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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여러분, 다 아는 가르침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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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여러분, 다 아는 가르침은 이제 그만

입력
2015.05.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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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ㆍ김명남 옮김 창비 발행ㆍ240쪽ㆍ1만4,000원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ㆍ김명남 옮김 창비 발행ㆍ240쪽ㆍ1만4,000원

리베카 솔닛은 더없이 매력적인 저자다. 똑똑하고 예리하며 해박한데다 재치 넘치고 따스하다. 예술평론과 문화비평, 생태평론을 넘나드는 광범위한 분야의 저술가이자 역사가이며, 무엇보다도 탁월하고 매력 넘치는 페미니스트다. 남성 독자들도 기꺼이 넘어오게 만들 만큼.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맨스플레인(Man+Explain)이라는 개념을 널리 유통시킨 동명의 에세이를 포함, 최근 쓴 페미니즘 관련 산문 9편을 묶은 책이다. 유사한 듯 다채로운 주제들을 다루지만 일상의 사소한 폭력이 세계의 거대한 구조적 폭력을 보여주는 사례임을 증명하는 방식은 동일하다. 일상적인 소재를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주제로 매끄럽게 펼쳐내는 화려한 입담에 매료되어 읽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이다.

다양한 주제 중 가장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강간이다. 이는 여성에 대한 권리가 남성에게 있다는 의식의 극단적 표출형태다. 미국은 “6.2분마다 경찰에 신고되는 강간 사건이 벌어지고,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살면서 강간을 당하는 나라”로, 남자들의 배우자 살해는 매년 1,000건이 넘어 3년이면 그 희생자 수가 9ㆍ11 테러사건의 사망자수를 넘는다. 그러나 이 사건들은 그 핵심에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이상자들에 의한 예외적 사건으로만 처리되고 인식된다. 솔닛은 이 점들을 모아 하나의 패턴, 즉 점묘화를 그려내려고 시도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언어, 즉 명명의 힘이다. 강간은 고립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범화하고 용인하는 문화의 소산이므로 ‘강간문화’라는 맥락적 호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남자가 강간범은 아니지만 모든 여성은 평생 강간을 두려워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강간은 여성 인구 전체가 남성 인구 전체에게 종속된 위치에 머물도록 만드는 강력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성적 권리의식 또한 마찬가지의 힘을 지닌 표현이다. 성적으로 좌절한 남성의 무차별적 범죄는 “여자들에게는 자신을 만족시킬 의무가 있고, 자신에게 그것을 누릴 성적 권리가 있다는 의식” 때문에 발생한다. 여자는 거부할 권리도, 떠날 권리도 없다는 생각을 비판하는 데 성적 권리의식은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가정폭력, 성희롱, 부부강간 등의 뒤를 잇는 이 같은 강력한 언어도구들 덕분에 세상은 이만큼이나마 재정의되고 변화할 수 있었다.

페미니즘은 차별 받고 배제되는 이들을 해방시키려는 노력이어서 곧잘 성 소수자 운동과 연대한다. 솔닛은 성역할의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 동성결혼의 아름다움을 거론하며,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가부장적 기본 설정, 즉 전통적 성 역할의 보존을 위해서라고 분석한다.

세상이 변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특히 여성들-이 낙담하지만, 솔닛은 단호히 희망을 얘기한다. 승리하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여자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호리병 밖의 지니처럼 사상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는 것, 그게 바로 혁명의 힘이다. “그녀가 얼마나 더 가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되돌아오진 않으리란 것은 안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 걷지 않는다. 수많은 남자, 여자들, 그보다 더 흥미로운 다양한 젠더의 사람들이 함께할지 모른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잘 모를 것 같은 여성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싶은 남성의 욕구가 착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다정하고 상냥한 '오빠가 가르쳐줄게'의 태도가 실은 성차별 의식의 소산임을 깨달을 때, 남녀 모두 행복한 양성평등이 가능하다. 게티이미지 뱅크
잘 모를 것 같은 여성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싶은 남성의 욕구가 착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다정하고 상냥한 '오빠가 가르쳐줄게'의 태도가 실은 성차별 의식의 소산임을 깨달을 때, 남녀 모두 행복한 양성평등이 가능하다. 게티이미지 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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