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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베 독재의 클라이맥스 ‘구찌 그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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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베 독재의 클라이맥스 ‘구찌 그레이스’

입력
2017.11.16 18:4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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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무가베(왼쪽) 짐바브웨 대통령과 부인 그레이스가 6월 마론데라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로버트 무가베(왼쪽) 짐바브웨 대통령과 부인 그레이스가 6월 마론데라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38년 세계 최장수ㆍ최고령 독재자의 철권통치를 끝낸 건 다름 아닌 아내의 끝없는 탐욕과 권력욕이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15일(현지시간) “짐바브웨 쿠데타 위기의 중심에는 ‘구찌 그레이스’가 있다”고 단언했다. 전날 발생한 군부 쿠데타로 사실상 권좌에서 물러난 로버트 무가베(93) 짐바브웨 대통령의 부인 그레이스 무가베(52)가 군부를 정치로 불러 낸 결정적 한방이라는 진단이다. 구찌 그레이스는 명품 쇼핑 등 향락을 일삼은 그레이스를 빗댄 별칭이다.

실제 그레이스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를 ‘권력의 화신’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196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그레이스는 유년 시절 짐바브웨 중부 치부의 농촌마을에서 선교사 학교에 다니는 등 비교적 평탄한 성장 과정을 거쳤다. 그의 운명이 뒤바뀐 건 80년대 후반 무가베의 비서(타자원)로 발탁되면서다. 최고 권력자의 눈에 띈 그레이스는 41년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무가베와 은밀한 만남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 공군 장교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도 한 명 뒀고, 무가베 역시 엄연한 퍼스트레이디, 샐리 여사가 있었다. 무가베는 첫 번째 아내를 내치지 못했다. 가나 출신의 샐리는 독립전쟁 당시 정치범 석방을 위해 싸운 혁명 영웅이었다. ‘어머니’라 불릴 정도로 국민의 신망은 대단했다.

두 사람은 92년 샐리가 암으로 숨지자 4년 뒤 자칭 ‘세기의 혼인’으로 명명한 초호화 결혼식을 올렸다. 이미 불륜으로 자식 두 명까지 낳은 상태였다. 무가베는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을 결혼식에 초대하고, 호아킴 치사노 모잠비크 대통령에게 신랑 들러리를 서게 하는 등 정당성을 갖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비판 여론을 쉽게 잠재우지는 못했다. 싸늘한 시선을 느낀 그레이스는 대신 ‘치부(致富)’에 온 힘을 쏟았다. 그의 사치 행각을 보여주는 일화는 한 둘이 아니다. 영국 스카이뉴스는 “2002년 프랑스 파리 여행 도중 한 번에 7만5,000파운드(1억870만원)어치를 쇼핑한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남아공과 홍콩 등에 수백만달러짜리 호화 별장을 구입하는 등 해외 부동산 수집에도 열을 올렸다. ‘퍼스트 쇼퍼(First Shopper)’는 그레이스의 또 다른 별명이다.

거친 성격 탓에 물의도 여러 차례 빚었다. 2009년 홍콩에서 영국 사진작가를 주먹으로 때렸고 이후에도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 간간이 폭력 사건을 일으켜 외신을 장식했다. 급기야 올해 8월에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한 호텔에서 아들을 만난다는 이유로 20세 여성 모델을 폭행해 외교 문제로 비화하기도 했다. 자식들도 잘못 키워 그레이스의 두 아들은 불과 일주일 전 나이트클럽에서 6,600만원짜리 롤렉스 시계를 과시하는 동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가 뭇매를 맞았다. 짐바브웨 국민은 하루 평균 2,900원 가량의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 참전용사 단체 대표는 그레이스를 “결혼증명서로 힘을 얻은 ‘미친 여자’”라고까지 공격했다.

막장 이미지는 그레이스의 겉모습일 뿐이었다. 그는 정신건강이 악화한 무가베를 뒤에서 조종하며 권모술수와 정치공작에 능한 야심가였다. 남편의 그림자에 머물던 그레이스는 2014년 집권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 내에 파벌(G40)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발톱을 드러냈다. 무가베의 혁명 동지인 조이스 무주루 전 부통령에게 대통령 암살 혐의를 씌워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등 정적 숙청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그 해 한 집회 연설에서는 “내가 대통령이 되면 왜 안 되느냐. 나는 짐바브웨인이 아니냐”며 대권 야망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심지어 올해 2월엔 “무가베가 내년 대선 전 숨져도 입후보 자격을 줘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놨다. 미국 CNN방송은 “그레이스는 무가베가 없으면 정치적으로 단 하루도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최고 권력을 쥘 때까지 남편의 후광을 철저히 이용하려 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최후의 정적으로 삼았던 무가베의 40년 오른팔, 에머슨 음난가그와(75) 전 부통령을 6월 쿠데타 혐의로 해임한 뒤 군부가 끝내 등을 돌리면서 대권 가도는 실패로 막을 내렸다. 그레이스는 가택 연금 중인 남편과 달리 해외 도피설 등 정확한 행방이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로선 음난가그와와 쿠데타를 주도한 콘스탄틴 치웬가(61) 장군이 무가베의 빈 자리를 채울 유력한 차기 지도자로 거론되고 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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