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준호 기자

등록 : 2015.03.13 17:19
수정 : 2015.03.14 08:03

"상사 눈치에…" 직장인 47% 아파도 참는다

등록 : 2015.03.13 17:19
수정 : 2015.03.14 08:03

연차 낮을수록 병가 얘기 못 해

치료 미루다가 질병 더 키우기도

"여전한 군대식 조직문화가 원인"

직장인이 아파도 참고 출근하는 이유

경영컨설팅업체에서 3년 동안 일했던 김모(28)씨는 지난해 일하던 중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뛰는 증세를 겪었다.

급하게 병원을 찾은 김씨에게 의사는 비타민D 수치가 정상인의 절반 수준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비타민D는 하루 15분만 햇볕을 보면 자연스레 합성되지만 김씨는 컨설턴트 업무 특성상 매일 15~18시간의 강도 높은 업무로 해를 볼 시간이 없었던 것. 김씨는 호흡 이상이 계속됐으나 회사에 눈치가 보여 결국 휴가 대신 점심시간을 30분 연장 받아 산책하기로 했다. 김씨는 13일 “조금씩 회복은 됐지만 쉼 없이 계속되는 일에 지쳐 길에서 기절한 적도 있다”며 “6개월짜리 프로젝트를 마치고서야 겨우 2주 휴가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결국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얼마 전 근무 환경이 좀 더 유연한 게임 업체로 옮겼다.

아파도 말 못하는 20~30대 직장인이 늘고 있다. 좁은 취업 문을 뚫었다는 기쁨도 잠시. 어렵게 들어 온 회사에 행여 좋지 않은 인상을 줄까 봐 몸에 이상이 생겨도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는 것이다. 실제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직장인 1,892명을 상대로 ‘아파도 참고 출근한 이유’를 물은 결과 ‘상사ㆍ동료의 눈치가 보여서’란 답변이 47.6%로 가장 많았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회사를 어렵게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갓 들어온 신입이나 낮은 연차일수록 병가 얘기를 꺼내기는 더욱 어렵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평판과 연결돼 개인을 규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직장인 중에는 탈모나 피부질환 등 본인에겐 심각한 문제지만 당장 입원 치료가 필요한 것이 아니어서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대기업에 다니는 입사 2년 차 장모(30)씨는 최근 탈모가 극심해졌다. 대학 시절에는 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어 꾸준한 치료가 가능했다. 그러나 입사 후에는 신입이라 빠질 수 없는 회식과 야근, 주말 근무 등으로 치료할 짬이 도저히 나지 않았다. 장씨는 “탈모가 통증을 동반하는 병이 아니라 상사들이 야근하는데 병원을 가겠다는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며 “어쩌다 토요일 진료 예약을 해도 일 때문에 못 간 적이 많아 지금은 아예 포기했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숨죽이면서 속앓이만 하다 작은 병도 큰 병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회계법인에 다니는 장모(27)씨는 최근 목 디스크로 3개월간 휴직했다. 점심을 포기하면서까지 치료에 전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충분한 휴식 없이 쏟아지는 업무를 하다 보니 나중에는 잠을 못 이룰 만큼 상태가 악화됐다. 장씨는 “휴직하면 괜히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처음에는 아예 퇴사하겠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3개월 휴직을 끝내고 회사로 돌아온 장씨는 언제 또 디스크가 도질지 몰라 마음이 편치 않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의 권위적인 조직문화가 ‘아픈 미생(未生)’을 유발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연차와 직급이 낮은 조직원이 애로사항을 건의하기조차 꺼리게 하는 분위기 탓에 고통을 말없이 감내한다는 얘기다. 전상길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위계를 중시하는 군대식 문화가 여전히 한국 기업의 조직 운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라며 “기업 구성원 전체의 인식을 바꾸거나 유연근무제가 정착되지 않는 한 아픈 미생은 계속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퇴근하는 중년 직장인들

퇴근하는 중년 직장인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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