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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강사 CCTV 감시해도…막을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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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강사 CCTV 감시해도…막을 법이 없다

입력
2018.03.27 16:5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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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감시ㆍ징계 근거 수집용 등

노동자 감시 사례 잇따라 발생

#피해자 정신적 고통 호소에도

행안ㆍ고용부 “규제할 법규 없어”

서울의 모 수영장 내 CC(폐쇄회로)TV에 촬영된 수영강사들의 모습. 직장갑질 119 제공.
서울의 모 수영장 내 CC(폐쇄회로)TV에 촬영된 수영강사들의 모습. 직장갑질 119 제공.

서울의 모 수영장에서 강사로 일하는 이모씨는 지난해 11월 평소 어린이용 풀장을 비추던 CC(폐쇄회로)TV가 3일 내내 반대쪽인 강사실을 비추는 것 같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이씨가 임금체불 문제로 진정을 제기한 후였다. 강사실은 7명이 번갈아 가며 휴게실 및 업무용으로 쓰는 공간이었다. 앞서 다른 강사로부터 ‘회사가 가끔 CCTV로 감시한다’는 말을 들었던 이씨는 얼마 후 관리사무소를 지나다 CCTV 모니터 화면을 보고 경악했다. 이씨는 “나를 비롯해 여자 강사들까지 수영복 차림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며 “본인이 찍힌 걸 보고 수치심과 극도의 스트레스로 불면증이 생겨 정신과 치료까지 받은 강사도 있다”고 말했다.

사업주가 직장 내 설치한 CCTV로 노동자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정부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법률적 미비 등을 이유로 손을 놓고 있어 인권침해 및 부당노동 행위를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시민노동단체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직장 CCTV 피해 사례로 총 37건의 제보가 접수됐다. 제보자들은 사업주가 CCTV를 일상적 감시(23건), 징계 근거 수집(10건)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직장 내 CCTV로 인한 인권침해 및 부당노동행위로 의심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지만 보상이나 구제받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한 이벤트 대행업체 매장에서 일하는 장모씨는 동료와 대화를 하거나 휴대폰을 볼 때마다 CCTV를 통해 확인하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관리자의 집요한 감시에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장씨는 국가인권위원회, 고용노동부, 개인정보침해센터 등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우리는 사내 CCTV에 대한 권한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서 들어야 했다.

#직장 내 영상장치 규정 개정안

작년에 발의됐지만 진척 없어

일각에서는 사업주가 노동자 동의 없이 CCTV를 설치하거나 안전 및 시설물 관리 등의 목적 이외에 사용할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상의 개인정보란 이름ㆍ주민번호 등 개인 식별과 관련된 정보인데 이미 직원의 신원이 특정된 직장 CCTV의 경우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CCTV 설치 장소에 대한 규정 역시 공개 또는 공중의 장소에 대한 규정이라 비공개 장소인 사업장을 적용할 순 없다”고 말했다.

고용부 역시 대안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유일하게 관련 규정이 있는 근로자참여법은 ‘사업장 내 근로자 감시 설비의 설치’를 노사협의회 협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대부분의 편의점이나 영세사업장 등 3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는 노사협의회 설치 의무조차도 없다. 고용부 관계자는 “CCTV로 인한 피해가 노사협의를 위반한 것인지 여부만 확인할 수 있을 뿐 다른 도움을 줄 수가 없다”라며 “개인정보보호법을 확대하거나 다른 법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 등이 지난해 직장 내 영상정보장치 관리 규정을 신설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논의에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박점규 직장갑질 119 스태프는 “CCTV 감시로 직장인들이 스트레스와 불면증에 시달리고 회사가 빅브러더가 되는 동안 정부 부처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며 “직장인의 삶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고용부가 적극 나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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