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삶과 문화] 왜 ‘아홉수를 조심하라’고 할까?

입력
2017.10.25 14:47
31면
0 0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집단에는 나름의 금기시되는 말이나 행동이 있게 마련이다. 이중 일부는 기원이 명확해서 의미파악이 가능한 것도 있고, 또 때론 내용은 잊혀진 채 금기만 남은 경우도 있다. 한식 날 찬밥을 먹는 것이 전자라면, ‘다리 떨면 복 달아난다’는 건 후자에 해당한다. 또 때에 따라서는 ‘문지방을 밟지 마라’처럼, 기원이 분명함에도 우리문화와는 너무 멀어 잊혀지는 경우도 있다.

동아시아에서 집을 주관하는 최고신은 부엌의 부뚜막에 사는 조왕신이다. 추운 기후 그리고 목조건축이라는 화재에 취약한 건축문화 속에서 불 관리는 무척 중요하다. 때문에 불씨가 머무는 곳이 집안 최고신의 거주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더운 인도에서 불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 해서 인도에서 집신은 부엌이 아닌 문턱에 사는 것으로 간주된다. 문턱은 집의 시작인 경계라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문턱에 집을 관장하는 신이 살다 보니, ‘문지방을 밟으면 신이 노한다’는 금기가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인도문화가 불교를 타고 동아시아로 전래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어떤 분은 ‘설마?’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부엌의 아궁이 역시 인도신화 속 불의 신인 아그니에서 온 말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천년이 넘는 불교시대를 거치며 인도문화가 전파된 측면은 생각보다 많은 것이다.

또 우리의 전통적 금기 중에는 ‘아홉수를 조심하라’ 것도 있다. 그런데 왜 9가 나쁘다는 것일까? ‘주역’에서 9는 양(陽)을 상징하는 길한 숫자다. 해서 9월 9일은 양기가 거듭됐다고 해서 중양절(重陽節)이라 한다. 또 9가 양이기 때문에 하늘 역시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나뉜 구천(九天)으로 이해되곤 하였다. 흔히 ‘망자가 구천을 떠돈다’고 할 때의 구천이 바로 이 아홉 하늘인 것이다.

또 9와 관련해서 주목되는 것 중 하나는 투전판(섰다판)에서 땡 이하의 최고를 나타내는 아홉끝 즉 ‘갑오(甲午)’이다. 갑오에서의 갑이란, 갑ㆍ을ㆍ병ㆍ정~의 10간 중 첫 번째로 최고라는 의미이다. 또 ‘오’는 12간지에서 남쪽을 가리킨다. 현재 우리는 시간 기준으로 24시를 사용하지만 과거에는 12지에 따른 12시를 사용했고, 이를 방위와 연관 지어 이해했다. 이럴 경우 자(子)는 북쪽이 되고 오(午)는 남쪽이 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자오축이나 자오선상이라는 표현 역시 여기에서 유래한다. 또 북경 자금성의 정문인 남쪽 문의 명칭이 오문(午門)인 것도 이와 같은 관점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갑오에서는 갑과 오가 결합되는 것일까? 그것은 오 즉 남쪽이 방위 중 으뜸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일조량이 부족한 동아시아에서는 남방을 선호했다. 이는 중국의 고대국가인 주나라에서 군주가 정치를 주관하는 정전(正殿)의 방향이 남쪽인 것을 통해 구체화된다. 이를 군인남면지술(君人南面之術) 즉 ‘군주는 남쪽을 향해 양명(陽明)한 정치를 한다’고 일컫는다. 이후 모든 군주의 위치는 남쪽을 보는 남향으로 굳어지며, 이는 사당이나 사찰의 중심건물 역시 남향이 되는 이유가 된다. 이와 같은 양상은 현재까지도 우리문화에서 남향집을 선호하는 데로 유전되고 있다. 즉 갑오란 ‘최고의 으뜸’이라는 뜻으로 9가 꽉 찬 숫자라는 의미를 표현한 말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긍정적인 숫자인 9가 왜 조심하라는 부정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일까? 이것은 가득 찬 뒤에는 반드시 새로운 변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시작에 앞선 경건함, 그리고 이를 통한 진일보가 ‘9=조심’의 관점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9는 피해야 할 숫자가 아니라 발전을 내포한 도약의 긍정성이라고 하겠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