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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영자, 부모님 이름 걸고 만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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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영자, 부모님 이름 걸고 만든 영화"

입력
2014.12.0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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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위한 삶에 바치는 작품...격동의 한국 정치사는 언급 안해..교포 상봉 장면 100명 오디션"

윤제균 감독
윤제균 감독

17일 개봉하는 영화 ‘국제시장’은 연출자인 윤제균 감독과 닮았다.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다. 세련된 도시 깍쟁이보다 인심 좋은 시골 아저씨에 가깝다. 영화는 한국전쟁 때 함경도 흥남에서 부산으로 피란온 덕수(황정민)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살아온 헌신적인 삶의 여정을 그린다. 1일 만난 윤 감독은 “나 자신이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고 그리움도 많은 서민 감성으로 평생 살아와서인지 변하려고 해도 세련된 영화가 잘 나오지 않는다”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국제시장’은 윤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든 영화다. 그 시작은 대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떠나 보낸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도 영화 속 덕수처럼 평생 가족을 위해 사신 분인데 임종을 지키면서도 고맙다는 말 한번 못한 게 한이 됐습니다. 2001년 ‘두사부일체’를 찍으며 언젠가는 아버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 생각했고 2004년 아빠가 됐을 때 본격적으로 이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아빠가 돼 보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구체적으론 ‘해운대’ 끝나고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2009년 ‘해운대’로 1,145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 감독의 명성을 되찾았지만 제작자와 감독이란 직책을 병행하는 건 쉽지 않았다. ‘7광구’(2011ㆍ김지훈 감독)는 흥행에서 크게 실패했고 ‘스파이’(2012)는 당초 연출을 맡았던 이명세 감독과 갈등 끝에 감독 교체라는 극약처방으로 홍역을 치렀다. 차기작으로 계획했던 할리우드 합작영화 ‘템플스테이’는 여러 이유로 제작이 연기됐다. “‘국제시장’ 찍으며 초심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그는 “감독할 때 부담감이 제작자일 때보다 4, 5배는 더 큰 것 같다”고 했다. ‘낭만자객’(2003)의 흥행 실패가 남긴 트라우마를 그는 여전히 두려워하는 듯했다.

‘국제시장’에서 윤 감독은 자신의 부모 이름을 덕수 부부의 이름으로 썼다. 그는 “부모님 이름 걸고 하는 작품이어서 여태까지 연출했던 작품과 마음가짐이 달랐다”고 했다. 이북 출신인 덕수의 인생에는 윤 감독의 오랜 친구이자 제작사 JK필름을 함께 이끌고 있는 길영민 대표의 사연도 녹아 있다. 윤 감독은 “실제로 아버지는 경상도 출신이어서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따온 건 아니고 쓸데없이 버럭 소리치고 별일 아닌 것에 잔소리하는 캐릭터만 가져왔다”고 했다.

영화는 공교롭게도 한국을 비롯해 독일, 베트남 등 분단의 아픔을 겪은 나라의 역사를 스치지만 깊게 관여하진 않는다. 격동하는 한국 정치사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독일과 베트남 에피소드는 가난했던 시절 돈 벌기 위해 열심히 살았던 대표적인 걸 찾다 보니 쓰게 된 겁니다. 국내의 정치적인 부분은 넣어도 욕 먹고 빼도 욕 먹을 거란 걸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역사적 관점이나 사회적 관점으로 보면 모자람이 많을 것이고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버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개인적인 의도로 만든 영화에 정치가 개입하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윤 감독이 영화에서 가장 힘을 준 부분은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이산가족 상봉 장면이다. 카메라만 7대를 써서 이원 생중계 방송의 사실감을 살리려 했다. “평생에 한을 갖고 있던 덕수가 혈육을 찾는 장면이니까 한 번에 촬영을 마쳐야 했습니다. 그래서 황정민의 상대 배우도 조감독이 미국을 두 번이나 오가면서 오디션만 100명 이상 봤을 만큼 어렵게 뽑았습니다.”

영화에서 덕수의 아내(김윤진)는 “당신 인생에 왜 당신은 없냐”고 묻는다. 윤 감독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대사다. 자신의 꿈을 희생하고 오직 자식만을 위해 산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담겼다. 그래서 ‘국제시장’의 영어 제목도 ‘내 아버지를 위한 송가(頌歌)’(Ode to My Father)다. “단지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닙니다. 부모 역시도 결국 누군가의 자식이구나,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어머니께서 영화를 보고 많이 우셨어요.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신다면서요. 제게 고맙다, 고생했다, 하시더군요. 영화를 만든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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