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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나 지금이나... 출퇴근길은 고통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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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나 지금이나... 출퇴근길은 고통의 연속

입력
2016.10.2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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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언 게이틀리는 "통근은 그 자체로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나 아직 제대로 탐사되지 않은 부분"이라며 과거, 현재, 미래의 통근에 주목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저자 이언 게이틀리는 "통근은 그 자체로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나 아직 제대로 탐사되지 않은 부분"이라며 과거, 현재, 미래의 통근에 주목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출퇴근의 역사

이언 게이틀리 지음. 박중서 옮김

책세상 발행ㆍ442쪽ㆍ1만9,800원

“출근길 기차 안, 무료하신가요? 콧노래를 불러보세요.”

무슨 새벽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싶겠지만 이는 철도와 기차가 막 도입된 19세기 영국, 기차를 타고 교외에서 런던으로 출퇴근하는 통근자들에게 주어진 조언이다. 출처는 1862년 출간된 ‘철도 여행자 안내서’. “기차가 움직이면서 나는 소음은 그 어떤 곡조에도, 예를 들어 쾌활한 곡조나 슬픈 곡조에도 다 잘 어울려서, 한 승객이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콧노래로 부르기 시작하면 곧바로 반주가 따라 붙을 것”.

처음으로 내 집 앞 텃밭이나 마을의 가게 대신 도심 직장을 향해 중장거리 출퇴근을, 그것도 기차를 타고 하게 된 영국인들은 낯선 이들과 마주앉은 열차 안의 시간을 꽤나 곤혹스러워했던 모양이다. 철도 이용 ‘꿀팁’을 소개하는 안내서가 등장하고, 객차 안에서 낯선 사람과 어색한 대면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갑자기 책과 신문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언론은 이 객차 안 독서열풍이 유익한지 해로운지에 대한 격론을 벌이기까지 했단다.

당시 나온 우려에 웃음이 나온다. “객차 안에 남녀가 가까이 앉은 상태에서 몸이 흔들리는 가운데 책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감정이 고조된다. 정신적 자극이나 신체적 자극의 이러한 조합은 자칫 신경쇠약이나 도덕적 판단의 중지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

‘출근길의 역사’는 말 그대로 전 세계 5억 직장인의 숙명,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인 통근의 생활문화사를 다룬 책이다. 원저명은 ‘러시 아워(Rush hour)’. 케임브리지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저자는 담배와 문명, 알코올의 문화사 등 소소한 생활문화사에 관심을 보여온 논픽션 작가다.

총 3부의 글은 각각 과거, 현재, 미래의 출퇴근의 모습에 주목한다. 일터와 집을 분리 시킨 것은 산업혁명과 철도의 발달이었다. 도시 주변에 ‘교외’가 발전하고 누구나 쾌적한 교외에 살면서도, 일은 돈이 있는 도심에서 하고 싶어 하면서 ‘통근’은 불가피한 행위로 자리매김했다. 이 통근의 문화는 자가용, 지하철, 자전거를 이용한 출퇴근, 오피스가 특유의 점심 문화 등 새로운 의식주 문화를 만들어냈다.

꽉 막힌 출근길에서 경험하는 노상분노 같은 정서장애도 생겨났다. 영국에서 초기 열차 통근자가 객차에서 1인당 누린 공간(0.45㎡)은 가축의 인도적 운송을 위해 법률이 정한 최소한도보다도 좁았다. 여전히 지옥철의 풍경이 낯설지 않은 걸 보면 숱한 기술발전에서도 출퇴근의 고통만은 그대로인 셈이다.

미래에는 IT 발전으로 출퇴근이 폐기될까? 저자는 다소 회의적이다. 적어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무게를 싣는다. 나름의 장점이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통근 덕에 집에서는 배우자이고 부모이고 반항아인 동시에, 일터에서는 효율성의 화신으로서 특유의 초연함과 침착함과 합리성으로 존경 받는 일이 가능”하며 “일터로의 여정은 ‘우리가 만날 얼굴들을 위한 얼굴을 준비하는’ 시간을 부여하고, 특정한 도시에 갇히지 않고 탈주할 수 있게 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의 예견은 순진한 전망이 되고 말까. 고되기만 한 출퇴근에 얽힌 이채로운 풍경을 읽는 잔잔한 재미가 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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