터넷 페이지에서도 광범위하게 관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미 이 표현이 특정 여성 집단을 일컫는 편견을 담은 단어로 일반화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인터넷의 발달과 궤를 같이 해온 여성혐오의 역사에서 2001년은 특히 중요한 해다. 여성부 출범과 군가산점제 위헌 판결이 각각 이 해 1월과 10월에 있었다. 여성혐오의 원조 아이콘 ‘꼴페미년’을 탄생시킨 이 국가적 사건들로 인해 안티-페미니즘 사이트, 안티-이대 사이트, 안티-여성부 사이트 등이 대거 구축되며 페미니즘이 공공연한 남성의 적으로 자리잡았다.

남성들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안티-페미니즘 모임들을 결집시켜 남성연대를 출범시킨 것이 2008년. 이듬해에는 드디어 일간베스트 사이트가 설립되며 여성혐오 현상이 사회 담론의 장에 전면적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프로그램 개발자인 이준행씨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일베 게시물을 분석한 결과 욕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이 여자(4,321건)였다. ‘노무현’(2,399건)보다 약 두 배나 높은 주목도다. 여자가 언급된 글들은 ‘보슬아치’ 같은 멸시와 적대의 단어로 점철돼 있다.

● 한 줌 알파걸이 불러온 착시

여성이 배려해야 할 사회적 약자에서 척결해야 할 남성의 적으로 전복된 시기는 알파걸 담론으로 대표되는 여성의 사회적 약진이 두드러졌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국가고시 합격자 비율을 시작으로 ‘여풍’이란 타이틀을 단 언론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던 게 외무고시 여성합격자가 40%대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았던 2001년이다. 이 비율은 최근에는 현저히 낮아졌지만, 2007년 67.7%, 2008년 65.7%까지 치솟으며 남성들을 위협했다. 서울초등교원임용시험에선 2005년 이후 여성합격자가 90%를 넘었고,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여성채용할당제가 같은 해 양성평등채용제로 전환되면서 여성 합격자 비율이 압도적이었던 공무원시험의 교육행정직과 일반행정직에서 남성이 혜택을 받는 상황이 펼쳐지기까지 했다. 2009년에는 대학진학률에서 여성이 남성을 추월했다. 여기에 2008년 불어 닥친 전 세계적 금융위기로 경제불황이 만성화하면서 일자리를 놓고 극한경쟁을 해야 하는 젊은 남성들에게 여성혐오는 강력한 소구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위협이 될 정도로 그 지위가 향상되고, 실제 삶의 내용에 큰 변화를 맞은 것일까? 세계경제포럼의 성 격차 지수(GGI)에 따르면, 한국은 2014년 142개국 중 117위로 태국(61), 방글라데시(68), 인도(114), 아랍에미레이트(115), 카타르(116)보다 성 격차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성별 임금격차는 독보적이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4년째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14년 전은 OECD가 남녀 임금격차 통계를 처음 산출한 해로, 2013년 기준으로 한국 남성이 100만원을 벌 때, 여성은 63만밖에 못 번다. 여성은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친 경제위기 당시 노동시장의 정리해고 충격을 집중적으로 받은 사회 위기의 완충지대로 기능했고, 최근의 경제위기에서도 여성 실직은 그 비율이 매우 높다. 국내 30대 공기업 신입사원 중 여성은 22.7%(2013년)이며, 30대 대기업의 여성 신규채용은 31.8%밖에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출산과 육아 부담으로 경력을 단절하는 여성들이 많아 기업들의 여성 고위직 비율은 11%로 국제노동기구(ILO) 회원국 중 최하위다.

● 지배적 놀이문화가 된 여성혐오

누구도 여성이 온전한 시민권을 누리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극렬한 여성혐오가 창궐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는 “경제가 안 돌아가다보니 남성들이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이로 인해 일부 남성들이 남녀평등은 이미 이뤄졌다고 생각하는데 군 가산점제 폐지 등으로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해 생긴 현상”이라고 봤다. ‘혐오의 시대’를 기획특집으로 마련한 ‘여/성이론’ 올 여름호에서 손희정 편집위원은 모든 노동력을 잉여화하는 신자유주의는 “지금까지 스스로 경제적 주체라고 생각해왔던 남성들에게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탈각의 순간을 선사”했다고 분석했다. “가진 것은 점점 더 없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통적 성역할을 강요 받는 시대에 남성들이 노출돼 있는 압박감의 무게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권일도 지난해 쓴 ‘…넷우익이라는 ‘보편증상’’이라는 글에서 “경제위기와 여권신장이 불러일으킨 위기의식의 해소 방안으로 젊은 남성들이 여성혐오를 채택했다”고 진단한다.

진보평론 2013년 가을호에 실린 윤보라(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의 ‘일베와 여성혐오’는 “일베는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불안과 공포의 임계치가 한계에 달했을 때 여성을 전면적으로 타자화하는 방식으로 이를 해소해 온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라며 “어휘의 과격함을 걷어내고 보면, 일베 내 여성혐오를 작동시키는 구조가 실은 우리 사회에 내재된 모종의 의미구조를 정확히 반영한다”고 지적한다. “여성은 사회적 불안이 만들어내는 분노를 쏟아부을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안전망”인 것이다.

여성혐오는 이제 하나의 문화다. 같은 학교 여학생을 대상으로 “가슴은 큰데 얼굴은 못생겼으니 비닐을 씌우고 하자” 등의 범죄적 발언을 한 국민대 단톡방 사건이나 “생리휴가를 쓰려면 당일 착용 생리대를 제출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던 일베 사용자가 KBS 기자로 채용돼 충격을 줬던 최근 사건들은 여성혐오가 일부 소수 남성의 문제라는 시각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오히려 10여 년 간 만연해있던 여성혐오의 문화, 특히 농담과 놀이의 컨텍스트 속에서 수행되던 이 혐오의 문화를 수시로 접하며 자라난 젊은 남성들이 사회 주류로 진입하며 불거져 나온 문제라고 봐야 한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