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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김장 담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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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김장 담그기

입력
2015.12.1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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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워지면 시장이 시끌벅적해진다. 다들 배추와 무 젓갈 등을 사러 다니기 바쁘다. 겨우내 먹을 김치를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나는 한국에 오기 전에 김치를 먹어 본 적이 없었다. 한국 사람들이 각종 반찬을 놓고 국과 찌개를 해서 밥 먹는데 거기 빠짐없이 김치가 끼니마다 있어서 ‘아, 여기는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계절이 있는 한국에서는 철마다 먹는 김치가 다르고 날이 추워지면 겨울 내내 먹을 김치를 많이 만들어 오래 보관하면서 먹고 그것을 김장이라고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몽골도 사계절이 있고 철마다 먹는 음식이 있다. 겨우내 먹을 고기를 보관하기 위해서 추워지면 양, 소, 말 등을 한 번에 잡는 시기가 있다. 한국에서 김장할 때와 같은 분위기를 거기서도 느낄 수 있다. 사계절이 있는 다른 나라 어디에나 이와 같은 풍습이 있을 것이다. 다만 환경과 지리에 따라 먹는 음식과 만든 방법이 다를 뿐이다. 김장은 한국 사람들에게 단순히 먹는 음식이 아니고 다 모여서 즐겁게 만들고 서로 나누어 먹는 정다운 문화이기도 하다.

지난달 23일 국립민속박물관서 열린 '외국인과 함께하는 김치 만들기' 행사.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국립민속박물관서 열린 '외국인과 함께하는 김치 만들기' 행사. 연합뉴스

내가 처음 김장을 해본 것은 옆집에서 김장한다고 초대를 받아 갔을 때다. 그렇게 많은 배추와 무, 각종 야채를 보고 놀라기도 하고 약간 겁나기도 했다. 온 가족이 다 모여 무와 야채를 썰고, 양념을 만들어 배추에 바르고, 항아리에 담아 마당에 내 놓는 등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라 그냥 마늘, 양파 까기 등 시키는 것을 부지런히 했다.

그때 옆집 아주머니가 절인 배춧잎에 양념을 얹어서 먹어보라며 내 입에 쏙 넣어주는 것이 아닌가. 아~ 그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짭짤하면서 시원하고 뭐라 설명 할 수 없는 향이 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컹물컹한 것이 입안에 돌아다녔다. 순간 움찔했으나 성의를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이 삼켰다. 그 물컹한 것이 생굴이라는 것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바다가 없는 몽골에서 양배추 절임, 오이피클 등을 먹었던 나에게는 새로워도 너무나 새로운 맛이었다.

그렇게 처음 생굴 넣은 김장 김치 맛을 보고 놀랐던 내가 이제는 나름대로 김장도 담그고 계절에 맞추어 맛과 멋을 낸 다양한 김치를 밥상에 올린다. 옆집, 앞집에도 나누어 주고 얻어먹기도 한다. 가끔 몽골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보내준다. 남편이 몽골의 처가에 처음 갔을 때 직접 김치를 담가 처가 식구들 대접한다고 몽골 현지에서 재료를 구해 김치를 만든 적이 있었다. 먹어 본 반응은 식구들마다 달랐다. 생선 비린내가 난다고 한 사람이 있고, 아삭아삭 배추 맛이 좋다고 한 사람도 있고, 말없이 많이 먹고 다음 날 아침 화장실에서 항문이 따가웠다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 야채 가게 하던 오빠는 김치 만드는 과정을 다 지켜보며 메모를 했다. 그리고 나중에 김치를 담가 야채 가게 상품으로 내놓았는데 수입이 괜찮았던 모양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몽골에 있는 우리 식구도 김치를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되었다. 이제는 몽골에 가면 식당과 슈퍼마켓에서 김치를 쉽게 구하고 먹을 수 있다. 몽골뿐 아니라 김치는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건강 음식으로 소문이 나 직접 만들라고 알려주는 레시피도 각양각색이다.

날이 추워지면 나도 옹기종기 함께 모여 김치를 만들고 나누어 먹고 싶어진다. 요즘 한국에서는 김치를 담아 먹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서 아쉽지만, 직접 만들지 않아도 연말이 되면 김치 나눔 행사가 많고 여러 비영리 단체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어 먹는 의미 있는 행사도 여럿이다. 김치를 만들어 보고 구입해 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걸 보면 김장 문화는 관광 상품으로도 자리 잡은 것 같다. 날이 추워져도 김치 나눔으로 하나 된 것 같아 뿌듯하고 따뜻한 겨울이다.

막사르자의 온드라흐 서울시 외국인부시장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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