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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그 어려움

입력
2016.08.0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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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야근 없이 퇴근하는 날이다. 6시 30분이 되면 회사에서 나선다. 집과 회사가 가까운 편이다. 그래도 넉넉잡아 30분쯤 걸린다. 오다가 반찬거리라도 사서 들어오면 7시가 좀 넘어 도착한다. 집에 와서 간단히 씻고 휘리릭 간단한 음식이라도 하면 최소 7시 30분에서 8시다. 그런데 8시까지 아이들이 저녁을 안 먹고 기다리게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내가 퇴근하기 전에 저녁을 먹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지금까지 친정엄마 또는 도우미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해결해 오고 있는데, 궁금하다. 다른 가족들을 저녁을 같이 먹고 있을까.

우선은 퇴근 시간이 문제다. 일주일에 5일은 야근하는 우리 남편 같은 직장인은 제외하고, 정시 퇴근을 해도 보통은 오후 6시다. 오후 6시라는 시간이 싱글 직장인일 때는 몰랐는데, 가족이 저녁에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는 상당히 늦은 시간이다. 6시에 땡 하고 부랴부랴 서둘러 나서도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결코 빠르지 않다. 차라리 미국처럼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직장문화가 가족들이 함께하기에는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OECD 평균의 2배쯤 된다는 출퇴근 시간도 만만치 않다. 경제활동의 수도권 집중이 심하고, 높아가는 주거비 부담 때문에 회사 근처에서 밀려나는 직장인들이 많아지면서, 우리나라 통근 시간은 어느 나라보다도 긴 편이다. 통계청 2014년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20세 이상 취업자의 평균 출퇴근시간은 1시간 23분이고 이 중 서울 지역이 1시간 32분으로 가장 길다. 퇴근시간이 40분 정도는 소요된다는 얘기니까, 정시에 퇴근해도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7시에 가까워진다.

조리법이 복잡한 한식도 한 몫 한다. 미국에서 잠시 살 때 보니, 냉동식품도 발달해 있고, 메뉴도 단출한 편이라 식사준비가 간단하고, 맞벌이들이 많은 싱가포르나 대만 같은 나라는 저녁은 거의 사서 먹는다고 하던데, 우리나라는 저녁상 한번 차리려면 그 정성과 시간이 어마어마하다. 밥, 국, 반찬 몇 가지라도 상에 올리려면, 재료준비부터 요리하는 시간이 최소 30분 이상이다. 몇 번 경험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서 아주 간단한 조리법이나 한 그릇 요리로 저녁을 준비하기는 하지만, 맞벌이가 점점 많아지고 바쁜 현대 사회에서 한식도 간소화가 시급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맞벌이 부부가 아주 운이 좋게 둘 다 정시 퇴근을 해서, 부랴부랴 집에 온다고 한들,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녁을 먹는 것은 언감생심이라는 얘기다. 이 정도는 그나마 여유 있는 고민이고, 주변의 맞벌이들은 대부분 저녁까지 회사 또는 회사 인근에서 해결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면, 역시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 돌봄교실 등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집에 온 아이들과 짧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긴 하다. 저녁이 있는 삶. 말하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난관에 봉착한다. 주변의 친구들에게 하소연해 봤다. “야, 난 4시에 퇴근해. 그래도 별로 여유롭지 않거든.” 외국에서 다국적기업에 다니는 한 친구 얘기다. 우리 입장에서는 꿈같은 소리지만 말이다.

문득 생각해본다.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도 이렇게 어려운 나라에서 뭘 그렇게 가족을 중시하고 아이를 안 낳는다고 걱정하고 야단일까. 말 그대로 낳아봤자 키울 수도 없는 사회 아닌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인데 노동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여서 나누고, 상황에 맞게 출퇴근 시간도 조정하고, 젊은 부부들이 거주하기 좋은 공공임대주택도 교통의 요지에 들어서고, 적어도 일과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균형이 맞는 사회가 우선이 아닌지. 그런 사회가 되면, 아이를 낳아서 행복하게 키우고 싶은 사람들은 알아서 잘할 것이다. 지나치게 낮은 출산율을 걱정하기보다,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회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야 하지 않을까.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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