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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춤 출 수 없는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입력
2016.07.1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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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어느 날, 오후 9시쯤의 일이다. 하늘색 뽀로로 가방을 멘 늠름한 풍채의 어린이를 보았다. “어디 가니”하고 묻자 그는 “학원 가요”라고 답했다. 뽀로로 노래는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로 시작하지만 어린이는 놀 수도 없고 친구도 없다. 뽀로로의 정신, 즉 국민교육헌장에 나오는 창의와 협력의 정신은 학원 가방이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린이가 아닌 어른들의 사정은 어떨까. 올해부터는 춤추는 행위가 단속의 대상이 됐다. 개정된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별표17에 따르면, 일반음식점 영업자는 음향시설을 갖추고 손님이 춤을 추는 것을 허용해서는 아니 된다. 나이트클럽 등이 일반음식점으로 영업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그런데 이 개정안으로 애꿎은 소규모 공연장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소규모 공연장 대부분이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되어있기 때문이다.

선량한 문화공간인 공연장이 일반음식점이 된 데는 기구한 사연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대중음악 때문에 선량한 시민들이 탈선하여 무시무시한 불량배가 될까봐 두려워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모든 대중음악을 검열했다. 통상적인 무대에 설 수 없었던 비주류 음악가들은 음식점으로 분류되는 카페나 바에서 공연을 해야 했다. 그렇게 몇십년이 지나자 ‘공연하는 음식점’들은 오히려 국악한마당이나 열린음악회가 소개하지 않는 새로운 음악의 산실이 됐다. 언더그라운드, 또는 인디음악의 탄생이다.

그러나 이런 공연장들은 민주화 이후에도 한동안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옛날엔 가수와 연주자를 유흥접객원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유흥접객원 2인 이상이 공연하는 곳이라면 모두 룸살롱과 같은 유흥업소로 취급되었다. 1999년에 이르러서야 문화예술인들의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가 창조되었지만, 이는 절반의 허용이었을 따름이다. 당시 정부는 소규모 공연장을 전면 인정하는 대신 음악가와 무용가를 유흥접객원에서 제외하는 데 그쳤다. 그래서 소규모 공연장은 일반음식점이 된 것이다. 더는 유흥업소가 아니어도 된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이제 음악가는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된 공연장에서 공연할 수 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음향시설을 사용할 수 없다. 관객들은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된 공연장에서 공연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춤을 출 수 없다. 이 해괴한 모순을 해결하려면 소규모 공연장을 음식점이 아닌 문화시설로 인정하는 신규 법안을 만들면 된다. 그러나 줄기찬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면 합법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요즘도 인디음악 때문에 선량한 시민들이 탈선하여 무시무시한 불량배가 될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인디음악계가 맞은 직격탄은 또 있다. 인디음악가들은 동료 음악가나 팬들과 함께 크루라고 하는 느슨한 협업단체를 꾸리곤 한다. 혼자서 공연기획과 홍보 등을 도맡기란 버거우므로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다. 그런데 재작년부터는 이것도 불법이 됐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 따라 대중문화예술기획업자로 등록되지 않은 사람이 이런 역할을 맡았다간 처벌을 받게 된다. 이는 양심이 털북숭이인 기획자가 연예인 지망생을 거짓으로 꾀어 한류 산업을 도탄에 빠트리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하나 기획자 역할도 겸하는 선량한 인디음악가들이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는 것마저 가로막고 있다.

지난주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의 새 국가브랜드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를 발표했다. 창의, 열정, 화합의 3가지가 한국다움을 나타내는 핵심가치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표절 의혹이 제기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로고에는 관심이 없다.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를 말하기에 앞서 중요한 게 빠졌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바로 크리에이티브 자체다. 음악가는 공연에 제약을 겪고 관객은 춤을 출 수 없다. 겨레의 가슴에 흘러넘쳐야 할 뽀로로의 정신은 어디로 갔을까.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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