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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티시 드림을 향해… 유로터널 화물열차에 뛰어오르는 칼레 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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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티시 드림을 향해… 유로터널 화물열차에 뛰어오르는 칼레 난민들

입력
2015.08.1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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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달간 10명 사망, 하룻밤 3, 4차례씩 기차로 점프

정글로 불리는 칼레 캠프, 비인도적 재앙의 상징으로 떠올라

지난 6일 해가 질 무렵 프랑스 칼레 근처 프레툰에서 난민들이 유로터널 터미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칼레=AFP 연합뉴스
지난 6일 해가 질 무렵 프랑스 칼레 근처 프레툰에서 난민들이 유로터널 터미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칼레=AFP 연합뉴스

프랑스 북부 칼레항의 유로터널 인근에서는 하루에도 수천번씩 목숨을 건 점프가 벌어진다. 영국행을 원하는 난민들이 밤마다 양국을 잇는 해저터널인 유로터널을 통과하는 화물 열차에 올라타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8, 29일 이틀 연속 난민 2,000여명이 유로터널 기습 진입을 시도하면서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 과정에서 난민 두명이 숨졌으며 수백명의 난민이 경찰에 의해 쫓겨나거나 체포됐다. 지난 6월부터 현재까지 난민 10명이 유로터널을 통과해 영국으로 향하려다 목숨을 잃었다.

프랑스에 자리잡은 ‘정글’

독일 슈피겔은 칼레항 난민들의 캠프와 유로터널을 통과하려는 이들의 밀입국 시도를 전하며 유로터널에서 죽음과 자유를 오가는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고 지난 13일 보도했다.

아부드라고 불리는 압두라만 쿠르드(24)는 올 7월 고향인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를 떠났다. 조용하고 다소 우울한 청년인 아부드는 시리아 내전 한 가운데서 군인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고향에서 떠났다. “그곳에서는 죽거나 살해당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아부드는 말했다. 그의 여행은 레바논을 거쳐 터키, 그리스를 지나 프랑스까지 이어졌다. 항공료로 3,500유로(약 460만원)를 쓴 후 칼레의 난민캠프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작은 배낭 외에는 가진 것이 없었다. 아부드에게는 영국 버밍햄 근처 더비에 살며 의류공장에 다니는 사촌이 있다. 칼레 외곽에 있는 난민 캠프 사람들 대부분처럼 그는 유로터널을 통해 영국에 갈 방법을 찾고 있다. 이들은 칼레의 난민 캠프를 ‘정글’이라고 불렀다.

‘정글’에는 약 3,000여명의 난민들이 살고 있다. 이곳에는 30여 개의 화장실과 12개의 샤워실, 몇몇 식수대와 소형 디젤 발전기로 전기가 제공된다. ‘정글’에는 자체 제작한 모스크와 돔 모양의 도서관, 에리트리아인들의 교회, 학교, 식당, 술집까지 있다. 매일 목숨을 건 밀입국 시도가 이뤄지는 혼돈 속에서도 ‘정글’에는 씻기, 기도하기, 차 마시기, 휴대전화 충전하기 등과 같은 매일의 일상이 이어진다. 저녁 6시부터 7시30분까지는 프랑스 정부가 이 캠프에 제공하는 유일한 지원인 무료 급식이 이뤄지는 시간이다.

아부드처럼 ‘정글’ 주민들에게는 영국에 거주하는 친척이나 친구들이 있어서, 영국에서는 얼마나 직업을 찾기 쉬운지, 얼마나 빨리 망명 신청이 받아들여지는지 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지난달 말의 대규모 유로터널 진입시도 이후 칼레항 보안이 한층 더 엄격해져, 밀입국 알선자들에게 줄 돈이 없는 캠프 거주민들은 영국으로 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유로터널을 통과하는 화물열차에 목숨을 걸고 뛰어오르는 길뿐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최근 유로터널 주변의 혼란상이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정글’은 서유럽 선진국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비인도적 재앙의 상징으로 떠오르게 됐고, 유럽 정부가 난민 처리에 얼마나 무능한지를 보여주는 현장으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칼레항에서는 수백명의 경찰과 보안 요원들이 낮밤을 가리지 않고 터널을 지키고 있고, 이달 초 프랑스 베르나르 카즈뇌브 내무장관과 영국 테레사 메이 내무장관은 칼레의 상황이 ‘최우선 순위’임을 선언했다. 영국 데이비드 카메론 총리는 해당지역 보안 강화를 위해 1,110만달러를 추가로 할당, 탐지견을 보내고 울타리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죽음과 자유의 교차로 유로터널

‘정글’주민들의 간절한 희망을 무력으로 막으려 하는 프랑스 영국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난민들은 매일 저녁 캠프에서 기차로 뛰어들 지점까지 약 12㎞를 걷는다. 이들의 경로는 산업구역과 현지 주민들의 거주지, 시청과 쇼핑거리를 통과한다. 칼레의 주민들은 캠프에 빵과 우유, 설탕, 목재 및 오래된 가구를 가져다 주고 난민들이 샤워시설을 이용하거나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게 배려하기도 한다. 극우 인종주의자들의 난민 반대 시위 이외에는 드러내 놓고 이들의 존재를 문제 삼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나 시청 관계자가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전쟁상태에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해가 지자 ‘정글’에서 10여명의 젊은이들이 캠프를 떠났다. 이 중에는 머하위라고 불리는 에리트리아에서 온 21세의 청년도 있었다. 영국에서 의학을 공부할 꿈과 열정이 넘치는 머하위는 지난 4개월간의 여행 동안 수천유로를 썼고 돈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스니커즈를 신고 재킷을 입은 그를 포함한 일행은 난민이라기 보다는 음악 페스티벌에 가는 젊은이들처럼 보였다. 그들이 시청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동안, 울타리 건너편에서는 유로터널을 방어하는 경찰 500여명이 배치돼 있다. 유로터널을 운영하는 회사의 보안요원 200여명도 터널 방어에 배치됐다. 유로터널 주변 지역은 프랑스 헌병대와 경찰, 국경 경찰에 속해 끊임없이 관할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유로터널을 통과하려는 난민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들 사이에서는 심각한 유혈 충돌이 벌어지곤 한다. 경찰들은 순찰을 돌 때 헬멧과 곤봉, 최루탄으로 무장한다. 경찰들은 진압을 위해 최루가스 사용도 허용된다.

지난해에는 칼레에서 영국행을 시도하던 난민 16명이 사망했으나 올 6월초부터 지금까지 약 2달간 벌써 10명이 사망했다. 에리트리아인인 호메드 무사(17)는 기차 철길 근처 호수에서 익사했으며 파키스탄에서 온 아차랏 모함마드(23)는 유로터널 안에서 사망했다. 세 명의 에리트리아인은 고속도로위에서 차에 치여 사망했으며 트럭위로 떨어진 임산부가 큰 부상을 입고 유산하기도 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관계자는 집계된 공식 사망자가 너무 적다고 밝혔다.

난민들은 목숨을 건 위험을 감수하면서 터널을 통과하려 한다. 지금까지 유로터널을 거쳐 영국행에 성공한 난민의 숫자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영국 경찰 지도부는 칼레의 난민 10명중 7명이 유로터널을 4개월 안에 통과해 영국으로 건너온다고 말했다.

난민 중 일부는 칼레항에서 도버항으로 향하는 페리를 통해 해협을 건너는 트럭에 몰래 타 영국행을 시도하기도 한다. 난민들을 돕는 단체들에 따르면 트럭의 정류장은 밀수업자들의 단단한 통제하에 있기 때문에 트럭에서 자리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한 명당 1,000유로 이상을 내야 한다. 경찰의 엑스레이 기계가 내부를 분명하게 볼 수 없기 때문에 냉장트럭에 타는 것은 훨씬 비싸다. 밀수업자에게 줄 돈이 없다면 화물 열차위로 점프를 시도해 그들의 운을 시험해 볼 수 밖에 없었다. 하룻밤 새 난민들은 3번, 4번씩 기차위로 뛰어내려 전체 난민들은 매일밤 2,200여번씩 기차 위로 점프를 시도했다.

다음날, 기차위로 올라타는데 실패한 머하위와 아부드는 다시 ‘정글’로 돌아왔다. 1,200유로를 낼 수 있는 아부드는 밀수업자를 찾아 페리로 해협을 건너는 방법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여유가 없는 머하위에게 남은 유일한 방법은 성공할 때까지 울타리에서 기차로 점프를 시도하는 것이다.

프랑스 칼레항 인근 ‘정글’이라고 불리는 난민캠프의 난민들. 칼레=AFP 연합뉴스
프랑스 칼레항 인근 ‘정글’이라고 불리는 난민캠프의 난민들. 칼레=AFP 연합뉴스

난민 유럽 최대 문제로 부상

유엔과 유럽 국경감시기구 프론텍스의 조사에 따르면 올 들어 지금까지 유럽으로 이주한 난민은 15만3,000명에 달한다. 이는 전년동기 6만1,500명을 두 배 이상 웃도는 규모다. 국가별로 이탈리아로 유입된 난민이 6만2,000명, 그리스는 6만3,000명으로 급증했다. 스페인과 몰타, 독일 스웨덴,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도 난민 인구 유입이 이어지고 있다. 난민의 국적은 다양하다.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 내분이 발생한 리비아, 이슬람국가(IS)와 대치 중인 이라크 등이 대표적인 난민 배출 국가다. 심각한 경제난을 경험 중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도 난민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이민자 문제는 현재 유럽연합(EU)의 명실상부한 가장 큰 두통거리다. EU의 집행기관인 유럽위원회가 지난달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EU 시민 10명 중 4명이 이민이 EU의 가장 큰 문젯거리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이민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EU는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파이낸셜타임즈는 칼럼을 통해 칼레의 위기는 경찰력을 더 동원하거나 울타리를 더 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단일 국가 차원이 아닌 EU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해결 방법으로 칼레의 ‘정글’에 도착한 난민을 등록하고 행적을 조사해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주를 원하는 불법 이민자들은 고향으로 되돌려 보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야 시리아처럼 분쟁지역에서 온 망명 신청자에게 유로터널을 목숨 걸고 통과하려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원하는 곳에 정착할 수 있는 합법적인 경로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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