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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신화’ 박종환 “FIFA회장 아벨란제 괄시는 지금도 못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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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신화’ 박종환 “FIFA회장 아벨란제 괄시는 지금도 못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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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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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세계 청소년축구 4강 신화의 주역 박종환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본보와 신년 인터뷰에서 34년 전 청소년 대회 당시 일화를 말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bwh3140@hankookilbo.com
1983년 세계 청소년축구 4강 신화의 주역 박종환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본보와 신년 인터뷰에서 34년 전 청소년 대회 당시 일화를 말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올 5월 한국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이 열린다. 올드 팬들이 ‘세계청소년축구’로 기억하는 그 대회다. 축구 팬이 아니어도 ‘청소년축구’ 하면 으레 1983년 멕시코 대회 4강 신화를 떠올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이름, 당시 대표팀을 지휘했던 박종환(80) 감독이다. 세밑 한파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박 감독을 만났다.

나이 여든에도 드라이버 거리 240m 거뜬

약속 시간보다 15분 빨리 도착했는데 박 감독은 벌써 와 있었다. 귀가 얼얼할 정도로 한파가 몰아치는데도 그리 두껍지 않은 재킷 차림이었다. 그는 기자를 가리키며 “그런 방한 점퍼는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1937년생(프로필은 1938년생이지만 실제로는 한 살 더 많다는 게 박 감독 설명), 여든의 나이에도 몸매는 탄탄했고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박 감독에게 늘 따라붙는 말 두 가지가 바로 ‘4강 신화’ 와 ‘건강’이다.

“70대 원로들 축구 모임에서 1주일에 두 번 축구를 해. 25분 네 게임을 다 뛰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비결? 밤 9시30분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일어나자마자 차가운 냉수 두 컵 마시고 아침은 안 먹어. 점심도 딱 반 그릇만. 저녁에는 사람들이 날 놔 주질 않아. 술 마시자고. 30일이면 25일은 마시지. 주로 소폭(소주와 맥주 폭탄주)으로. 허허.”

골프도 한창 때는 드라이버로 300m 가까이 날렸는데 요즘도 240m는 거뜬하다고 한다. 박 감독은 “내가 늙었다는 걸 못 느낀다. 나이를 계산하면 나도 가끔 놀란다”며 “정신이 육체를 압도하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했다.

10년 동안 신문에 4강 신화 기사 실려

자연스럽게 4강 신화로 화제가 옮겨졌다.

한국은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 조별리그 1차전에서 스코틀랜드에 0-2로 졌다. 하지만 2ㆍ3차전에서 홈팀 멕시코와 호주를 2-1로 꺾은 뒤 8강에서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를 역시 2-1로 제압했다. 준결승에서는 강호 브라질에 선제골을 넣고도 아쉽게 1-2로 패했다.

4강의 후광은 대단했다. 박 감독은 “집에 신문을 스크랩해놓은 책이 열 두 권 있는데 쭉 훑어보니 1983년 이후 10년 동안 스포츠 3개 신문에 크든 작든 하루도 안 빠지고 내 기사가 실렸더라”고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4강 신화를 달성하기까지 우여곡절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다.

“브라질과 4강을 하기 전 아벨란제(브라질 국적으로 당시 FIFA 회장)가 격려를 하러 그라운드에 내려왔었어. 아니 근데 브라질 선수, 심판하고만 악수를 하고 우리는 쳐다보지도 않고 들어가는 거야. 우리를 얼마나 괄시했으면 그런 행동을 해. 회장이란 사람이.”

한국이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대회 조별리그 2차전에서 홈팀 멕시코와 경기하는 모습. 멕시코는 경기 전날 갑자기 경기 장소를 바꾸는 등 횡포를 부렸지만 한국이 2-1로 승리하며 4강 신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이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대회 조별리그 2차전에서 홈팀 멕시코와 경기하는 모습. 멕시코는 경기 전날 갑자기 경기 장소를 바꾸는 등 횡포를 부렸지만 한국이 2-1로 승리하며 4강 신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홈팀 멕시코와 조별리그 2차전 때도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한국은 조별리그 3경기를 해발 3,700m 고지대 톨루카에서 치르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홈팀 멕시코와 경기 전날, 버스로 한 시간 반 거리인 멕시코시티 아즈테카 스타디움으로 갑자기 장소가 변경됐다. 킥 오프 시간도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현지시간 낮 12시로 잡혔다. 살인적인 더위와 아즈테카 스타디움의 10만 관중을 방패 삼아 한국을 이기겠다는 심산이었다. 박 감독이 강하게 항의했지만 소용 없었다. 경기 당일 스타디움은 통로까지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2~3m 앞에 있는 사람과 대화도 불가능할 정도 였다는 게 박감독의 설명이다.

하지만 멕시코엔 자승자박, 박종환호엔 전화위복이었다. 당시 박 감독은 훈련 때 선수들을 사정없이 몰아쳐 ‘독사’로 불렸는데 체력 강화의 일환으로 ‘마스크 훈련’도 시켰다. 고지대 적응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10분만 뛰어도 헉헉대던 선수들은 날이 갈수록 체력이 좋아졌고 45분은 거뜬히 소화할 정도가 됐다.

“멕시코시티는 톨루카보다는 저지대(2,200m)란 말이야. 3,000m 넘는 고지대에 완벽히 적응된 우리 선수들이 낮은 곳으로 내려오니까 펄펄 날아다녔지. 후반이 되니까 오히려 멕시코 아이들이 뛰지를 못하더군. 끝나고 기자회견을 하는데 멕시코 기자 70~80여 명이 멕시코 감독을 앉혀놓고 고문에 가깝게 질문을 하더라고. 여기까지(경기장소 변경) 한국을 부르는 꼼수를 쓰고도 왜 졌느냐는 거지.”

4강 도전 기회, 우리 스스로 날릴 뻔

세계 4강은 어쩌면 도전의 기회조차 없을 뻔했다. 한국은 1982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청소년대회 예선에서 3위에 그치는 바람에 본선 티켓을 못 땄다. 하지만 2위 북한이 그 해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난동을 부려 국제대회 출전 정지 징계를 받는 바람에 한국이 대신 나갔고, AFC 본선에서 우승해 멕시코행 티켓을 땄다. 놀랍게도 대한축구협회는 이 행운을 거부하려고 했다.

“고인이 되신 분 이야기를 해서 좀 그런데 오완건 축구협회 부회장이 AFC본선 티켓을 반납하라는 거야. 나가봤자 망신이라는 거지. 말이 돼? 허락 안 해주면 언론에 폭로하겠다고 했더니 그제야 보내주더군. 그 때 내가 말을 들었으면 4강은 무슨…. 어휴.”

멕시코 청소년 대회를 앞두고 인터뷰하는 박종환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
멕시코 청소년 대회를 앞두고 인터뷰하는 박종환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

우여곡절 끝에 나갔지만 대표팀을 향한 지원은 지금과 비교가 안될 만큼 열악했다. 박 감독과 코치 1명뿐 스태프도 없었다. 훈련을 전후로 박 감독이 직접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했다.

“선수들 각자가 쌀 반말씩 가져갔고, 내가 일본에서 압력밥솥을 구해서 챙겼지. 고추장도 가지고 갔고. 멕시코는 우족(牛足) 아주 싸거든. 그걸 대량으로 사다가 푹 고와 먹였지. 김치찌개, 생선찌개도 숱하게 했고.”

어린 시절부터 자취를 오래 한 박 감독의 요리 실력은 정평이 나 있다.

“내가 맨날 주방에 붙어있으니까 호텔 주방장들이 날 대표팀 조리사로 안 거야. 그런데 멕시코를 꺾고, 내 얼굴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오지 않았겠어? 주방장들이 신문을 보면서 ‘이 사람이 당신 맞느냐’고 묻더군. 그렇다고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필요한 재료며 주방 용품 뭐든 맘대로 쓰라고 내주더군. 하하.”

“20세 이하 월드컵 사령탑 신태용은 영리해”

34년이 지난 뒤 한국에서 벌어질 U-20 월드컵을 보는 박 감독의 감회는 남다르다. 그는 “우리 때는 심판 판정부터 말도 못하게 서러운 일을 많이 겪었다. 지금은 세계에서 한국 축구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나. 4강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고 덕담했다.

제자인 신태용 감독이 올해 U-20 월드컵에서 선전할 거라 확신한다는 박종환 감독. 배우한기자bwh3140@hankookilbo.com
제자인 신태용 감독이 올해 U-20 월드컵에서 선전할 거라 확신한다는 박종환 감독. 배우한기자bwh3140@hankookilbo.com

U-20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는 신태용(47) 감독은 박 감독이 성남일화(성남FC 전신) 지휘봉을 잡고 있을 때 제자다. 성남 일화가 1993년부터 1995년까지 한국 프로축구 사상 첫 3연패를 달성할 때 사제로 호흡을 맞췄다. ‘호랑이’ 박 감독도 신 감독만큼은 한 번도 혼낸 적이 없다고 한다.

“태용이? 혼낼 일이 없었지. 얼마나 축구를 영리하게 했는데. 눈치도 아주 빨라요.(웃음) U-20팀을 맡게 됐다고 전화가 왔더군. 만나서 이런 저런 조언을 해 줄 생각이야. 태용이가 감독 하는 모습을 지금까지 쭉 봤는데 아주 잘 할 거야. 기대가 돼.”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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